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t님이 이야기 하다가 도망... 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쨋든 답을 안하고 사라지셨으므로 계신김에 한번 여쭈어 봅니다.
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 풍림화산2 (2013-07-03 20:48:46) (가입:2013-02-16 방문:184) 추천:1 / 반대:7 IP:61.37.***.14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병敬仰之、恒通使往來
신라 백제인이 모두 왜를 가지고 큰 나라를 만들었다는 북사 기록을 신라 백제인이 왜를 대국으로 여겼다고 당대의 어법에도 맞지않고 정황상 맞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것에서 니들은 여기에 답을 할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수수께끼의 열도 4세기는 없는 것이고 이연수가 이 시기에 신라 백제인이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고 기록했는데도 몰라.. 이것을 모르니까 아래 열도 신라 기록을 접하고도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가 뭔지도 몰라..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신라왕은 원래 백제 사람이다 바다를 통해서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와 왕을 물려 받았다. 처음에는 백제의 속국이었다.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당시 그 부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相率歸之해서 강성함을 이루었다. 이런 이유로 백제를 공격하고 가야에 종속하게 되었다.
★ tetraisol (2013-07-03 20:57:01) (가입:2012-12-24 방문:391) 추천:1 / 반대:0 IP:59.17.***.69
왜 안나오나 했습니다, 강단사학 징징거리기
아무렴요, 한문 전공자가 와서 해석해도 틀린 거고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 이지요.
풍림화산님의 제대로 된 글들이 보류로 가는 건 강단사학의 음모이고 풍림화산님은 고결한 참역사의 투사이십니다. 아무렴요 그렇구 말 구요.
★ 풍림화산2 (2013-07-03 21:13:55) (가입:2013-02-16 방문:184) 추천:1 / 반대:5 IP:61.37.***.14
백제가 최초로 고구려와 전쟁한 것이 AD 4세기 중반 그 당시에 강단에서 생각하는 왜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일본은 또 왜나와? 열도신라는 백제의 꼬붕국가로서 고구려 전쟁의 부역을 하다가 도저히 못견디겠다고 쿠데타.. 열도의 신라 백제인이 서로 합쳐서 백제를 공격하였다고 북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앞에 문장을 엉뚱하게 신라 백제가 왜를 큰 나라로 섬겼다고 해석하니 뒷부분도 모르는게지. 저게 신묘년 392년에 왜 다른 표현으로 하면 열도 신라 백제 세력이 바다를 건넌 이유요.. 결국 신묘년에 일어났던 일은 백제 왜의 전쟁이 아니라 열도 백제와 반도 백제의 내분인 것이지.
★ 풍림화산2 (2013-07-03 21:14:52) (가입:2013-02-16 방문:184) 추천:1 / 반대:5 IP:61.37.***.14
한문 전공자 불러와서 아래 북사의 저자 이연수가 사용한 어법 해석시키시든가. 표준어가 있던 시대도 아니고 결국 당사자의 以 爲 사용 용례에 따라 해석할 수 밖에 없지. 그것참.. 신라 백제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네
<漢><武帝><元封>四年, 滅<朝鮮>, 置<玄도郡>, 以<高句麗>爲縣以屬之
<靈太后>以其俗嫁娶之際以靑爲上服人給靑兩匹
或有以皮爲舟者
婦人以羅紋白布爲帽
以木槽中暴海水爲鹽
주류 사학계는 위의 문장을 only
고구려를 현으로 여겼다
청색을 옷감으로 여겼다
가죽을 배로 여겼다
나문백포를 모자로 여겻다.
바닷물을 소금으로 여겼다
이렇게 해석하겟군요
어떻게 보아도
고구려를 가지고 현을 만들었다
청색으로 옷감을 만들었다
가죽으로 배를 만들었다
나문백포로 모자를 만들었다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가 맞는거 같은데
주류 사학계 해석이 좋다면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 이 문장을
신라 백제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 로 하시기를 그건 기호니까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신라 백제인이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가 맞습니다
TET님이 이 글에 대해서 반론을 못하거나 게시판을 자기들 나와바리 정도로 여기는 강단 깡패들이 이 글을 보류로 보낸다면 북사 해석은 신라 백제인들이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가 맞는 것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