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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
게시물ID : history_105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1
조회수 : 6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7/07 22:27:45


  본 글은 이수빈 선생님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연구사적 접근'이라는 석사학위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일본 교토대학 교수 나카무라 사토루는 중진자본주의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한국과 같은 신흥 공업국을 중진자본주의 국가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안병직에 의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중심적 패러다임을 내재적 발전론이라 전제하고 이에 대해 부정하였다. 더불어 일제의 지배와 수탈에 의하여 한국의 경제가 발전할 수 없었다는 식민지 수탈론에 반대한다.
 
  한국 자본주의는 1960년대 경제 개발 계획의 실천으로 성립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제 시대의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며 경제 발전론적 시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안병직은 한국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을 이식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이며,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조건도 19C 자본주의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우선, 한국에서 어떻게 밖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정치·경제체제가 형성되는지에 대해 한국경제의 개방체제와 후발성 이익이 주목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개방체제를 유지해왔다고 보았다. 초기에는 조선정부의 저항으로 개방수준이 낮았으나,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으로 개방성이 높아졌고 1905년 화폐정리사업과 1923년 관세철폐로 일본의 '엔 동화권'으로 포섭되었으며, 일본과 동일한 관세권에 놓이게 외었다고 한다. 이로써 조선경제가 일본경제의 한 지역경제 위치로 전락하였지만, 이것은 일본과 조선간의 무역을 촉진시키고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및 기술의 유입을 자유롭게 되어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하였다고 한다. 즉, 일본경제로의 예속성보다는 한국경제의 개방성에 초점을 둔 주장이다. 이처럼 개방체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과 같은 저개발국에서 후발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발자본주의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개방체제가 기본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한국에서 밖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소농사회와 농민, 자본가, 노동자층의 성장'이라는 측면을 주목하고 있다. 식민지 체제는 억압과 착취를 함과 동시에 식민지 개발을 위한 근대적 개혁도 단행하였다. 개발없는 착취는 고대적 약탈뿐이며, 개발 과정 속에서 조선인은 소농사회에서 갖추어진 자질을 바탕으로 농민, 자본가, 노동자등 자본주의의 경제발전의 담당주체로 활발히 성장해갔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후발 자본주의일수록 제도개혁 및 경제정책의 전개 등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 진다고 보았다. 우선, 제도개혁에 관해서 보면, 한국정부에 의한 최초의 큰 경제정책은 갑오개혁이후의 재정개혁과 광무양전인데, 재정개혁은 황실 재정이 재정의 핵심을 틀어쥐면서 실패했고, 광무양전은 국가적 토지소유를 원칙으로 하는 결부제를 기본제도로 채용함으로써 근대적 토지 소유 제도를 수립하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구 한국 정부는 그대적 개혁에 실패했지만, 1905년 러일전쟁이후 일제의 식민지 권력은 화폐정리사업과 재정정리사업을 단행하여 근대적 재정제도를 수립했고, 토지조사사업을 행하여 근대토지소유권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토지소유자를 명확히 함으로써 안정적 지세 수입을 확보하고 재정제도를 뒷받침하였다고 한다.




출처 - http://cafe.naver.com/historygall/36535  (작성자 : 라이트온)

(더 알아보고 공부를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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