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고 첫 추석.
어린 고양이들을 두고 갈수가 없어서 집에 남기로 했다.
그러다 고양이 카페에 탁묘(고양이를 잠시 맡아주는걸 뜻합니다.)게시판을 구경하게 되었고
혹시나 집 가까이 고양이 맡길곳이 없어 곤란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밥을 주러 가거나 내가 보살펴주거나 할 생각이었다.
헌데 탁묘 게시판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게 의외로 재미지더라.
최근글이야 다 귀성길이 이유였지만, 뒤로 가니 다양한 사연들이 나왔다.
회사 출장이나 여행, 고향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외국에 세미나를 가게 되서 등등 짧고 급한 사정도 있었고
산후조리, 집 문제, 잠깐 부모님댁에 들어가게 되는 등의 몇달이 걸리는 문제도 있었고
군대, 유학 등 1년의 탁묘를 부탁하는 글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나를 짠하게 했던 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 집의 고양이는 둘다 아가씨. 중성화 수술이 되어있는 상태.
나이가 5-6살정도로 기억하고, 젖먹이때부터 손수 분유를 먹였노라 한다.
고양이를 오래 키우다 보면 그 눈빛이나 자세에서 어떻게 키웠는가가 짐작되는데
눈에서 느껴지는 독기나 두려움 하나 없이
하루하루 '오늘은 어떻게 재미나게 놀까?'가 묘생猫生 최대의 고민인
금지옥엽 오냐오냐 키운 공주님이었다.
적당히 토실토실 오른 살과 반지르르한 털은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물이었지.
20대 후반의 총각은 자신의 고양이들을 먼저 소개하고,
1년이상의 탁묘를 부탁하노라고 했다.
솔직히,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이 의아한 기간 명시에 궁금해져 긴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 총각의 사연인즉 이렇다.
자신은 혼자 살며 직장을 다니는 중이고,
몇년전 실직을 하여 몇달 집에서 노는 와중 덜컥 지인이 주운 젖먹이 고양이를 맡았댄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인이 사들고온 분유를 먹이고 똥꼬를 문지르고 처음에는 고생이 엄청 심했더랜다.
시도때도 없이 빽빽 울어대길래 처음에는 이걸 왜 맡는다고 했을까 후회가 컸다고 한다.
원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처음엔 비실비실한 젖먹이가 네 다리에 힘 빠짝 주고 기으려고 애쓰는게 웃기더니,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기어 자신에게 기어오는 것을 보니 눈물이 핑 돌더란다.
그리고, '얘들은 평생 내가 데리고 살아야 겠다.' 마음 먹었다고 한다.
해가 수번 바뀌고 젖먹이가 토실토실 어른 고양이가 되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총각은 어느날 머리가 핑 돌면서 쓰러지게 되었다.
직장동료의 등에 업혀 병원에 가보니 큰 병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당장 입원을 하랜다.
총각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댄다.
친척들도, 자신을 나몰라라 한단다. 연락도 안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집에 와서 엉엉 우는데 고양이 둘이 걱정스런 눈으로 손등을 핥아 주더랜다.
다행히도 사정을 들은 사장님과 사모님이 투병생활동안 편의를 봐주기로 하셨지만
사모님과 아이가 알레르기가 심해 고양이는 맡아줄수가 없다고 했다.
몸이 건강해지면 꼭꼭 우리 딸내미들을 데리러 갈테니 배 곯지 않게 잘 먹여 달라고 부탁했다.
리플에는 힘내라고 격려하는 내용이 많았고, 마지막즈음에 맡아주겠다며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이지 싶었다.
총각의 블로그에 들어가 사진을 보니
[고양이] 카테고리를 보니
아직 손바닥위에 올라올 만큼 작은 사진과
괴상한 포즈로 잠든 고양이의 사진,
고양이에게 넥타이를 매둔 사진,
자는 고양이 옆에 누워서 브이자를 그리며 찍은 활짝 웃는 총각의 사진,
목욕을 당해 잔뜩 젖은채 심통이 난 고양이의 사진,
고양이 둘이 총각의 다리에 달라붙어 자는 사진들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쓴 글에는
포기하지 말자 ^^ 라고 한마디가 써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지금은 서른이 넘었을 그 총각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