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날 점심을 먹으러 시장에 들어갔습니다.
채소 가게 앞 빨간 바구니 안에 왠 주먹만한 고양이가 꼼짝도 안하고 쓰러져 있더군요.
죽었나 싶어서 들여다봤는데 순간 녀석은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들었고 우리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미소년이다. 냥계의 미소년이군.
나는 미소년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들은 소중한 존재이니깐요.
채소 가게 아주머니께 키우는 고양이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면서 키울거면 데려가라고 하더군요.
아주머니가 귀찮아하셨지만 몇가지 더 여쭤봤습니다.
(저는 납치와 구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미냥이는 시장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녀석이고 다른 고양이의 영역을 지나가는 중에
저 녀석을 흘리고 간 모양인데 이틀째 찾으러 오질 않는답니다.
며칠째 못 먹어서인지 기운 없이 쓰러져 있는 꼴을 보고 결국 구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넣어갈 곳이 마땅치 않아 채소 가게 아주머니께 혹시 작은 박스가 없는지 여쭤봤습니다.
"뭐? 고양이를 데려간다고? 채소집에 박스가 어디 있노, 김씨 혹시 박스 있나? 고양이 데려간단다"
"뭐? 고양이를 데려간다고? 빤스 가게에 그럴만한 박스가 어디 있어, 박씨 혹시 박스 있어? 고양이 데려간단다"
"뭐? 고양이를 데려간다고? 그럼 내 그럼 특별히 이쁜 박스로 줘야지!"
그렇게 북유럽 대세를 잘 아는 아주머니 덕분에 245사이즈의 올 화이트 신발 상자 하나를 얻어
잘 살아라, 잘 키워라 등등 아주머니들의 덕담(?)을 들으며 돌아왔습니다.
저 신발 상자는 지금 임시용 똥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집은 심하게 다묘 가정이라 내 손에 의해 구조되는 아이들은 무조건 3일 이상 동물병원행입니다.
첫날 종합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전염병은 잠복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입원 후 3일 뒤 다시 음성 판정을 받고 어제 우리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병원에서 할인 받고 18만원 나왔습니다. 이정도 금액이면 아픈 고양이도 나아야 합니다..
그렇게 구조된 영이입니다.
이름은 최영 장군의 최영입니다.
이 녀석은 매우 잘 생겼고, 최영 장군은 매우 잘 생겼으니깐요.
최영 장군은 사랑입니다.
그느 매우 예쁘니까 케이지도 이쁜걸로 준비했습니다.
적응기가 필요하므로 이틀동안 케이지 생활 후 주말부터는 자유롭게 이 집을 다닐겁니다.
사실 동물병원에 한 5일 정도 놔둘려고 했는데
낯선 환경에 놀란 건지 며칠동안 울기만 하고 밥도 안 먹더랍니다.
그래서 급하게 3일만에 퇴원한건데,
여기도 낯설어....이제 울어야겠어...라며 슬슬 준비를 하는데...
고양이가 드글드글, 혼이 쏙 빠짐. 울 틈이 없음.
고양이가 많으니 안심이 되는지 밥도 잘 먹습니다.
병원에선 음식에 입도 안 댔다고 하던데 앞발까지 담그면서 허겁지겁 밥을 먹습니다.
와, 쟤 밥 먹는거 봐. 엄청 빨리 먹는다.
배 고파서 저렇대.
배 고픈게 뭐야?
몰라, 집사가 그러던데?
태어나서 배고픔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이 부르조아 녀석들
밥 먹고 기운이 나는지 슬슬 주변 탐색을 하더군요 :)
일단은 여기까지,
여기저기 환경이 바뀐것만으로도 꼬맹이에겐 큰 스트레스라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일키로가 넘어가면 일차 접종을 하고 새 가족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워낙 미묘라 금방 새 가족을 찾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긴 한데...
영이보단 엄마가 주워온 기즈모가 문제네요.
기즈모랑 싱크로율이 한 오천배쯤 되는 아이입니다.
본가에 밥 먹으러 갔다가 하도 웃기게 생겨서 풉풉 거리고 웃었더니 꼴에 딸랭구라 성깔은 있는지 삐져서
벽에 머리 박고 내가 갈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있대로 있더군요.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니 기즈모를 좋아하는 분도 분명 어딘가 계실거라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