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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니혼쇼키들고 쌩쑈를 하는데
게시물ID : history_104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niTells
추천 : 14
조회수 : 944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3/07/03 12: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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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응신 3년에) 백제 진사왕이 세워지는 귀국 천황에 무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기각숙니 우전시대숙니 석천숙니 목토숙니등을 보내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니등이 다시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일본서기 응신 3년
 
 
http://www004.upp.so-net.ne.jp/dassai1/shoki/frame/10/fr.htm <-- 이 쪽이 원문입니다.

 
응신 3년이 서기로 몇년인지 들쑥날쑥 일본서기 기년을 기준으로 맞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이 해를 추정해보면.. 진사왕이 죽고 아화..즉 아신왕이 왕이 된 것은..
 
바로...
 
392년이군요....
 
네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 비문의 신묘년 392년입니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백제와 신라는 옛날 우리 민에 속해서 조공을 했으나 신묘년 이래로 왜인이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를 부수고 ......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현대의 일본인들은 일본서기에 기초한 임나 일본부는 포기했지만 고대 왜가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 기사도 그렇게 봐야지요.
 
중간에 누락된 글자가 있어서 광개토대왕이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는지 왜가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는지
 
알수 없지만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392년에 왜인들이 백제를 쳐부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연대가 일치하면서 일본서기에 적혀 있군요
 
만일에 일본인들이 일본서기 응신 3년 기록을 가지고 광개토대왕 비문을 저렇게 해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걸까요? 즉 일본인들이 일본서기에도 있고 비문에도 있으니 사실이다..
 
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역사가 전공이신 분들,  흔히 강단 사학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이럴 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고 있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강단 이외는 유사 역사학이란 이상한 용어를 만들면서 사이비 취급하시는
 
독보적인 존재시니까요..
 
또 궁금한 것은.. 광개토대왕 비문에 대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논쟁이 있어 왔는데 어째서 일본 쪽에서는
 
이 응신 3년 기록을 본인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있었다면 알려 주시고
 
없었다면 왜 그런지도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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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일어나서보니가 이상한 소리가 쓰여있길래.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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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쇼키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중국과 한국의 사학자는 

니혼쇼키의 외교부분을 딱한개(금강전투) 빼고는 받아드릴수 없다 하지요. 

왜냐면

첫번째는 신화시대까지를 편년체로 역사화했지요.

이게 무슨소리야~~ 라고 하시면 이렇게 예시를 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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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헤라클래스는 헤라여신의 모유를 먹고 힘이 강력해지고

12개의 역경을 극복한 후 

죽어서 헤라의 딸인 헤베와 결혼 그리고 잘먹고 잘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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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 신화를 예를 드냐.

이 뻘건것이 역사화 된다고 해보면 괴상한 역사가 나오죠.. 그리고 니혼쇼키를 보면

진구황후가 출산을 돌로막고 ..... 일엽편주를 타고 삼한을 정벌하였다. 
아시발.JPG
또 일본이라는 작자는 

이주갑이라는 해괴한 기록을써서 120년을 앞당기는 훌륭한 이론까지 내세웠습니다.

히미코=진구황후 하려고
시발1.JPG
 

또 긴메이 덴노를 이야기 하면

80%가 백제 성왕에 관련된이야기가 나오고

또 신라구의 피해를 받는 기록을 보면 일본은 제대로 된 정식 군대가 있던 적이 없어 맨날 당한다느니, 그래도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신국이니 앞으로 

안오겠지 하며 자기위안만 하고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 생각에 랑케가 이걸보면 찢어 버릴거 같아.

즉 내말은 니혼쇼키는 일본 내부적으로는 사료적 가치가 많지만

외교적인 부분에서는 그닥....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도 이해안간다면

예를 들게요.

보통 역사를 편찬할때

우리와 영향이 많은 나라 즉 중국사료,일본사료를 비교대조하면서

사실인지 확인합니다.

하지만 어떤 나라의 사료가 괴상망측하고 판타지 소설삘이 나는  (ex 수나라장병 112만명이 을지문덕의 장풍을 맞고 다죽었다. 치우가 황제를 때려잡

았다.)자료가 나오면 비교대조하고 같지 않거나 뭔가가 이상하면 사학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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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사학과의 입장에서  니혼쇼키의 외교부분을 제거하고 요약하자면
이 해에(응신 3년에) 백제 진사왕이 세워지는 귀국 천황에 무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기각숙니 우전시대숙니 석천숙니 목토숙니등을 보내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니등이 다시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였다.-->아신왕세력이 진사왕을 죽였다.

이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쓸때 없는 자료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해둘거는 말이죠...

왜가 한국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광개토대왕시절 신라의 왜를 쫓아내고나서 영향력을 낸뒤에 어떤 유물이 발견되었나면

호우총에서 국강상광개호지태왕 이란 글자가 박힌 그릇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고구려가 신라에게 영향력을 내세웠다는 유물이 발견되었지요.

그럼 당신들 이론에 맞다고 하면 왜가 영향력을 행사한 유물

그것좀 보여주시면 좋겠네요.

그러면서 전방 후원분 제시하면 죽여버릴거에요.

씨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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