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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 2.
정신을 차리고 나니 새벽이다. 난 낯 선 방안에 누워 있었다.
“어…여기가 어디지…??”
두리번 두리번 대며 보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너평쯤 되는 단칸방. 하지만, 물건들은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고맙게도 머리맡엔 자리끼가 있었고, 난 자리끼를 컵에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짜리끼를 따르는 컵은 너무나도 깨끗하게 설거지 되어 있었다.
전날의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 보며 떠올리려 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일 있었던 건가…
그때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불쑥 들어온다.
박씨 아저씨였다.
“석구 일어났는가?”
밝게 웃으며 아저씨가 물어봤다.
“아…아저씨…어찌 된거에요? 제가 왜 여기있죠?”
“흐흐흐, 어제 석구가 술이 과해서 나랑 집에 가다가 길바닥에 쓰러졌지 뭐야. 그래, 내가 석구네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하니 일단 우리집으로 업어 왔네.”
“아…그랬었군요.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니 아니야. 그럴수도 있지 뭐. 빨리 씻고 아침 먹고 출근하자구”
박씨 아저씨는 새벽운동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땀이 흥건한 윗도리를 벗으시고는 수건에 물을 묻혀 냉수마찰을 하신다. 나도 그 옆에서 수도를 틀어 대야에 물울 받아 얼굴을 씻는다.
찬물이 얼굴에 닿자. 술이 깨는듯하다.
아저씨께서 정성껏 차려 주신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며 결국 콩나물국만 벌컥벌컥 두 그룻 먹고는 아저씨와 같이 공장으로 출근했다.
오늘도 보기 싫은 김반장을 봐야 한다.
공장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불안해 진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역질이 났다.
웩하고 공장 담벼락 옆으로가 토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어제 먹은 술이 체했나벼?? 괜찮아??”
박씨 아저씨가 등을 두드려 주신다
한참을 토하고 정신을 차렸다. 어저씨가 가져다 주신 냉수로 입을 헹궈냈다.
“아 괜찮은겨??”
“예, 아저씨…”
“한창 나이지만 서도 몸을 그리 혹사하면 안되는겨. 일이 힘등게…그럴수 있지만 서도 일이 끝나면 가급적 술을 마시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시게.”
“저도 그러고 싶은데…출근하고 나면 김반장님이 하도 괴롭히고 하는통에 …하루종일 시달리고 나면 저도 모르게 술부터 마시게 돼요.”
“음…알지…알아. 하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겨. 참고 이겨 봐야지”
그렇게, 박씨 아저씨와 담배를 피우고 공장안으로 들어가 각자 맡은 기계 앞으로 갔다. 야간조와 간단한 인수인계를 하고 기계를 돌렸다. 기계는 잘도 돌아간다. 기계를 돌리는 모터와 그것에 달려 신나게 돌고 있는 바퀴를 보고 있자니 내가 그 바퀴의 회전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 김반장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안색이 상당히 좋지 않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온다. 내가 맡은 기계옆으로 김반장이 다가오자. 갑자기,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입이 바싹 마르고…오줌도 마렵기 시작한다.
그런데, 김반장은 내가 하는 인사를 받은체 만체 하면서 너무도 건조하게 내 옆을 지나간다.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고, 사무실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나 뿐만 아니라, 오늘은 김반장이 나를 어떻게 갈구고 두들겨 팰지를 기대했던 다른 공장 식구들도 모두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기계와 우리의 시간은 돌기 시작했다. 평소 작업중에 나와 으르렁 대던 김반장이 오늘은 조용하다. 마치 거세당한 수캉아지처럼 얌전해 졌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렇게 오전 일을 마치고 잠시 공장 옆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박씨 아저씨가 다가왔다.
“오늘은 김반장이 이상하네.”
“그렇죠. 아저씨? 무슨 일이 있는건지 얼굴이 안좋네요?”
“그러게 말이여…내가 오래 같이 일했는데, 저런 표정을 당췌 본적이 없구먼.”
그렇게 짧은 휴식을 마치고 공장안으로 들어가 기계 손질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김반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공장밖으로 나간다.
미칠듯이 궁금증이 생겼지만…알아낼 방도는 없었다.
그때 사무실에서 공장장님이 나오셨다.
박씨 아저씨를 손짓으로 불러 무언가를 이야기 하셨다.
박씨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 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끄러운 기계음 때문에 표정만으로 대충 무슨일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점심을 먹으로 식당으로 가던길에 박씨 아저씨와 한테이블에 앉았다. 김반장에게 공공연하게 갈굼을 당하는 두 마리의 바퀴벌레는 언제나 그렇게 둘만의 점심을 먹었다.
“아저씨…김반장…무슨일이에요?”
“별일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박씨 아저씨는 식사를 계속했다. 나도 하는수 없이 식판에 코박고 밥을 먹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와 늘 담배를 피우던 담벼락 쪽으로 향했다. 그때, 박씨 아저씨가 조용히 다가왔다.
“석구야…”
“예?”
“김반장 말이다…김반장 마누라가 어젯밤에 집에서 사라졌다가 아까 경찰에서 연락이 왔나 보더라고,”
“예?”
“김반장, 저 친구 마누라가…죽은채로 용강천에서 발견 되었단다.”
“예??”
“그래서, 그 연락 받고 저리 헐레벌떡 뛰어 간 겨…딴 놈들한테 말하지 말고.”
그렇게, 박씨 아저씨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다.
야간조와 교대하기 전 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반장의 아내는 왜 죽은 채로 용강천에서 발견 되었을까?
용강천은 이 공장이 위치한 무단산 에서 마을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하천이었다.
수심은 깊지 않지만, 이 근처에 공장들이 생기고, 폐수가 흘러나와 오염이 될 대로 된
버려진 하천이었다. 그 용강천이 흘러 흘러 안양천과 만나고 그게 한강으로 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더러워진 용강천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자살은 아니고, 타살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저런 생각은 퇴근을 하고도 이어졌다.
집에 누워 자리를 펴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방문을 쾅쾅 쳐댄다.
“이봐…석구총각! 안에 있지?”
아뿔싸 집주인 아주머니였다. 문을 열고 그 성난 얼굴을 마주한다. 불편하다.
한참을 이야기를 듣고 허리를 굽신거리고…하지만, 이날은 아주머니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돈…돈을 어디서 마련한다는 말인가?
그때 문득 생각난 사람은 박씨 아저씨였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사정사정해서 돈을 구해 오겠노라고 하며 박씨 아저씨네로 갔다.
“아저씨…아저씨…”
집 창문앞에서 아저씨를 불렀다.
자그만한 창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나를 보았다.
“어…석구 아닌가? 이시간에 왠 일이여?”
아무 말 못하고 있었더니 아저씨가 나를 방안으로 들어오라 했고, 난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던 아저씨가 선뜻 그 큰 돈을 내어 주신다.
“이걸로 일단 돈을 내고, 차차 갚어.”
“아저씨…고맙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에 감복하여, 계속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집세는 해결이 되었다. 모처럼 마음속이 편해진다. 다음달부터 방세를 밀리지 않고 돈을 아껴 박씨 아저씨께 빌린 돈을 갚아야지…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저씨가 권하는 술을 한잔 더 받고는 그 뒤로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