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에서 학계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께 아래의 질문을 드렸고.. 답은 육두문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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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응신 3년에) 백제 진사왕이 세워지는 귀국 천황에 무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기각숙니 우전시대숙니 석천숙니 목토숙니등을 보내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니등이 다시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일본서기 응신 3년>
Q.1 백제 진사왕이 죽고 아신왕이 왕이 된 것은 392년이다. 일본서기에는 이해에 반도에 사람들을 보내서 왕을 교체했다고 나온다.공교롭게도 392년은 광개토대왕 비문의 신묘년에 해당하는데, 만일에 일본인들이 일본서기와 광개토대왕 비문이 내용이 일치하니 392년에 왜가 백제를 격파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Q.2 광개토대왕 비문에 대한 논쟁이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일본인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주장 ( 왜인이 바다를 건너서 백제를 공격했다.) 과 일치하는 일본서기 기록을 근거로 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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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채 원 질문 글은 보류로 보내버리고.. 일본서기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만 한 후에 풍림화산을
일본서기 추종자로 몰고.. 마지막은 육두 문자로 장식.. 그리고 여럿이 베스트로 보낸 후에 마치 자신들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육두문자가
찰지구나..이러면서 축제 분위기 ㅎㅎ.. 게시판 이용자에게 육두 문자를 날리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추천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게시판에서 몰아냈을까요.. 그리고 깡패들처럼 여기는 우리 나와바리니 까불지 말라고 합니다. 참 슬픈일이죠
열여덟 아들이 찰지다라.. 이건 강단 재야 이전에.. 그 동네는 가정교육 개판으로 받은 순서대로 석사 박사학위 주는 그런 곳인지 참 허허
오늘 시국 선언 하신 역사학자분들은 존경합니다만.. 강단 사학계의 고대사 부분은 이게 현 수준이군요..
" 고대 사학계" 강단의 무능함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하므로 베스트에 걸려 있는 저에 대한 열여덟아들 운운은 제가 부덕한 것으로 하고
접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부가 목적이므로 공부 이야기를 하죠..
일본인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수수께끼의 4세기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중국 기록에 보면 왜 여왕 비미호 그리고.. 큰 난리가 있었고
비미호의 종녀 대여를 세웠다는 이야기..그리고 4세기 전반에 걸쳐서 왜왕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5세기 초가 되어서야 송서에 왜 5왕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틀림없이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열도를 건너서 반도로 온 왜의 존재가 있고, 칠지도 기록대로 백제에게 후왕 소리를 듣는 왜왕도 있고.. 이것이 다 4세기입니다. 고고학적으로도 난데없이 열도에 대형 전방후원분이 출현하고, 반도의 횡혈식 석실분도 이 시기에 열도 전국으로 확산되고.. 뭐 그렇습니다. 상당히 다이나믹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인데, 이 시기의 왜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혹은 空位 시대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수수께끼라고합니다.....
그런데 좀 상식적으로 생각해봅니다. 4세기에 열도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는 왜왕이 있었다면 당대에는 그 존재를 몰랐어도 열도와 대륙간에
많은 인적 문화적 교류가 있었던 수 당 시기에는 누구인지 알 수 있었겠죠. 당에 와있던 일본인들에게 물어본다든지 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쪽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당사자인 열도의 일본서기는 어떻게 보아도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 글을 모든 것을 비운 백지상태에서 읽은 분들은 충분히 이것이 수수께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눈치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수께끼는 4세기 열도가 아니라, 신라 백제인이 왜를 대국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을 신라 백제인이 왜를 대국으로 여겼다. 라고 해석하는 억지.. 일본인 중국인은 그렇다고 쳐도 한국 강단 사학계는..수수께끼는 4세기 열도가 아니라 이게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 多珍物, 병敬仰之, 恒通使往來.
신라 백제인은 모두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 ( 왜를 큰 나라로 만든 신라 백제인은 ) 진기한 물건이 많았고 그 진기한 물건들을 숭배했다. 항상사신이 왕래했다
- 북사 -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을 엉뚱하게 하기 때문에.. 아래 문장을 이해 못하고 엉뚱한 마한 진한 이야기가 나오고.. 북사가 책이 이러니 저러니 하게 되는 것입니다.
其王本百濟人,自海逃入新羅,遂王其國。初附庸於百濟,
百濟征高麗,不堪戎役,後相率歸之,遂致 강 盛。因襲百濟,附庸於迦羅國焉
( 신라) 왕은 원래 백제인이다. 바다를 통해서 신라로 도망해
들어가 그 나라와 왕을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백제의 속국이었다.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에
그 노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중에 相率歸之 했다. 이로서 마침내 강성함을 이루었다.
이런 이유로 백제를 공격하고 가야의 속국이 되었다
- 북사 열전 신라-
북사 왜 기록을 올바로 이해하고 신라 백제는 반도에 한정된 나라라고.. 일제시대부터 세뇌되어온 우리가 이식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반도신라를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 기록은 북사에서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던 신라인들의 기록이라고 하는 가설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이 신라가 반도 신라가 아닌 열도 신라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여러가지 수수께끼들이 풀리는데 그 중 하나가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392년 신묘년에 건너온 왜인의 실제 이야기 같은 것들입니다. 백제와 고구려는 근초고왕 이전에는 양국 사서에 전쟁기록이 없고 개로왕이 중국에 보내던 표문에도 같은 조상에서 나와서 평화롭게 지냈는데 고국원왕 때부터 전쟁을 했다 했습니다. 따라서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에 신라가 그 사역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는 AD 4 세기..
일본과 한국의 강단에서 수수께끼의 열도 4세기라고 부르는 그 시기입니다.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당시에 사역을 담당했던 신라는 열도 신라이고.. 그 열도 신라는 백제인이 다스렸던 백제의 속국이라고 북사는 반도 신라를 기록하면서 열도 신라에 대한 역사도 병행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북사에서는 이 열도 신라가 고구려 정벌에 대한 부역에 반대하여 이후 열도안의 백제인과 신라인이 통합하여 ( 相率歸之 ) 강성함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오히려 백제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근초고왕 근구수왕 시절에는 백제는 언제나 고구려에 대해서 우위에 있었는데 진사왕 시기부터 고구려에 열세에 몰리게 됩니다. 이런것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보아야겠지요.
우리가 18세기 미국의 역사를 기록할 때에 미국인들을 어떨때는 미국인 혹은 유럽 이주민으로 보듯이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왜인이라고 표현하였지만 북사에서는 신라의 별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 이 열도 세력이 어째서 백제를 공격했는지 그 이유까지 적혀 있는 것입니다.
즉 신묘년 왜인 도해파백잔의 호태왕 비문의 진실은 열도와 반도 전체에 세력을 이루었던 백제가 열도 백제와 반도 백제 사이에서 내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리하게 백제를 반도에 한정지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역사가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사료에 충실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후지와라 사다모토를 생각해봅니다. 후지와라 사다모토는 열도가 韓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진정으로 일본서기를 읽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위와 같은 실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역사를 조작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열도의 신라 백제인들이 백제의 내란에 개입했다는 진실과 만세일계를 조작해야 하는 입장.. 거짓말을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진실과 거짓을 섞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공의 인물 응신천황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응신천황이 신하들을 시켜 백제의 왕위를 교체 시켰다고 조작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증명하는 유물.. 칠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생각해 봅니다.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王旨造傳示ㅁ(-後?)世.
선세 이래로 이런 칼이 없었다. 백제 왕세자 구시가 낳은 귀인인 까닭에 왜왕을 삼는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전하여 후세에 전하거라.
百濟王世子 奇 ( 구시) 生 ( 낳은) 聖音 ( 세시무) 故 ( 까닭에) 왜왕을 삼는다(爲倭王) 는 뜻 (旨) 으로 만들었다. ( 造 )
칠지도입니다.. 백제 왕세자 구시가 낳은 세시무.. 북사에서 열도 신라의 왕이된 백제인으로 기록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