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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시절 문재인 일병의 깡 [펌]
게시물ID : sisa_10380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언제나마음은
추천 : 256
조회수 : 7052회
댓글수 : 28개
등록시간 : 2018/04/01 03: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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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봉 특전사가 말하는 문재인의 해상훈련

 

나는 목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2년 7월 육군 제2하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원래 계획은 일반 보병부대에서 근무를 원했으나 

키가 크고 체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임관과 동시 특전사로 차출되었다. 

 

1973년 6월에 제1공수특전여단 3대대로 전입되었고 

1973년 말부터 대대 작전과 작전하사관(부사관)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1975년 12월 말 작전과 교육계원으로 보직 받은 문재인과는 작전하사관(부사관)과 교육병으로, 

문재인이 1978년 2월 전역 시까지 한 사무실 밥을 먹고 근무했다. 

  

어느 부대든지 큰 훈련을 앞두면 부대 전체가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나는 공수교육과 특수전 교육을 수료한 후에 자대 보직을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모든 훈련에 참가해야만 했다. 

 

1973년 6월이 되자 부대원들 간에 해상훈련에 관해 말들이 많았다. 

고참 하사들은 은근 슬쩍 해상훈련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말하면서 겁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내가 목포 출신이고 수영에 관한 한 자신 있는데 겁을 줘? 훈련장에서 보자.’ 하고 비웃었다.

 

7월 초순 우리 대대는 고양에 있는 능곡역으로 이동 후 특별 군용열차를 이용하여 용산을 거쳐 보령의 웅천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무창포해수욕장까지는 약 7~8km를 도보로 이동하였다. 

숙영지 편성을 한 후 다음 날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나는 속으로 ‘나만큼 수영하는 놈들이 있을까?’ 하고 자신만만하게 훈련에 참가했다. 

  

수영 훈련은 2주간 실시하며, 수영 능력에 따라 

A, B, C, D조로 나누어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 

D조는 소위 맥주병 그룹이다.

첫날 PT체조가 끝나자 대대 전원을 대상으로 수영 능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나는 당연히 인명구조급에 속할 것으로 자신하고 테스트를 받았는데 교관의 판정은 

“B급”이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B급이라니’ 기분이 나빴지만 감히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모병하사도 아닌 일반하사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어쩔 수 없이 B조로 가서 훈련을 받았다. 

그날 오후에야 왜 B조로 편성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수영법(자세)이 틀린 것이었다. 

친구들과 갯벌에서 멋대로 배운 수영이라 FM의 눈으로 봤을 땐 촌놈 수영인 것이었다.

 

전입 첫해 수영 훈련이라 의도적으로 급수를 낮춰서 고생을 시켜야겠다는 의도도 보였다. 

PT체조로 2주를 보냈다. 엄청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등과 허벅지 화상이 힘든 훈련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1974년은 A조에서, 1975년에는 드디어 인명구조 과정을 수료하였다.

무려 3년차 훈련 만에 최후 관문을 통과했다. 

  

1976년 여름 그해는 지루한 장마로 비가 많이 내리더니 7월에는 폭염이 계속되어 야외 훈련이 많은 우리는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중사로 진급했고 작전과의 행정 업무를 도맡아야 될 중간 관리자가 되었다. 

 

7월초 지난해와 다름없이 열차로 웅천역까지 이동한 후 도보로 훈련장까지 이동했다. 

금번 훈련에는 지난 연말에 전입 온 문재인 일병도 함께 가서 상황실은 물론 훈련 진행도 유지하면서 동시에 훈련도 받아야 되니 무척 바쁘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고급 인명구조원 과정을 수료했기 때문에 

이번 훈련 시에는 인명구조 보조 교관으로 편성되었다. 

 

보통 B~D조는 교관 1~2명에 조교 3~4명 정도이나

인명구조와 A조는 먼 바다까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주통제관 1명과 보조교관 수 명, 조교 수 명으로 편성이 되었다. 

 

오전 테스트가 끝나니 본격적인 인명구조로 편성된 인원이 30여 명 되었다. 

나는 고무보트 1척과 조교 2명을 통제하여 

인명구조 3조로 편성된 7명에 대한 교육과 안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숙영지로 돌아오니 문재인 일병은 벌써 돌아와 있었다.

“야 문재인 몇 급 받았어?” 하고 물으니 피식 웃으면서 “C급요.” 

“뭐 C급? 너 수영 잘한다고 했잖아, 부산 놈이.”

그러자 “수영은 자신 있지요. 그런데 수영법이 틀렸답니다.”

역시 공수부대의 ‘갑질’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이 지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의 어깨 및 등이 벌겋다. 

“아뿔사! 미리 주의를 주어야 했는데!” 

미처 화상에 대해 주의를 주지 못해 후회가 되었다. 

 

당시에는 오일이나 선크림 같은 것이 전혀 없어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해상훈련 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피부 화상이었다. 

지역대에서는 초여름부터 과외 시간에 웃통을 벗겨 피부가 뙤약볕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데, 

대대본부 참모부 요원들은 행정에 주력하다 보니 웃통 벗고 썬텐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30도 이상 되는 뙤약볕에 노출되니 화상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3일째 훈련이 종료되고 상황실로 돌아온 문재인 일병이 

“백 중사님. 저 내일부터 B조로 올라갑니다.” 하기에 

“너무 힘들게 하지 마. 병들은 아무리 잘해도 인명구조에 넣어주지 않아. 

 

금년에는 B조, 내년에는 A조에서 적당히 하다가 제대해.” 하고 훈수를 두었다. 

그러자 “하면 되지, 왜 병사라고 안 됩니까?” 

“네가 공수부대를 몰라서 그래, 특수전은 머리 좋아 어떻게 우등생이 되었더라도 수영 훈련은 안 돼, 너 등 좀 보자.” 하고 등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물집이 생겼다. 

 

나도 3년 전에 화상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피부가 벗겨진 채 바닷물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아프고 쓰리고, 그다음에는 무감각해진다. 

이제는 방법 없이 끙끙거리면서 상처가 자연히 아물고 피부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견딜 수밖에 없다. 

그날 밤 잠을 자면서 뒤척이는 것을 보니 등이 매트리스와 닿으니 쓰린 모양이었다. 

 

4일째 되는 날 또 “저 내일 A조로 올라갑니다.”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너 나한테 공갈 치냐?” “저 거짓말 안 합니다. 교관님께 물어보세요.”

 

6일째 되는 토요일 그날은 오전 교육으로 끝나고 오후부터는 즐거운 주말이다. 

토요일 훈련이 끝난 문재인 일병이 

“백 중사님, 다음 주부터 인명구조원조로 올라갑니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수영 실력이 정말 대단한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음 주부터는 내가 가르치는 인명구조원 교육을 받는다는 것 아닌가? 

두고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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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이병이 최초 (76년) 해상훈련 받을 때의 모습

image (1).png

둘째 주 첫째 날이었다. 

훈련 전에 교관이 문재인 일병을 소개했다. 모두 수군수군 댄다. 

 

아마도 일부는 수영 실력이 좋은 모양이다는 긍정적인 말과 병을 인명구조원 교육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약간의 불만 섞인 말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재인이 배정받은 조의 보조교관은 우리 대대에서 가장 악명 높은 A교관이었다. 

이 장교는 교육생들을 물 먹이고 괴롭히는 게 취미인 아주 고약한 교관이었는데 문재인이 제대로 걸린 것 같았다. 

  

교육 진행은 총통제관(당시 상사가 통제관)이 진행 시간과 훈련 내용을 브리핑하면 

보조교관(통상 중위에서 중사)들이 1개조 7~8명으로 편성된 인원을 통제하여 훈련시켰다. 

 

수영 능력이 인정된 요원들의 훈련이라 조별 30~50m 정도 이격해서 하는데 

이때 각 조별 훈련과 안전의 책임은 조별 보조교관들에게 있었다. 

훈련이야 강하게 받아야 하고 실력을 제대로 갖춰 자격증을 받아야 하겠지만 문재인이 마음에 걸렸다.

 

부산 출신이라 수영은 잘한다고 하지만 

교관들은 물론 훈련조 편성 자체가 장교나 부사관 들인데 

병, 그것도 일병이 끼었으니 여러모로 엄청 힘들 것이다.

휴식 시간에도 온갖 허드렛일도 도맡아 해야 하는데……. 

 

더구나 우리 작전과 병사인데 내 조로 편성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해보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맡은 조를 문재인 조 가까이에 위치시키고 

나는 보트 위에 앉아 내 조와 문재인 조를 번갈아 보면서 교육을 진행했었다.

 

월요일은 별일 없이 훈련이 종료되었다. 

훈련을 마친 문재인 일병이 

“백 중사님, 인명구조원 훈련도 할 만하네요, 

이 훈련은 제대해서도 써먹을 수 있겠습니다.”

하며 좋아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고급 인명구조원 자격요원들이 

YMCA와 특전사 요원을 제외하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풀장이나 수영장에 가면 무료입장의 특혜를 받았었다. 

 

“야 문재인. 네 조 교관이 대대에서 가장 악랄하니 당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라.” 

  

둘째 날 훈련이 시작되자 A장교는 그 특유의 악랄함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익히 악랄함을 알고 있던 훈련 요원들은 가급적 A교관이 타고 있는 보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그리고 보트가 다가오면 재빨리 뒤로 혹은 옆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몰랐던 문재인은 보트 가까운 데 있었으니 바로 교관의 밥이 되었다. 

 

훈련 요원을 골탕 먹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안전용 보트에는 긴 대나무 막대기를 한 개씩 싣고 있었다. 

이 대나무 막대기는 긴급상황 발생 시 물에 있는 훈련 요원들에게 내밀어 이것을 붙잡고 보트로 다가오게 하거나 끌어당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악랄한 이 교관은 장대 끝에 낡은 메리야스를 둘둘 감아 횃불 뭉치처럼 한 다음에 

그 장대 끝을 훈련 중인 요원의 등이나 목 부위 등에 대고 눌러버리는 것이었다. 

 

끝에 메리야스를 감싸는 이유는 그나마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즉 자연 상태인 대나무 장대를 등이나 목 부위에 대고 누르면 햇볕에 익은 피부껍질이 벗겨지기 때문이었다. 

 

앞만 보고 수영을 하거나 입영(발만 움직여 물에 서 있는 영법)하는데 

갑자기 막대기를 어깨에 대고 눌러버리면 예상하지 못한 채 물속으로 들어가 바닷물을 마시거나 코로 물이 들어가게 된다. 

 

민물도 코로 물이 들어가면 매워서 눈물, 콧물 다 나오는데 바닷물은 오죽하겠는가? 

두어 모금만 마셔도 전날 먹은 음식까지 토할 정도로 속이 메스껍다. 

  

셋째 날 오후 마지막 즈음 훈련병들은 훈련 종료를 위해 

각종 영법(평영, 배영, 횡영)을 활용해 수영으로 철수를 하고 있었다. 

(2마일 수영을 위해 수시로 장거리 수영 실시) 

 

그때 갑자기 요란한 물장구치는 소리와 함께 신음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A교관이 문재인을 물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물을 마신 문재인 일병은 정신없이 보트를 붙잡으려고 버둥거리고 A교관은 계속 밀어 넣으려고 한다. 

 

“결국 한 번은 당하는구나.” 하고 안타까워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물 폭행을 저지른 후 축 늘어진 문재인 일병이 동료들에 의해 보트로 끌어 올려졌다. 

주변 요원들도 연례행사 치르듯 무표정들이다. 본인들도 몇 번씩 당했으니까. 

 

그날 석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았다. 

속이 얼마나 메스꺼울까? 

“야 문재인. 괜찮아?” 하고 물으니 씩 웃으면서 

“속이 굉장히 안 좋은데요.” 하는 것이었다. 

  

넷째 날이 되었다. 

훈련이 시작되면서 총통제관이 금일 훈련 계획을 지시한 뒤 본인은 내일 인명구조 취득을 위한 평가요원을 맞으러 대전역에 가야 하니 선임교관인 A교관의 지시를 받아 훈련을 하라는 말을 하고 훈련장을 떠났다. (당시에는 서울 YMCA 수영 강사들이 직접 훈련장에 내려와 평가를 하고 합격, 불합격을 판정했다.) 모두들 구조법을 익히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A교관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하루 종일 이곳저곳으로 보트를 몰고 다니면서 

정상적으로 잘 받고 있는 훈련 요원들을 지적하면서 꾹꾹 물속으로 눌러댔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내일이면 YMCA 강사들에 의해 평가를 받게 된다. 

구조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리발을 착용하지 않고 하는 2마일(3.2㎞) 수영은 사실 어렵다. 

 

주로 평영과 배영으로 하는데 배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법이 아니고 

평영을 누워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훈련 종료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마침 조수가 썰물이 되었다. 

A교관의 지시로 전 인원을 보트에 싣고 바다 안으로 약 1㎞ 정도 들어갔다. 

 

1㎞ 정도 들어갔으나 물이 빠지니 해변까지 500m밖에 되지 않았다. 

훈련 요원들을 앞세우고 안전보트들이 뒤에 따르면서 해안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물속에서 퍼득거리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A교관과 문재인 일병이 뒤엉켜 허우적거리는데 A교관이 “윽윽”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 후에 A교관은 보트 위로 끌어 올려졌다.

 

상황실로 돌아온 후 어떻게 된 것이었냐고 문재인에게 물었다. 

A교관이 너무 훈련 요원들을 괴롭혀 모두들 불만들이 많았고 

자신도 물을 마시고 보니 괴롭고 힘들어 계속 그렇게 훈련생들을 괴롭히면 한번 혼내줘야겠다고 작정을 했었단다. 

오늘도 그런 행동을 계속하면서 

또 자신을 밀어 넣으려고 하자 

작심하고 

심호흡을 한 후 대나무 장대를 잡고 

순식간에 물속으로 힘차게 들어가면서 힘껏 당기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A교관이 그대로 물에 끌려 들어왔다는 것이다.

A교관이 물에 빠지자 뒤에서 허리를 껴안았고 

자신은 숨이 다 차오를 때까지 붙잡고 늘어졌으니 분명 바닷물을 제대로 마셨을 거란다. 

기가 막혔다. 

 

“야 진짜 너 간 크다. 어쩌려고……. 하여튼 시원하다. 잘했어. 그런데 후폭풍을 어떻게 하지?” 

그러자 “교관님이 워낙 잘못했는데 뭐 별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하며 능글맞게 웃는다.

 

“이 xx 봐라, 진짜 간덩이 부었네.” 

이렇게 말하면서도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날 밤 혹시 문재인 일병을 불러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황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가보니 중사, 하사 서너 명이 뭘 잔뜩 들고 들어온다. 

당시로서는 PX에서 제일 값이 비싼 연양갱 등을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리고 “야! 문재인 고맙다. 우리도 못했는데 시원하게 물 먹여줘서.” 

“아주 후송 보내지 그랬냐.” 등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머리 좋은 놈이 배짱도 두둑했다. 

  

다음 날 고급 인명구조원 평가는 성공적이고 아무 사고 없이 전원 합격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부대 복귀해서도 A교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새까만 일병한테 물 먹었다는 얘기를 하기가 창피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교관에게 당한 수많은 요원들의 소리 없는 응원이 부담으로 작용해서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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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안녕하십니까. 문재인입니다아.






#황교안구속
#네이버_수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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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차
https://blog.naver.com/changnam6950
https://blog.naver.com/changnam6950/220942652384
2차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document_srl=507620856&statusList=BEST%2CHOT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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