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을 마쓰자카는 알았던 것이다. 시합후, 마쓰자카는 엉엉 울고 있었다. 상급생의 고시엔 진출을 끊어버려서. 그 패가 양식이 되었던것이다.
1998년 하계고시엔 대회 준준결승에서 연장 17회까지 250개의 투구 / 승리투수 준결승에 9회초 등장 / 승리투수
결승전때 노히트노런으로 승리투수
연장 17회, 250구의 궤적
98년 8월 20일, 요코하마 대 PL, 준준결승 제 1시합. 5 대 5로 시합이 연장전에 돌입하자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회를 거듭할 수록 마쓰자카의 직구는 위력을 더해, 구속은 150킬로에 가까워져 있었다.
네트 뒤에 진을 친 스카우터들은 “지금 당장, 두자리승이 가능하다.” “아니, 20승 할 수 있다.” “아우트로(종속을 말하는 듯 함-역주)는 사쿠신시대의 에가와 스구루보다 빠르다.” 라고 입을 모았다.
(에가와 스구르:80년대초중반 요미우리의 에이스였던 선수. 갑자원통산 0점대 방어율의 괴물
PL학원은 일본의고교야구팀중 최고의 명문으로 뽑히는 학교입니다.)
11회초, 2루 주자였던 마쓰자카는 중전안타에 일거에 홈을 파고 들었다. PL의 중견수는, 일생일대의 먼 송구로 잡으려 들었다. 홈 베이스상에, 크로스플레이. 타이밍은 아우트.....아아, 포수가 낙구. 5만 대관중으로부터 “우오~옷”하고 땅이 울리는 듯한 환성이 일어났다.
요코하마가 처음으로 이겨나갔다. 바로 PL이 따라붙었다.
무서울 정도로 끈질긴 모습. 벤치에서 지휘하던 와타나베는, “이기자, 이기자고 생각마라. 언제나처럼, 릴랙스하고 해라” 고 선수들을 내어 보내고 있었다. 가장 기대받는다고 하는 시합일수록, 평상심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연장전도 교착상태인 채 14회, 15회로 나아가자, 감독은, “어찌되었건 이겨라. 이겨야만 연장전을 하는 의미가 나온다.”고 선수들을 고무하게 되었다. 바짝 따라잡혔던 것이다. 연장 18회에 결말이 나지 않고, 무승부 재시합이 되면, 요코하마는 불리하다.
PL에는 에이스급의 투수가 두명. 요코하마의 후보투수는 경험이 거의 없고, 마쓰자카에 의지한다는 것은 될 수 없는 것이, 투구수가 이미 200을 넘었다. 이 시합을 이기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16회초, 요코하마는 1점을 뽑아냈다.
관객 대부분이 “이것으로 결정되었다” 고 판단했다. 양 팀에는, 다리에 경련이 인 사람, 몸에 맞는 볼로 손의 뼈에 금이 간 사람, 송구를 얼굴에 맞아 입술이 터져 병원에 실려간 사람......등 부상자가 속출. ‘사투’라고 하는 형용이, 너무 리얼한 나머지 어이없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승부의 여신은, 그럼에도 너무 심한 시련을 선수에게 주었다. 표적은, 요코하마의 1루수, 고토 다케토시 (세이부). 16회말, PL의 공격. 1사 주자 3루에서, 타구는 마쓰자카의 글러브를 맞고, 유격수 앞에. 3루주자는 일단 귀루했다가, 유격수가 1루에 송구하는 것을 보고 홈으로 달렸다. 타이밍으로는 홈의 5,6 걸음 앞에서 아우트로 보였다. 그런데,
1루수 고토는 타자주자의 헤드슬라이딩를 발쪽에 당하여, 비틀거리는 채 송구. 볼은 크게 벗어나서, 세이프. 또 다시 PL이 따라붙었다. 고토의 요추의 양측에 주사한 진통제는 이미 효력을 잃고 있었다. 고토는 서있는 것만으로 진땀이 날 정도의 격통이 찾아와, 움직임은 생기가 빠져있었다. 체인지로 벤치에 돌아온 고토를 와타나베는 귀신의 형상으로 꾸짖었다.
“너만, 무리에서 떨어져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너 같은 녀석이 있어서 이기지 못하는 거야. 이제 그만둬버려. 바꾼다. 이제 너와는 연을 끊을테다.” 벤치의 구석, 고토는 눈물로 뺨을 적시면서 “하게 해 주십시오.” 라며 애원했다. 정밀검사로 다섯 번째 요추에 세 군데의 피로골절이 판명된 것은 대회를 마치고 요코하마에 돌아와서이다. 17회초, 7번타자 토키와 료오타가 초구를 풀 스윙. 타구는 우중간 스탠드에 빨려 들어갔다.
투런 홈런으로 9 대 7의 요코하마 리드. 그 말공격, 마쓰자카는 최후의 타자를 고속슬라이더로 삼진을 손에 넣어, 3시간 37분의 사력을 다한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투구수, 실로 250. 시합후, 마쓰자카는 마지막 남은 정기를 끌어내어 말했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괴로운 승리였습니다. 승리의 포즈를 할 힘도 없었습니다. 내일은, 더 이상 던질 수 없습니다.”
와타나베의 증언 : “마쓰자카나 고토를 동경하여 야구부에 들어온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힘들지요. 주전만 보살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학생도 마쓰자카세대에 대한 동경은 강합니다. 그들에게도 눈을 돌리지 않으면, 팀이 강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을 무시한다면 무엇도 아닌 것이 되지요. 도회에는 유혹도 많으니까...요코하마고교의 야구가 유지될 수 없게 됩니다. 야구부라고 하는 집단에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비단이 있답니다
현재 70명 정도 부원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약 20명이 현 외 출신자. 도쿄가 많지만, 오오사카, 나가노, 홋카이도에서 온 아이도 있습니다. 합숙소에는 집이 먼 주전을 우선적으로 들입니다만, 다른 선수는 자택에서 통학하게 합니다. 매일아침, 치바에서 아쿠아라인을 거쳐 아버지가 태워다 주는 부원도 있습니다. 편도 2시간 이상 걸리는 선수에게는, 빨리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하는 적도 있습니다. 밤, 9시까지 연습을 시키면, 집에 도착하는 것이 12시 가깝잖아요. 현 외에서 요코하마의 야구부에 들어오고 싶다고 쇄도해 오는 것이, 가장, 머리가 아파요. 즐거운 비명이지만...
입학당시의 마쓰자카는, 나가카와나 아이코오에 비하면 모자랐습니다. 스타트 시점에서는 큰 간격이 있었습니다만, 3학년이 되면서, 모든 면에서 앞질렀습니다. 비약의 계기는 2학년 여름의 현 대회 준결승. 스퀴즈를 피하려고 하다가, 끝내기 폭투로 졌습니다. 그 1구로 팀워크의 중요함, 1구의 무서움을 마쓰자카는 알았던 것이지요. 시합후, 마쓰자카는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상급생의 고시엔 진출을 끊어버려서. 그 패가 양식이 되었어요. 끝내기 폭투가 없었다면, 봄, 여름의 고시엔, 가을의 국체 3연패는 있을 수 없었을 테죠.
나가카와나 아이코오는 요코하마고의 전설적인 에이스들의 이름입니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것이지만, 중학생 시절이나, 고등학교 1학년때의 마쓰자카는, "볼은 정말로 빠르다, 하지만 빠르기'만' 하다."라는, 전형적인 타입의 투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요코하마에서 단련을 받으면서,다이아몬드 원석이 멋진 보석이 되듯, 점점 빛나게 되어갔지요. 마쓰자카라는 에이스를 만드는데, 그리고 1998년의 요코하마고 야구부를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지만,스스로는 가장 큰 아픔을 겪었던 것이, 바로 윗 선배들이었다고 하네요. 위에도 잠깐 나옵니다만, 97년의 여름 현 대회에서 마쓰자카의 끝내기폭투로 패배. 그때부터 새로운 팀이 구성되고, 마쓰자카의 팀..이 아니라 정말 훌륭한 팀으로서의 요코하마고 1998년의 팀이 만들어진 것이죠. 사람들은 마쓰자카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1998년의 요코하마는 팀으로서, 정말 꿈과 같았다고, 와타나베 감독님도 증언하고 있더군요. 다시한번 그런 팀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대역전의 진상
“내일, 더는 던지지 않습니다.” PL전 후의 마쓰자카의 한마디가, 감독 와타나베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마쓰자카를 혹사시켜, 만약 무너진다면, 일생 후회가 남는다. 아무리 고시엔이라고는 하나 “팔이 부러질 때까지 던진다.” 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라고 냉정하게 판단하자고 하는 한편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메이토쿠기주쿠에게는 질 수 없다, 마쓰자카, 선발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다오, 릴리프의 준비도 해 놓을 테니, 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하다. 승부에 집착하는 것인가... 감독은 매우 고민했다. 망설이다, 꾹 참고 그만두었다.
마쓰자카의 너무나도 커다란 장래성 앞에 눈 앞의 집착을 버렸다. 쉬게 하자. 와타나베는 멤버 표에 ‘4번 좌익수-마쓰자카 다이스케’라고 써 넣었다. 준결승, 메이토쿠기주쿠 대 요코하마. 열전이 시작되었다. 요코하마는, 봄의 센바츠에서 벤치에 들어가는 경험을 했던 후보 투수가 선발했다.
메이토쿠타선은, 첫회부터 안타를 쳤다. 어느 선수나 스윙이 샤프하고, 준준결승을 11 대 2의 큰 차로 이기고 올라온 기세를 그대로 발산했다. 3회초, 메이토쿠는 안타 3개로 선취점을 얻었다. 4회초, 솔로와 투런으로 3점을 더하고, 6회초에는 요코하마의 두 번째 투수도 쳐내어, 장타 2개로 다시금 1점. 8회초에는 레프트 마쓰자카의 머리 위를 넘어가는 3루타가 날아와, 스코어는 6 대 0이 되었다. 요코하마 타선은, 메이토쿠의 선발투수-테라모토 시로 (롯데) 의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요코하마도, 이것으로 끝인 건가.” 라고,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하타케야마 후토시는, 이바라키의 자택에서 티비관전을 하면서 생각했다. 스탠드를 가득 메운 대관중, 마쓰자카를 그대로 두고 시합에 임한 와타나베의 뇌리에도, 같은 감정이 스쳐가고 있었다. 그저 제 3자가 그것을 ‘단념’으로 단락시키는 것에 비해, 승부의 과정 중에 있는 감독은 ‘각오’ 로 연결시킨다. 비록 진다고 해도, 가슴을 펴고 떨어지자고 하는 각오를 정했다. 문득, 벤치 옆을 보니, 마쓰자카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마쓰자카는 근육에의 부담을 줄이는 테이핑을 한 오른팔로, 가볍게, 볼을 던지고 있었다. 이 녀석, 역시, 던지고 싶은 건가...뿌리부터의 에이스구나. 최후에는 베스트멤버로 맞서자. 벼랑끝까지 밀려있던 8회말, 와타나베는, 마쓰자카에게 말을 걸었다. “어떠냐, 할 수 있겠나.” “네, 괜찮습니다.” 짧은 대화로 충분했다. 마쓰자카가, 불펜에서 투구연습을 시작하니 “고오옷” 하는 해일과 같은 환성이 고시엔을 뒤덮었다. 누구나 마쓰자카를, 평성의 괴물이라 불리는 투수의 피칭을 망막에 새기고 싶은 것이다. 고시엔은, 쿠와다-키요하라의 ‘KK콤비’이래의 이상한 흥분에 휩싸였다. 구장에 깃들어있는 ‘마물’이, 벌떡 고개를 쳐들었다.
메이토쿠 나인은 홀린 듯이 허둥지둥했다. 이 회, 선두타자가 에러로 출루하자, ‘무리에서 떨어져 있던’ 고토가,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적시타. 우선, 1점. 이어서 마쓰자카의 중견수 앞 안타로 2점째가 들어오자 스탠드의 열광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수비하는 메이토쿠에게 큰 바위처럼 부담 지워졌다. 테라모토가, 설마했던 폭투. 거기에 안타가 나와서, 요코하마는 4점을 얻었다. 점수차는 2점.
9회초, 마쓰자카는 벤치 앞에서 오른팔의 테이핑을 찢어내고, 마운드로 향했다. 대성원이 모두 소모되었던 체력에 정기를 되살아나게 했다. 메이토쿠의 클린업을 맞아, 마쓰자카는, 삼진, 볼넷, 2루 땅볼 병살의 겨우 15구로 헤쳐나갔다. 벤치에 돌아올 때에는 미소마저 띄웠다.
9회말, 요코하마는 선두타자가 안타로 출루. 다음타자의 보내기번트가 내야안타가 된다. 다시금 번트를 댄 것이 포수가 타이밍이 늦은 3루에 던져서 야수선택. 무사만루가 되었다. 메이토쿠 나인은 단단히 묶인 듯 꼼짝 못했다. 수비진형은, 홈에서 주자를 잡으려는 전진수비인 채. 1점을 아까워한 나머지, 아웃을 잡기 어려워져 있었다. 자승자박이다.
타자는 고토. 컴팩트한 스윙으로, 타구는 중견수 앞으로 빠져, 2점 적시타. 마침내 6 대 6. 감독에게 “네가 있어서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분한 눈물을 흘렸던 소년이, 다음날, 기사회생의 일을 했다. 이것이 고교야구다. 와타나베는 꾹 어금니를 깨물었다. 요코하마는 두개의 아웃을 잡혔지만, 여전히 만루. 메이토쿠는 리스크가 높은 전진수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여유를 잃고 있었다. 타구가, 2루 뒤쪽에, 힘없이, 포옹 올라간다. 또다시 연장전 돌입인가
그러자, 그때, 2루수의 발은 쇠사슬에 엮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백구는 우익수 앞에 똑 떨어졌다. 역전 끝내기! 7 대 6으로 요코하마가 승리를 손에 넣었다. 마쓰자카는 시합후, 보도진에 둘러싸여 말한다. “6점 리드를 당하고 있어도 질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진다면 PL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L과의 연장전을 경험했기 때문에, 메이토쿠기주쿠에게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승전은, 기분 좋게, 깨끗하게 끝내고 싶습니다.”
하타케야마의 증언 : “메이토쿠전에서 역전했을 때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마쓰자카상처럼 되고 싶다거나, 그런 느낌이 아닙니다. 구름 위의 사람. 하지만, 가까워지고 싶어서, 마쓰자카상과 엇갈려서 요코하마고교에 들어갔습니다. 실제로 요코하마에서 야구를 하면서 느낀 마쓰자카상은, 터무니없이 커다란 존재였습니다. 투수진은 5명정도가 함께 코치의 아메리칸 노크를 받는데요, 그게 무지무지하게 힘듭니다.
건너뛰고, 세명 건너뛰어서 다른 사람의 두배, 세배의 노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할 수 없었지요. 고1때, 피칭연습을 하고 있으면 마쓰자카상이 훌쩍 와서는, 봐 주셨습니다. 그 상반신의 거대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막상, 실물을 앞에 두고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1 여름에 현대회의 준결승에서 토인가쿠엔과 대전하여 졌습니다. 선배투수가 점수를 뺐겨서 제가 나갔습니다만, 되지 않아서 얼레벌레 끝났습니다. 스코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분해서, 대기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려니, 마쓰자카상이 들어와서, 좋은 것을 보여 주었다, 고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왜지, 하며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꼴사납게 져버렸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마쓰자카상은 자기자신의 끝내기 폭투를 떠올려서, 졌다는 분함을 소중히 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 일본대학에 진학해서, 토오토리그에서 야구를 하고 있습니다만, 요코하마 출신이라서 마쓰자카상과 종종 비교됩니다. 부담스럽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이에의 스기우치상, 교진의 다카하시 히사노리상 등을, 같은 좌투수로서 참고하고 있습니다.“
와타나베의 증언 : “고시엔에서의 PL, 메이토쿠과의 힘든 시합을 거치면서, 저 자신, 야구가 보여 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커다란 재산으로서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01년 여름, 카나가와 현대회 결승에서의 토코가쿠엔과의 대전. 첫회에 하타케야마가 얻어 맞아서, 6점을 뺐겼습니다. 다음 8회를 어떻게 싸울까. 거기서 각오를 정했습니다. 하타케야마와 포수, 배터리채로 바꿨습니다. 2년생의 핏쳐와, 주장이었던 후보 캣쳐로요. 흐름을 바꾸려면 그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을 내보낼 때 말했습니다.
더 이상 고시엔은 생각하지 말아라. 단념해라. 즐기면서 하자. 하지만, 이대로 토코를 너무 쉽게 고시엔에 가게 하는 것은 분하잖아. 시련을 주어라, 괴롭혀줘라, 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부탁한다, 너희들밖에 없다, 라고 하면 긴장으로 자멸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서부터 팀에 활기가 생겨서, 10 대 7의 대역전으로 이겼습니다. 결국, 그 해, 하타케야마 들의 팀은 고시엔에서 베스트 4까지 이기고 올라갔습니다. 선수들은 이기기위해 매일,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본 무대에서 그 능력을 어떻게 발휘시킬까. 밀었다가, 당겼다가, 화냈다가, 달랬다가. 그 중요함을 PL, 메이토쿠와의 연전에서 통감했습니다. 실력대로의 플레이를 하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고시엔에는, 정말로 마물이 살고 있답니다.“
결승전의 상대는 교토 세이조 고교였다. 마쓰자카의 어깨에는 피로가 축적되어 있다. 구속은 MAX 146킬로. 그래서 신중하게 던졌다. 초반은 양팀 0을 이어갔다. 4회말, 요코하마가 솔로홈런으로 선제. 5회말에도 우익수 앞의 적시타로 2점째를 올린다. 타격전에 익숙해져 있던 대관중은, 오래간만의 긴박감 넘치는 투수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쓰자카는, 4구를 내주기는 하나 5회, 6회 고속 슬라이더로 삼진의 산을 쌓는다. 7회에 들어서도 한 개의 안타도 허락하고 있지 않았다. 감독도 나인도, 조심스럽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잘못해서라도 ‘노히트 노런’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투수심리는 미묘하다. 8회초, 선두 타자에게 4구를 내준 마쓰자카에 향해서, 와타나베는 손바닥을 펼쳐서 ‘1,2,3,4’라고 천천히 손가락을 접었다. ‘던지는데 서두르지 마라’라고 하는 사인이었다. 마쓰자카는 피곤하여 몸에 끈기가 없어지면 ‘1,2,3’의 템포로 던져 버린다. 몸이 빨리 열린다. 내야수가 마운드에 모였다. 그러자 유격수인 사토 츠토무가, TV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듯 편안한 말투로 얘기했다. “노히트 노런, 해버려.” “아아, 말해버렸다.”고 마쓰자카가 천진난만하게 응했다.
이것으로 야수는 스윽하고 긴장감이 풀려, 수비위치로 흩어졌다. 교토 세이죠의 타자가, 1,2루간에 땅볼을 친다. 고토가 1루수 미트를 뻗었으나, 타구는 그 밑을 빠져나갔다. “아아앗”하고 구장에 비명. 2루수가 돌면서 포구하여, 1루에 던진다. 아웃! 비명이 대환성으로 바뀌었다. 그 회말, 요코하마는 3점째를 얻고, 마쓰자카는 최종회의 마운드에.
고시엔에서의 782구째, 슬라이더를 아웃트로에 던져 넣어, 이 시합 11개째의 삼진을 잡으며, 게임 셋.
마쓰자카는 결승전에서는 56년만이라고 하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고,
요코하마는 전국 고교의 정점에 섰다.
야구팬의 ‘추억의 앨범’은, 너무나도 극적인, 기적이 응축된 98년 8월 22일의 페이지에서 중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야구잡지 슬러거에서-
참고로 마쓰자카 혹사는 끝나지 않았고...
프로데뷔후 18살부터 20살까지 무려 10001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고딩한테 3경기 연송 250구 던지게하는 감독이나...
그걸하는 학생이나 ㅜㅜ 마쓰자카가 이른나이에 부상으로 훅간 이유기도 하지만요. 참 안타까운 재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