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말 오랫만에 오유에 글 써보네요.
2015년에 산 Cayman S를 약 오년 간 열심히 몰고 다니다가, 약 두 달 전 '아직 삼십대 초반인데, 이렇게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포저씨 같이 살 순 없어' 라는 생각이 들어 새 차 구매를 결정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911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뭔가 더 재미있고 유니크한 차를 타고 싶더라구요.
(이제는 제 손을 떠나간 귀염둥이 Cayman S. 잘 가. 행복해야 해. ㅠㅠ)
그래서 처음 면허를 따고 차를 살 때의 맘으로 돌아가 어떤 차를 타면 출퇴근 길이 좀 더 행복해질까를 생각하며 중고차 사이트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제 구매의 기준은
1) 8만 불 이하의 가격
2) MR
3) 경량
4) 직관적
5) 제가 제어 가능한 정도의 마력
6) 쿠페
정도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찾다 보니까 별로 이 조건을 맞춘 차가 많지 않더라구요. 그냥 있는 차나 좀 더 손 봐서 그냥 계속 타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유튜브에서 예전 탑기어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Alfa Romeo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한 번 이 차를 보고 나니까 다른 차는 눈에 들어 오지도 않더라구요. 양산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바디하며, 이쁜 차체와, 깜찍한 익스테리어.. 네, 저는 얼빠였습니다.
결국 4C를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매물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만... 쿠페 모델은 2018년에 단종 되었고 스파이더 모델도 2020년에 단종되어서 도저히 매물을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심지어 Alfa Romeo 딜러쉽에 연락해서 매물이 없냐고 물어보니 판매 직원이 빵 터지며 꿈도 꾸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구요. 어쩔 수 없지 개인 브로커까지 고용해서 이 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친구 소개로 일을 부탁한 이 브로커는 처음엔 금방 찾을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하더라구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이주일이 지나가고.. 거의 한달 동안 이 브로커와 전 하루 건너 문자를 나누며 브로맨스를 쌓아가기 이르릅니다. 제가 인사만 해도 별별 사과의 말과 얼마나 열심히 자기가 찾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과 앞으로 할 것에 대한 계획, 포부를 줄줄줄 보내는 지경까지 와서 연락을 하기가 미안하더라구요. 아마 그 친구는 매일매일 자소서를 쓰는 기분이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중 겨우 지난 달 초 물건을 찾았다며 당장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일까지 땡땡이 치고 브로커를 딜러쉽에서 만난 건 좋은데... 그곳에서도 차를 방금 매입해서 아직 정비도 못 끝냈다며 보여 줄 수도 없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 시험 주행도 해보지 않고 여기서 계약을 하나.. 아님 물건을 놓칠 수도 있는 걸 감안하고 기다리나.. 제 이성은 제발 진정하라고 제게 말했지만 전 이미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낀 상황이었습니다.
허겁지겁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이틀 뒤에는 출고 가능하니 그때 보자는 판매직원의 사람 좋은 미소 뒤에 숨겨진 그것을 전 그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Alfa Romeo는 이탈리아 브랜드라는 사실을요...
(이딸리아 감성 알지?)
처음엔 브래이크를 갈아야 한다며 이틀 더 출고가 늦어질 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 다음엔 배기가스 검사에 문제가 있어 부품을 새로 주문해서 일주일이 더 늦어 진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 '그래 중고차고 미리 문제를 발견해서 딜러쉽에서 비용 부담해 처리해 주니 오히려 좋은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거의 열흘을 기다려도 아무 연락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까 그 브로커에게 연락해서 아니 어떻게 된거냐, 왜 차도 출고가 안 되고 연락도 없는거냐며 따지니까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구요. 한 참 뒤 다시 연락이 와서 한 말에 전 할 말을 잊었습니다.
단순한 부품 교환이 아니고 차 ECU와 전반적인 와이어링 교체를 다 해야해서 부품을 이탈리아에서 주문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처음에 한 수리는 뭐냐고 물으니 영업 직원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출고가 늦어지니 그냥 둘러대서 한 말이라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차 출고도 전에 이탈리아 차의 맛을 진하게보고 결국 거의 삼주를 기다려서 1월 1일 새해에 차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로 차를 받았는데 제 기분이 어떨거 같나요? 정말 길길이 날 뛰면서 화를 내... 기는 커녕 이쁜 차 보고 전 혼이 나가서 그냥 헤헤ㅎ헤헿 웃기 바빴죠.
(이렇게 이쁜데 화가 나겠습니까?!)
첫 인상은 정말 이상한 앵글이 없을 정도로 어디서 봐도 이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물 한 번 보지도 않고 구매한 최상급 호구가 바로 여기있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정말 카본 아끼지 않고 엄청 썼더라구요. 밖에서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 실내엔 정말 구석구석 카본이 안 보는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카본이 없는 곳은 저렴하기 짝이 없는 플라스틱 도배. ㅋㅋㅋ
운행기는 다음에 더 자세하게 써 보고 싶지만, 요약하자면 정말 시끄럽고, 불편하고, 불친절합니다. ㅋㅋㅋ 하지만 그런 점이 운전하는 맛을 더해줍니다. 차 문을 열면 연료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시동을 걸면 배기음이 온 주차장을 울립니다. 조금만 악셀을 밟아도 터보가 돌아가며 바가 올라가는 소리가 바로 귀 뒤에서 들리고, 코너 앞에서 다운 쉬프트 하면 팝콘 튀기는 소리가 들리구요. 차체가 엄청 낮은데다가 문 두께가 엄청나서 어지간히 유연하지 않으면 아에 탑승조차도 힘듭니다. 가장 압권은 무파워 핸들이라 저속에선 정말 운동하는 느낌이고 도로가 울퉁불퉁하면 목숨 걸고 핸들링 해야지 안 그럼 언제 옆으로 튀어나갈 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운전 경력 십년 이상인데 처음 고속도로 주행해보니 손에 땀이 가득하더라구요. 마치 다시 운전을 배우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한 건 운전이 아니라 그냥 카트라이더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차를 운전하는게 익숙해지면 다시 포르쉐를 몰아보고 싶어요. 그때는 당당히 포저씨가 되어 911을 몰아보고 싶습니다. ㅋㅋ
지금까지 이딸리아 갬성 맛 진하게 첨가된 눈물겨운 우여곡절 2015 Alfa Romeo 4C Launch Edition 구매기였습니다.
사족 1. 그런데 이 영맨, 끝까지 문 열다가 조심 안해서 문콕하고 차문 찍어먹더군요. 고쳐준다고 사진 찍어가긴 했는데, 참 뭐 이딴 사람이 다 있나 싶더라구요.. 어후 진짜..
사족 2. 북미에 500 대 한정 판매된 모델인데 제 건 400번이더라구요. 생각치도 못했는데 좋은 번호라서 더더욱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