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고통이니까 일찍 해치워버리는 게 낫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거 말고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함.
군대를 어릴 때 가야 한다는 이유 중에, "늦게 가면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선임이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있음. 다시 말해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윗사람]인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임. 거꾸로 "일찍 가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후임으로 부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함.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아랫사람]인 것은 그다지 나쁘게 여기지 않고, 때로는 즐길 만한 상황이 되기도 함.
나이 어린 사람에게 "야, 너, 새끼' 소리 듣고 명령 듣는 것에 자존심 상해하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야, 너, 새끼' 소리 하고 명령하는 것에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존의 한국식 나이 문화에 길들여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군대 밖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나이가 벼슬이니까(나일리지) 나이 많은 쪽이 나이 적은 쪽을 함부로 하는 것이 거리낌이 적음. 어린 쪽이 불만 가져봤자 "꼬우면 일찍 태어나든가"에는 반박 불가 상태가 됨. 그런데 군대로 들어오면 계급이 깡패니까(때로는 계급과 기수의 상하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으나 여기서는 고려하지 않음) 계급이 높은 쪽이 계급이 낮은 쪽을 함부로 하는 것이 거리낌이 거의 없음. 하급자가 불만 가져봤자 "꼬우면 일찍 군대 오든가"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짐.
이러한 "나이 어린 상급자와 나이 많은 하급자"의 관계는, 기존의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데에서 오는 괴리인 것 같음. "군대 밖에서는 나한테 눈도 못 마추쳤을 어린 새끼가 군대 먼저 왔다고 나를 막 대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군대 밖이었으면 말도 못 걸었을 상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으로 인한 쾌감. '군대 밖에서의 나이에 의한 위계서열'이라는 기존의 상하관계가 없었다면, 군대에서 이게 역으로 뒤집히는 일도 없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