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임진왜란 전에 최고의 명장이라고 하면 북변에 침입한 이탕개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했던 신립장군이라 할 수 있는데요.
"명장이였던 신립장군이 그저 호기만 믿고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를 선택한것이 아니다"는
의견과 "적을 얕잡아본 신립의 실책이다" 하는 의견이 있는데요 어떤 의견이 더 타당한 걸까요?
일단 당시 조선의 군사는 8천에서 많게는 1만6천정도 라는 자료가 가장 많은 것 같고
주병력은 야인을 휩쓸던 정예기병으로 알고있습니다.
전자의 의견인 경우 "유성룡이 모아준 모집병은 대부분 활만 쏠줄알면 모은 모집병이라
조령에 도착했을 때 피난민으로부터 왜병에 대한 소문에 겁을 집어먹고 근처 야산으로
탈영하는 경우가 많았음은 물론 일본군의 진격로가 3방면의 나누어져 조령만 틀어막아서는
나머지 2방면에 대한 방어를 할 수 없어 3방면의 진격로를 전부 방어할 수 있는 충주를
선택할 수 바께 없었을 것이다" 라고 하고있고 후자의 의견인 경우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기마전으로 단번에 승리하려하다 탄금대의 지반이 좋지않아 대패를 했다"라는
의견입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적에 피해상황 어떤 자료를 보면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하고
어떤 자료를 보면 수백정도의 피해를 받았다 하는데 믿을만한 자료가 있을까요? 또 비가와서
지반이 늪과같았다는 말은 지어낸 말이고 전투당시에는 비가 내리지 않고 날씨가 좋았다고
하는 자료도 존재하던데 신빙성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