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은 처음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인 아그리파에 의해 기원전 27년에 만들어졌다. 처음 건축 당시의 모양은 현재와 같은 모양이 아니었고, 지붕도 목조 형태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네로 시대인 기원후 80년에 일어났던 로마 대화재 때 모두 불에 탔다. 이것을 현재의 방식으로 다시 건축한 사람은 하드리아누스였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시스템을 점검한 사람으로 별명도 ‘부지런한 일꾼’이었다고 하는데, 부지런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던 듯 현재의 판테온을 직접 설계했다고 전한다.
판테온이 유명한 첫째는 바로 그 건축미 때문이다. 지붕을 완전히 돔으로 둘렀는데, 그 돔에는 하나의 기둥도 쓰이지 않은 것이다. 하드리아누스가 다시 만든 시점이 125년이니 거의 2,000년 전의 일인데, 그때 이런 건축물을 만들 기술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어떤 기술이 쓰였는지는 검색해보면 금방 안다).
판테온이 유명한 둘째는 바로 그 의미이다. 판테온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 즉 ‘만신전’의 의미를 갖고 있다. 판테온의 최초 건축자인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내전을 마무리했다.이때 로마는 반으로 나뉘어 전투를 벌였으며, 이집트, 유대, 그리스 등 제국 내 여러 나라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내전에 참여했다. 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도 이 내전에 아우구스투스의 반대편인 안토니우스 편에 참여했다(결국 패배 후 자살하고 만다). 이 전쟁을 끝내고 만든 것이 바로 판테온이다. 다신교 사회 로마에서 다른 민족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렇게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제국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수많은 전쟁을 끝낸 후 승자의 ‘관용’ 혹은 정치적 제스처 정도로 평가 절하 할 수도 있지만, 종교 갈등으로 인한 학살이 일어나는 현대에 ‘만신전’ 판테온의 의미는 새삼 마음에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안으로 들어가니 무료라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가득했다. 돔을 꼭대기 빈 공간을 통해 들어온 햇빛은 동그랗게 벽면을 비추었고, 안에 수많은 조각품과 함께 신비감을 더했다. 물론 하드리아누스 당시의 조각품은 대부분 사라졌다. 다신교 사회에서 일신교 사회인 기독교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판테온은 풍파를 겪었을지언정 성당으로 바뀌어 다른 건축물처럼 파괴되는 운명에서는 벋어날 수 있었다. 판테온은 아직도 성당으로 사용되는데 난 비록 무신론자지만, 잠시 앉아 로마시대 있었을 법한 ‘모든 신’들에게 기도 했다.
기도가 끝나고 판테온에서 나오니 이미 밴드는 사라지고 없었다. 짜증을 사라지게 한 고마움은 이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고마움은 그때그때 표현해야 하는 군’이라는 도덕 교과서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뭐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이 곧 미안한 마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잠시 밴드가 있던 장소를 멍하니 쳐다보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선 골목 사이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 골목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그들은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려 들어갔는데, 어딘가 보니 바로 젤라또 가게였다. 마침 목도 마르고 피자도 많이 못 먹어 허기도 진데, 이거라도 먹자 싶어 같이 들어가 젤라또를 샀는데, 그냥 아이스크림이었다. 하도 이탈리아 젤라또가 유명하다고 해서 살짝 기대를 했지만, 예상만큼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후에도 유명하다는 젤라또 가게를 몇 군데 갔는데 – 몇 군데 갈만큼 먹을 만 하다는 소리다 – 감동을 자아내는 맛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렇게 젤라또를 먹어가며 조금 걸어 도착한 목적지는 바로 나보나 광장이다. 나보나 광장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들었던 경기장 자리에 생긴 공원이다. 후에 경기장은 사라졌는데, 경기장이 있던 자리는 광장으로 남았으며 주변은 건물로 채워졌다. 나중에는 분수도 만들어져, 이 광장을 꾸미고 있다. 하지만 나보나 광장에서 본 것은 이런 역사성보다 여유였다. 이 여유는 아까 판테온 앞 광장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나보나 광장은 이보다 더 컸고, 더 많은 사람이 있었고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은 식당 밖 테라스에 앉아 식사도 하고, 와인과 맥주도 마시면서 햇살을 즐겼다. 나도 그곳 벤치에 앉아 햇살을 즐겼다. 나에게 이곳에서 보고 즐길 것은 그 햇살이 전부였다. 나도 식당 어딘가 앉아서 와인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여행의 사실상 첫날인 오늘은 아직 무엇을 해도 어색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아.. 다른 곳도 봐야지.’란 강박이 생겼다. 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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