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예정일은 3월 20일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신체적 조건(부190.모175)+폭풍식욕+부진한 운동 3콤보로 으뜸이가 너무 커버렸다. 3.8kg을 육박하자 의사선생님도 부담스러웠는지 며칠만 당겨서 18일날 유도분만 하자고, 그래도 엄마 골반이 좋으니 수술은 생각치 말고 자연분만 하자고 하셨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 아직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는 으뜸이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일,월,화요일은 하루에 한두시간씩 걸었다. 만삭에 배가 터질듯 하다 보니 10분 걷다 쉬고 또 10분 걷다 쉬고 걷는것도 고역이었지만 그나마 친정에 있던 강아지 알록이가 같이 걸어줘서 위안이 되었다.
17일 오후에 출산가방이랑 아기용품 바리바리 챙겨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밤 11시에 자궁경부를 말랑하게 하는 질정을 넣고 무통주사 바늘을 꽂았다. 무통주사가 진통보다 더 아파서 무통을 안맞는게 낫다느니 말들이 많아서 긴장했는데 별로 아프지 않고 약간 저릿한 느낌이었다.
새벽1시에 촉진제를 맞았고 새벽5시에 출산 준비를 할거라고 그때 내려오라 했다. 촉진제를 맞고 나서는 약한 생리통처럼 싸리~하니 배가조금씩 아팠지만 평소 중증 생리통으로 고생했던 나는 이정도는 통증도 아니지라며 속으로 비웃곤 잠을 청했다. 하지만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다인실이라 불편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잠을 잘 못잤다.
드디어 5시. 분만대기실로 가서 누웠다. 굴욕3종세트 때문에 맘이 약간 무거웠지만 내가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생각보다 굴욕적이지 않았다. 관장은 오래 참아야 관장 효과를 제대로 본다고 해서 관장약을 넣자마자 애니팡을 켜서 미친듯이 게임에 몰두했고 그결과 12분을 별 무리없이 참고 쾌변에 성공했다.
젤 힘든건 내진. 아기가밑으로 내려오지 않아서 자궁자체가 위에 있었는지 내진을 할때마다 간호사도 자궁경부가 잘 만져지지 않는지 계속 휘적거려 몹시 아팠다. 겨우1센티 열렸단다.
이래저래 준비과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본격 진통을 시작한건 7시 정도였다. 몇분 간격인지 세어보지 않았는데 아 배가좀 아프다 하는 느낌이 그때부터는 났지만 배에 붙여놓은 검사기의 그래프를 보더니 아직 차례 멀었다며 신경도 쓰지않았다. 신랑하고 얘기하고 히히덕거리다가 배아프면 인상쓰다가 그렇게 9시정도까지는 참을만한 진통이었다.
9시를 넘어가면서 생각보다 많이 아파서 무통주사를 달라했는데 맞고나도 딱히 나아지는게 없었다. 약이 들어오는 시원한 느낌은 나는데 통증은 그대로 ㅠㅠ 이게뭐야!!!
아파죽는다고 끙끙대고 있는데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자궁이 거의다 열렸는데 아기가 여전히 너무 위에 있다고 아기가 내려오게 침대 가이드를 잡고 진통에 맞춰서 힘을 주라고 하고는 쌩 가버렸다.
아는 언니 말에 의하면 아기가 너무 위에 있으면 간호사들이 와서 배를 눌러준다는데 언제쯤 눌러주려나 속으로 생각하며 초산이라 어떻게 힘을 주는지도 잘 모르는데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가버려 나는 혼자서 한손으로는 침대가이드를 잡고 한손으론 내 배를 아래쪽으로 눌러가며 아기에게 밑으로 내려오라며 빌다시피 진통을 겪고 있었다.
그 사이 너무 아파서 다시 무통을 맞았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고 아기가 내려오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에 나혼자 배를 누르며 진통과 싸우고 있었다.
10시쯤 되었나 나는 진통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안나는데 신랑이말해준 바에 의하면 의사쌤이 들어와서 나혼자 진통하며 끙끙대는걸 보고는 간호사들한테 엄청 뭐라고 했단다.
어느순간 간호사 세명이 우루루 내 침대로 몰려와서는 내진을 하더니 양수가 이미 터졌다며 내 배에 올라타 아기를 밑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진작좀 와서 밀어주지... 나혼자 30분 넘게 생고생 할때는 진전이 전혀 없더니 간호사들이 와서 밀어주자 10분남짓 하니 아기머리가 보인다며 분만실로 내침대를 끌고 이동했다.
이제는 진통 간격이 짧아져 내침대에서 분만침대로 옮겨눕는 사이에도 진통이 와서 진통이 없는 사이 뛰다시피 후다닥 분만침대로 옮겨갔다. 몇번 힘 주는 연습을 하는 도중에 의사쌤이 들어왔고 또 몇번 더 힘을 줬던것 같다.
출산준비 할 때 힘주다가 대변 볼까 걱정을 참 많이 했는데 진통 막바지에 다다르니 똥이나오든 말든 상관없으니 빨리 힘줘서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기억나는건 간호사가 나에게 "힘줄때 숨을 내쉬"까지 말하는 걸 듣고는 내가 숨을 후우~내쉬었더니 "지말고..."라고 말을 이으며 답답하다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속으로 '이년이? 숨을 참으라고 말했으면 되자나!' 하고 생각했다.
의사선생님이 "자 한방에 갑시다~"라고 하길래 배도 아프고 진통하는 상황이 지겹기도 해서 정말 한방에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 줬더니 머리가 쑤욱 나오면서 그 뒤로 뜨뜻한 무언가가 후루루룩 딸려나오는 느낌이 들며 편안해졌고 그 뒤로 나는 멍때는 상태였던 것 같다.
어느순간 신랑이 머리맡에 있고 탯줄을 자르는 것 같았다. 또 기억나는 건 의사쌤이 아기를 받고는 "아따~ 묵직~하다. 몇키론지 빨리 재봐라!" 라고 간호사에게 재촉했던게 기억난다.
아기를 내 배위에 얹었는데 나는 멍한 상태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서 간호사가 나를 흔들며 "엄마 아기 좀 보세요"라고 해서 그때서야 아기를 봤는데 너무 멍한 상태여서 그런지 막 감동의 눈물이 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아기가 얹혀진 아랫배쪽이 따뜻했고 하얗게 팅팅불은 아기가 마냥 신기해서 손으로 아기 팔을 만졌는데 만지면 안된다며 간호사가 기겁을 하며 저지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머쓱해졌다.
아참 아기는 4120g으로 병원에서 몸무게 탑을 찍었다. 신랑은 탯줄절단식 후에 다시 분만실 밖으로 나갔고 나는 아직 분만침대에 누워있는데 어느순간 다시 배가 아팠다. 의사쌤에게 배가 다시 아프다고 말했더니 태반이 나오는거라며 힘줄 필요 없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다. 또다시 뜨뜻한 무언가가 후루루룩 나왔고 배는 완전히 편안해졌다.
의사쌤은 절개한 부위를 봉합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오랜시간동안 처치를 했다. 다행인건 진통할때 별 효과를 못 본 무통주사가 아예 효과가 없는건 아니었는지 봉합할 때는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마취 특유의 얼얼한 느낌과 함께 꼬매고 있다는 느낌만 있을뿐이었다.
봉합 후 의사쌤이 나가고 나서 분만침대에서 다시 내 침대로 옮겨가는데 갑자기 오한이 밀려왔다. 내가 땀을 너무 흘려 간호사가 옷을 갈아입혀주는데 온몸이 덜덜덜덜 떨리며 몸이 주체가 안되어서 옷에 팔을 끼기도 힘들었다. 분만 대기실에서 출혈이 멎는 상황을 보고 진정이 되면 병실로 올라간다고 했다. 오한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아 이불을 두겹이나 덮었다.
신랑이 내이마를 쓰다듬으며 고생했다고 말하고는 입술에 입맞춰 주었는데 이때까지 만나고 결혼하고 같이사는 동안에 보지 못했던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나의 출산기는 여기서 끝을맺는다. 그 후에도 신랑이 여기저기 전화로 보고하고 친정식구들이 와서 축하해주고 축하연락을 받고 나는 후처치를 하고 등등 더 있지만 더 적으려면 너무 길어지니 여기서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