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하던 때였다.
기침이 나고 열이 났다.
집 앞 병원의 임시 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신종플루가 아니란다.
안도의 한숨을 반 정도 내쉴 때 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다.
응? 더 안 좋은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의사는 항생제를 비롯한 약을 처방해주며,
이거 먹고도 기침이 안 멎으면 본원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당연한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기침은 멎지 않았고,
본원에 예약을 한 후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담당 의사는 모니터에 떠있는 엑스레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봐도 모르지만 나도 같이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읔고 의사는 내게 말을 걸었다.
- 사진 상으로 이상 소견은 없구요, 다 나으신 것 같네요.
- 아 그래요?
- 네.
- 근데 이거 누구 사진이예요?
- 네?
나는 지난주 임지 진료소에서 폐렴이란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았을 뿐,
엑스레이를 찍은 적이 없다.
나의 대답에 의사는 적잖이 당황했고,
엑스레이 한 구석에 있는 이름을 확인하고 내게 물어봤다.
- XXX씨 아니세요?
- 네, 아닌데요. 그게 누구예요?
- ...죄송합니다...
- 네.. 뭐...
당황하긴했으나 역시나 전문의라 그런지 대처가 빨랐다.
이리저리 보내 검사를 받게한 후 아직 폐렴이 낫지 않은 것 같으니 약을 더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약을 받아왔다.
그렇게 몇번을 약을 받아도 기침에 차도가 없자 의사는 내게 인헤일러를 처방해주었다.
딸깍~ 한다음에 흐읍~하고 빨아마시는 약이었다.
의사는 내게 보라색 통과 초록색 통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기 전에 초록색을 흡입하시고, 생활하다 기침이 좀 심하게 나면 보라색을 흡입하세요.
초록색이 지속성이라 마시면 오래 가고, 보라색이 즉효성이라 기침 심하게 날 때 마시면 기침이 멈춰요.
시키는대로 약을 받아 기침이 날 때 흡입했다.
보라색약이 금방 떨어져 다음 내원 때 다시 처방해달라고 했다.
의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초록색은 많이 남아있어요?
- 네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 보라색은 다 떨어지구요?
- 네.
- 이상하네요, 보통 초록색이 먼저 떨어지는데. 초록색이 즉효성이라 자주 사용하고, 보라색은 하루 두 번 마시니까 아직 떨어질 때가 안 됐는데요.
- ...네? 뭐라구요?
- 왜요?
- 지난번에 보라색이 즉효성이라면서요, 초록색이 지속성이라 아침 저녁으로 흡입해야한다고...
- 제가 그랬나요?
- 네.
- ...제가 왜 그랬을까요...
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순간 지인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폐렴이라 집 앞 병원에 다닌다는 말에 지인들은 정색하며 말했다.
큰 병원을 가야지 왜 집 앞 병원에 다니냐고.
...우리 집 앞에는 대학병원 밖에 없는데...
더 큰 병원을 갔어야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