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해방 이후 최고의 지도자로 뽑혔던 자,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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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아주 많이 전에 쓰긴 했지만, 첫번째로 몽양 여운형 선생에 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원봉과 김구, 특히 김원봉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반수를 하고 있는 관계로 많이 쓸 수가 없지만, 그래도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마음 속에 끌어오르는 것이 많아서 역사게시판에 남겨봅니다.
김원봉(1898 - 1958) 호는 약산(若山)
독립운동가의 양대산맥 중 하나입니다.
한인애국단의 단원,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 이후 김구에게는 현상금이 걸립니다. 당시 현상금 60만원, 이 60만원이면 그 때 중국의 큰 저택, 음... 말하자면 타워팰리스같은 그런 고급저택을 5채?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이랍니다. 그런데 김약산, 약산 김원봉의 현상금은 300만원. 당시 그의 이름은 일본인에게 제 2의 이순신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김원봉이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나 김구 선생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비운의 독립운동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여운형 이야기에서 보았던 좌우합작이 결렬되고 그는 월북합니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다가 후에 김일성이 타 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김원봉 선생의 생은 마감하게 됩니다. 남한에서는 북한으로 갔다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독재 과정에서 숙청당한 이유로, 모두에게 잊혀진 비운의 운동가. 하지만 누구보다 조국의 광복, 통일된 조국을 바랐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김원봉은 "의열단"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서 처음 만난게 됩니다. 의열단은 1919년 12월에 만주 지린성에서 창립한 의열 투쟁 단체로서, 일제의 요인 암살, 민족 반역자 암살, 식민지 지배 기구 파괴 등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이념적 지표로는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이 있는데 이 선언은 수능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료 중 하나입니다. 몇 자 쓰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략> 강도 일본을 쫓아내려면 오직 혁명으로만 가능하며,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중략>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 10만이 폭탄을 한 번 던진 것만 못하며, 천억 장의 신문, 잡지가 한 번의 폭동만 못할지니라...<중략>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후략>
신채호의 화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선언입니다. 즉 폭력으로 독립을 추구하자는 말입니다. (신채호 선생의 표현 그대로이니 태클을 걸려면 신채호 선생에게 직접 거시길 바라며) 그래서 의열단은 경찰서 폭파, 동척 폭파 등을 수행합니다. 당시 우리 민족에게는 어둠 속의 한줄기 빛과 같았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중국의 황포 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장교를 양성하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하여 군을 꾸리는데 주력합니다. (황포군관학교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군관학교이나, 현재는 나이트클럽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미친 중국놈들)
무튼 20년대에는 김원봉은 의열단을 이끌고 이런 폭력 투쟁으로 항거합니다. 허나 30년대로 넘어가면서 한해 한해 지나가면서, 독립운동은 자꾸 힘들어져 갑니다. 김구는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동하고있는 중이고, 국내에는 많은 독립운동들이 좌절되어갑니다. 이런 김원봉은, 중국 관내에 있던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하나로 합쳐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끌던 의열단을 주축으로 수많은 세력을 합하여 1935년 "민족 혁명당"을 결성합니다. 이는 민주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을 하나로 합친. 중국 관내 최대 규모의 연합 전선입니다. 하지만 김구는 임정을 이끌고 이동하고 있는 관계로 빠진 상태이고, 지청천과 조소앙은 탈퇴하여 김구에게 합류합니다. 그래도 이 민족 혁명당은 조선 민족혁명당이라는 이름으로 민족 유일당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1938년, 중국 관내에서는 최초로 결성된 한국인 무장부대인 "조선 의용대"를 결성합니다. 중일 전쟁을 계기로 머리가 빡돈 중국이 자기의 적의 적인 한국과 손을 맞잡은 것이지요.
"조선 의용대는 조선민족해방의 선봉대로서 천백만 자기 동포를 환기해서 조선민족해방을 쟁취하자는 것이요, 우리는 이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완전히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중국의 형제들, 긴히 악수합시다. 공고히 우리는 오늘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참으로 우리의 진정한 동아시아의 행복사회를 건설합시다."
라는 말을 합니다.
항일전선 최선두에 선 정예부대 조선 의용대, 그리고 그 군대를 이끈 김원봉. 후에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충칭에 안착시키고 김원봉을 부르자 그는 합류하여 그 유명한 "대한 광복군" 군대를 증강합니다.
독립 후에, 자주적인 국가를 꿈꾸었으나 실패. 분단되지 않기를 바랐으나 이도 물건너 갈 것 같았습니다. 좌우합작도 실패했습니다. 여운형도 암살되었습니다. 그는 월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을 구축하다가 김일성이 독재를 꿈꾸며 잔여세력을 숙청할 때 김원봉의 정치 생도 마감을 합니다.
모든 청춘을 독립운동에 받쳤던 자. 300만원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상금을 달고 다녔지만 잡히지 않았던 자.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노덕술이라는 악덕 친일파 경찰에게 잡혀 고문을 당했습니다. (노덕술 개새끼) 삼일 밤낮을 고문을 당하고 그는 피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꿈꿔왔던 해방된 조국은 적어도 그런 나라는 아니였을 것입니다.
아 여운형 때 보다 훨씬 길게 썻네요. 뭔가 이 분은 해야할 말들이 많아서... 다음에는 양대산맥 김구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언제 찾아뵐 진 모르지만 수능 전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