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
제2의 ‘카카오톡 사찰’인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앞서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연행된 시민들도 스마트폰을 압수당했다. 경찰은 스마트폰의 잠금 패턴을 푸는 프로그램 개발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폰에는 사용자의 모든 사회관계망과 내밀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인이 어떤 일로 경찰에 붙잡혀가기라도 하면 그와 내가 쌓아온 관계의 퇴적물이 어느 경찰관의 기억장치 속에 그대로 복제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사이버 망명’도 무용지물이다. 스마트폰 자체를 버리지 않는 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법이 첨단 디지털 시대를 그대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체포 현장에서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흉기라든지 쉽게 없앨 수 있는 증거물 따위를 빼앗기 위해서다. 압수한 물건을 살펴 증거 가치가 있으면 사후에 압수영장을 신청한다. 일리 있는 법이다. 그런데 휴대전화, 특히 스마트폰이라는 아주 독특한 물건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법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노출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라일리 사건’ 판결에서 숙고한 게 바로 이 문제다. 미국에서도 체포 현장에서 영장 없는 압수수색을 허용한다. 스마트폰도 여느 물건처럼 압수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스마트폰이 과거의 압수수색 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물건임을 대법관 전원일치로 선언했다. 이유는 이렇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주머니를 뒤지는 것과 그의 집을 뒤지는 것은 사생활 침해 정도로 볼 때 성격이 전혀 다른 행위다. 그런데 피의자의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들어 있다면 두 행위의 차이는 없어진다. 휴대전화 안에는 집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낼 수 있을 만큼의 방대한 사생활 정보, 나아가 가택 수색으로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더욱 내밀한 정보가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누군가를 체포했는데 그의 주머니에 집 열쇠가 들어 있다고 해서 영장 없이 집까지 따고 들어가 뒤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려면 반드시 별도의 사전 영장을 받으라는 게 라일리 사건 판결의 결론이다. 18세기 중반까지 영국에는 사람·장소를 특정하지 않은 채 발부되는 ‘일반 영장’이 있었다. 왕에게 저항한다는 혐의만 씌우면 누구의 집이든 무제한으로 압수수색할 수 있었다. 현대적 영장제도는 그런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다. 특히 가장 내밀한 프라이버시 공간인 집이야말로 현대 형사절차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는 곳이다. 라일리 사건 판결은 이런 영장제도의 본질을 디지털 시대에 적용한 결과다. 더구나 라일리 사건의 주인공은 조직폭력범이었다. 국가권력이 이런 중범죄자의 사생활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원칙을 세운 것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세월호 사건이나 최저임금 같은 사회적 의제에 의견을 표명한 행위를 트집 잡아 시민들의 스마트폰이 압수수색되고 있다.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는 가장 내밀한 프라이버시 영역까지 훼손당할 각오를 하라는 식이다. 우리는 아직도 저 암울한 일반 영장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압수수색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법원도 영장 심사 때 혐의의 경중과 권리의 침해 정도를 헤아리고 증거 확보를 위한 다른 수단은 없는지 등을 살펴 최소한도로만 스마트폰 압수수색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라일리 사건 판결문의 표현처럼,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는 것을 그저 교통수단일 뿐이라며 똑같이 취급하는” 우매한 법의 지배가 계속될 것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출처는 출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