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 vs.'극문'…
‘드루킹 사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우리 정치판의 단면을 보여준다. 여권 지지자들끼리 내부를 향해 서로 총질하는 사태가 팟캐스트에서도 한창이다. 소위 진보 성향 인터넷 방송 사이의 싸움이다. 싸움의 주역은 순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치 팟캐스트 ‘이이제이’와 ‘정치신세계’. ‘이재명 지지 트위터 계정’ 사건, 일명 ‘혜경궁 김씨’ 사건이 발단이었다.
우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팟캐스트의 역사와 위상을 알 필요가 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이라도 ‘나꼼수’는 들어봤을 터다. 진보 성향 팟캐스트의 ‘조상’ 격이다. 김어준·주진우·정봉주·김용민, 이 네 명을 오늘의 자리에 있게 했다. 나꼼수 이후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이용한 정치 방송은 주요 매체로 자리 잡았다. 팟캐스트는 라디오를 흡수하다시피 했고, 유튜브는 TV를 잠식했다. 이제는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즐긴다. 나꼼수의 영향일까, 팟캐스트에선 유독 민주당 지지 성향의 방송이 인기다. 4월 18일자 ‘팟빵’ 차트 기준 10위 안에 민주당 지지 성향의 방송이 8개나 들어 있다. 이 중 ‘정치신세계’는 3위, ‘이이제이’는 5위다. 팟빵은 팟캐스트 등 오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게 중개해주는 사이트 이름이다.
‘정치신세계’는 2017년 1월 첫 방송을 했다. 인터넷매체 서프라이즈와 뉴스토마토라는 매체에서 각각 편집장과 증권부장을 맡았던 권순욱씨 등이 진행한다. 본인들 스스로 ‘우리는 문꿀오소리’라며 친문 매체를 표방한다. 문꿀오소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문’에 독사도 사냥할 정도로 겁이 없는 동물 ‘꿀오소리’를 합친 단어다. 쇼핑몰도 운영하는데, ‘이니굿즈’를 판매한다. 마주 서 있는 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휴대폰 케이스에 그려놓고 5만5000원에 파는 식이다.
정치신세계 vs 이이제이
‘이이제이’는 2012년에 시작한 일종의‘현대사 해설 방송’이다. 방송인 이동형 작가가 주축이다. 지난해 문을 닫았다가 이재명 전 성남시장을 지지하는 트위터 계정(08_hkkim) 논란을 일으키며 시즌 2로 돌아왔다.
트위터 계정 논란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직에 도전한 이재명 전 시장을 지지하는 특정 트위터의 내용이 발단이었다. 이 트위터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전 시장과 겨루는 전해철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비판글을 쏟아냈다. 이런 식이다. ‘문 후보 대통령 되면 꼬옥 노무현처럼 될 거니까 그 꼴 꼭 보자구요’ ‘노무현 시체 뺏기지 않으려는 눈물 가상합니다. 홧팅’ ‘전해철 때문에 경기 선거판이 아주 똥물이 되었는데 이래 놓고 경선 떨어지면 태연하게 여의도로 갈 거면서’….
그런데 여권 지지층 내부에서 이 트위터 계정을 이재명 전 시장의 부인 김혜경씨가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전 시장과 트위터에서 소통을 자주 하고, 이 전 시장의 사적인 일화까지 자주 언급한다는 것이 이유다. 이 때문에 이 트위터 운영자에게 이 전 시장의 부인 김혜경씨를 빗대 ‘혜경궁 김씨’란 별칭이 붙었다.
이후 ‘무조건적’ 친문 세력 지지를 자청하는 ‘정치신세계’와 몇몇 친문 표방 방송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 전 시장 비판에 나섰다. ‘이재명 시리즈’를 만들어 방송하기도 했다. 이 방송들은 전해철 예비후보 지지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신세계’의 권순욱씨는 ‘이이제이’의 이동형씨를 비난했다. 이 전 시장과 친분이 깊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동형과 이재명은 일반 기자들의 권언유착보다 더 멀리 갔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둘이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실제 이 전 시장은 2015년에 ‘영주 이동형 작가 부친댁에서 맛있는 점심 얻어먹고 봉화로 가는 길’이란 글을 올리며 친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이제이’가 이 전 시장에게 특혜를 입었다거나 ‘이이제이’ 출연진이 방송을 위해 만든 협동조합의 돈을 횡령했다는 루머도 인터넷에 떠다녔다.
이에 대해 이동형씨는 “엄혹한 시절, 이이제이가 박근혜 정권 시절 최태민 특집방송 할 때 그들은 뭘 했느냐, 1945년 8월 15일부터 독립운동한 주제에 정권 세웠다고 나서느냐. ‘극문’이 문재인 정권에 해 끼친다”고 응수했다. 특혜·횡령 루머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싸움은 4월 17일 올라온 ‘정치신세계’에서 권씨가 ‘이이제이’ 측에 사과하며 일단락됐다. ‘우리도 노빠한 지 오래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오랜 친분도 있다’는 변명과 함께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촌극으로 웃어넘길 수 있지만 여기서 엿보이는 함의는 생각보다 크다. 첫째, 지지 방식을 두고 여권 지지자들 안에서 내분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판세를 보면 ‘극문’과 ‘비판적 지지’가 대결하는 모양새다. 문꿀오소리를 자처하는 권씨 같은 이들은 “비판적 지지는 필요 없다. 무조건적 지지가 옳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권 때 비판적 지지하다가 정권 잃고 노 대통령도 잃었다’는 이유다. 권씨가 쓴 글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극렬 노빠’가 대통령 망친다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실상은 언론의 대통령 물어뜯기에 놀아나며 지지철회를 외친 그 인간들이 대통령 힘을 빼고 임기 내내 낮은 지지율로 고생했다. 박근혜가 탄핵당한 게 박사모 때문인가? 극문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는 박사모가 박근혜 망친다는 똥멍청이 논리와 똑같은 거다.”
반면 이동형씨는 “우리 편이라도 잘못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식이다. 실제로 그는 문 대통령 방중 당시 “문 대통령 중국에서 홀대받은 것 맞다. 그걸 인정 안 하는 건 혼자 딸X이 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가 십자포화를 맞았다. 지금까지도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를 ‘이딸딸’로 부른다.
손가혁과 문꿀오소리
무조건적 지지자들, 소위 ‘극문’의 행태는 대선 당시부터 민주당 지지층 내 화두였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의원멘토단장을 맡았던 박영선 의원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 후보 지지층의 댓글 공격은 ‘십알단’과 유사하다. 자신들이 하는 말이 다 옳고 선이라는 (사고) 구조다. 패권주의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십알단은 2012년 대선 때 활동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조직이다. 지난 대선 직후 한겨레21의 안수찬 기자가 페이스북에 ‘덤벼라 문빠들’이라고 썼다가 ‘극문’들로부터 험한 일을 당한 적도 있다. 문 대통령 지지층들이 한겨레 불매운동을 벌인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 한겨레21 표지를 두고 ‘문 대통령 얼굴이 잘 안 나온 사진을 일부러 고른 게 아니냐’는 게 불매운동의 이유였다. 당시 안 기자는 댓글 1만개 폭격을 받고 페이스북에 곧 사과글을 올렸다.
둘째, ‘정치신세계’와 ‘이이제이’ 간의 싸움에서는 대선의 앙금도 보인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손가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손가락혁명군’의 준말이다. 말 그대로 손가락을 움직여 SNS나 댓글난에 글을 써 혁명한다는 뜻이다. 손가혁이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한 비판은 강도가 꽤 높았다. 문 후보의 팽목항 방문에 따라가 ‘얼렁뚱땅 문재인’이란 푯말로 시위한 건 꽤 오래 회자됐다.
‘손가혁’과 ‘달빛기사단’ 사이의 싸움은 주로 온라인에서 벌어졌다. 그런 탓일까, 양 진영 사이 깊어진 골이 당시엔 잘 안 보였지만 이것이 다시 불거지는 모양새다. 최근 이재명 전 시장의 ‘형수 욕설 전화’를 오랜만에 다시 소환한 건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아니다. 문꿀오소리 혹은 극문들이다. ‘이재명은 민주당의 자산 아닌 부채, 이번 기회에 털고 가야 한다. 차기 대선까지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친문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트위터 계정 논란이 어떻게 정리되든 양측의 화해는 힘들어 보인다.
셋째, 누군가 ‘악마’를 정해 지지를 결집하는 일부 인터넷 방송의 습성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역치(threshold value), 즉 어떤 반응을 불러오기 위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는 늘어나기만 하지 줄어들긴 어렵다. 무슨 말인가 하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영상을 계속 보면 웬만큼 잔인한 영상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단 얘기다. 인기 끄는 이들 시사 팟캐스트를 들어 보면 상당 부분 누군가에 대한 욕이다. 논리와 근거를 갖춘 비판부터 ‘X발’ ‘X만 한 게 까분다’는 식의 무작정 욕설까지 다양하다. 초기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 공격 대상이었지만 탄핵과 구속이란 목표를 이룬 지금은 다시 ‘악마시할’ 대상이 필요해졌다. 자유한국당은 흥행을 올려주기엔 세가 너무 약하다. 레이더에 포착된 공격 대상이 바로 ‘비판적 지지자’들인 셈이다.
극문들에게는 이동형 작가가 첫 표적이 아니었다. 손석희 JTBC 사장, 손혜원·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들에게 이미 몇 차례 난도질당했다. “기계적 중립이란 이름으로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보도한다.” 권씨가 손석희 사장에게 한 비판이다. ‘오늘의 유머’ ‘클리앙’ 등 인터넷 게시판엔 이런 ‘내부 총질’에 대한 성토가 자주 올라온다. ‘진문 감별하냐, 새누리당이 바로 진박 감별하다 망했다’는 식이다. 후원금 노린 생계형 비난이라며 이들을 ‘노통 문통 파는 정치 자영업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 ‘정치신세계’를 방송하는 ‘뉴비씨’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이 근무 시절 겪은 부당행위를 폭로하며 ‘매월 3000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온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색다른 다툼’이라 눈돌리기엔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게 문제다.
하주희 주간조선 기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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