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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씨의 이준구교수님 저격 사건의 이유에 대한 고찰
게시물ID : sisa_5996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울대는서울
추천 : 2
조회수 : 150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6/25 12:58:16
얼마전에 변모씨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이준구교수님의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이라고 시비를 걸었죠.

기사1: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48463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준구교수님의 SSCI와 KCI 논문 개재 편수가 낮다는 걸로 시비를 걸고 넘어져죠

기사2: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48464


(1)표절문제

먼저 표절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 조차 없습니다. 변희재가 걸고 넘어진 부분은 직접인용(다른논문의 글을 그대로 옴기는것)시에 

쌍따옴표(" ")를 붙이지 않았다는 것인데... 변희재가 논문을 써본적이 없다는게 잘 나타나는 부분이네요.

학술지, 학교에 따라 이러한 논문 형식은 다릅니다. 어떤 학교는 직접인용을 이탤릭체로 표기하게하는 학교도 있고, 홑 따옴표로 표기하게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따라서 직접인용에 쌍따옴표를 붙이지 않은것은 '표절'이 아니라 '표기오류'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표기오류에 대한 수정은 학교 또는 학술지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저자에게 요청하여 재 수정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냥 아무말 없이 넘어가구요. 또 후에 그걸로 트집잡지도 않습니다. 


(2)논문개재수

먼저 SSCI급 논문이 적은 것에 대해서는...

이준구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68학번입니다. 무려 68!!이요. 

1.PNG
(60년대 서울 시내)

학자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논문을 서술하는 시기가 20~30대 사이입니다. 

이준구 교수님이 30대일때(70~80년대)이때 한국의 학문수준이 세계 변두리of변두리였다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겠죠. 

이러한 상황에서 SSCI??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즉 SSCI논문이 없는건 이준구 교수님의 문제가아니라 그 당시 학문에 종사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죠. 

이준구 교수님 나이대의 교수들 중에 SSCI를 두자리수로 낸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요?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요. 

그리고 KCI 등재수에 대해서는..

KCI(한국연구재단) 설립일은 1981년입니다.

즉 이준구 교수님이 아마도 연구를 가장 활발하게 하시던 30~40대때 처음 설립된 학술재단인거죠. 

근데 그때 이미 서울대에는 서울대 경제학논집이라는 학술지가 존재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상황에 있었다면 듣도보도 못한 새로생긴 KCI에 등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느정도 검증된 저널에 논문을 등재하시겠습니까?

결국 이준구 교수님은 KCI대신 서울대 저널을 택하신거고 그 판단은 개인의 문제이지 교수님이 쓰신 논문의 질을 따지기 위한 근거로는 부적합하다고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변희재씨가 이준구 교수님을 공격한 근거는 변희재씨가 이쪽 사정을 잘 모른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행동일 뿐이며, 

이준구 교수님 입장에서는 귀찮은 i벌레(이준구 교수님이 'i사이트'라 칭하는 곳에 서식하는 네티즌)가 도를 넘어서 시비거는 것으로 밖엔 안보이시겠죠.  
----이하는 저의 상상속 소설입니다------------
-------------------------------------------------------------------
저는 고민이 됬습니다. 변희재씨는 왜 이런 말도안되는 시비를 건걸까? 

잘못하다간 수천, 아니 교수님의 명성도를 고려할때 그 이상의 벌금을 지불하게 될 수 도 있는데도 말이죠. 

이때 머리에 스치는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조국교수 논문 표절 사건입니다. 

기사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7844

변희재는 조국교수의 논문이 표절이라며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 위원회에 표절 여부 검사를 의뢰했죠.

그리고 얼마 뒤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 위원회에서는 변희재측이 제시한 표절증거가 '극히미미'하거나 '규칙상 문제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변희재는 서울대의 이러한 결론에 빡이 친겁니다. 

그래서 변희재는 조국교수의 논문의 정당성을 훼손시키기 위해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 위원회의 입지를 좁힐 궁리를 하게되죠. 

그러던중 진실성위원회 위원장인 이준구 교수님이 눈에 들어오게 된거고 이런 작전을 펼친겁니다. 

이준구 교수님이 변희재에 대한 고소를 하고 당연히 승소하겠지만, 

대중은 서울대 진실성위원회 = 표절 논란 있었던 교수가 위원장 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조국교수 논문 표절 사건에 대한 결론은 신뢰성을 잃게 되는 겁니다. 

즉 이런 프로세스입니다.

'어? 이준구 교수가 표절을 했어? 교수 자격미달이라고?' ->'어? 근데 이준구 교수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위원장이라고?' 
-> '어? 근데 연구진실성 위원회에서 조국교수 논문을 표절아님으로 결론내리지 않았나?' -> '에이. 믿을 수가 없네'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위 내용은 소설일 뿐이지만, 변희재씨의 엄청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라 여기에 올려봅니다. 

콜로세움 환영입니다. 

//좀더 부연설명을 하면 조국 교수가 논문을 쓴 시기는 286컴퓨터를 쓰던 시대였습니다. 

논문 써보신 분 들은 아시겠지만 요즘은 대부분 문헌 정리하는 프로그램으로 쉽게쉽게 참고문헌을 표기할 수 있죠. 
또 특정 문장이 어느 논문에서 인용했는지 기억이 안나더라도 검색을 통해 쉽게 그 원 논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러한 일이 너무나 힘든일이었습니다.
논문을 읽기 위해서는 중앙도서관까지 가서 논문을 빌린 후 도서관 내에서 읽어야 했습니다.(반출이 불가..)

논문을 쓸때 무의식 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다른 논문에서 읽었던 내용을 넣을 수 있는데, 

나중에 어느 논문의 어떤 부분에서 인용했는지 기억을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걸 찾는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며 찾아야합니다.
(찾는다는 보장도 없지만요)

서울대학교에서는 이러한 그 당시 수 많은 논문에서 나타났던 '인용 미기재'를 극히 '미미한 과실'로 처리한것입니다. 즉 논문의 정당성을 해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죠. (조국 교수가 잘못한건 맞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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