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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죽어야 한다
게시물ID : panic_1028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왕대갈
추천 : 1
조회수 : 11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6/22 19: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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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챕터 01.

♬♩♭

2023년 대한민국.

 

좀비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좀 독특했다.

 

그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빨로 사람을 물어 죽이지 않았다.

 

그러니 좀비에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이 좀비들의 위험성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좀비들의 공격 방식은 너무나도 은밀하면서도 잔혹하고, 그러면서도 손 쓸 방법 조차 없었다.

 

그들은 멀쩡히 다가가서 사람의 눈을 쳐다본다.

 

그러면, 좀비 앞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 죽는 방식이었다.

 

퍼어엉

 

소리와 함께 뇌, 척수, 눈알, 두개골 등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쯤, 사람들은 그제서야 좀비가 나타났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그러면 길거리의 사람들은 사방으로 미친듯이 도망쳤고, 좀비 한 놈만 그 자리에 서성거리는 것이다.

 

가장 골때리는 점은, 이러한 좀비들은 외형상 어떠한 특징도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눈가에 다크서클이 잔뜩 꼈고, 피부에 생기가 없다는 점, 그리고 언제나 걸음 걸이가 축 늘어졌다는 것 말고는, 도무지 다른 인간과 외형상 차이점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는 좀비 공포증이 확산되었고, 좀비에 의해 죽는 자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호흡기로도 전염되지 않고, 타액이나 분비물, 접촉으로도 전염되지 않는 이상한 질병...

 

오로지 눈을 마주보는것만으로 머리가 터져 죽는 질병이라니...

 

 

♬♩♭

나는 언어 학자였다.

 

내가 여기서 였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내가 언어학계에서 매장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략 3달 전 즈음, 나는 학계에 꽤나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바로 신의 언어를 발견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일명 코덱스 성경이라 불리는 중세 시기 성경의 책에서, 뜯겨져 나간 8페이지가 발견되면서 펼쳐졌다.

 

발견된 코덱스 성경 8페이지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주술적 힘이 깃든 천사의 언어라고 주장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언어 학계에서 깨끗하게 매장되었다.

 

과학과 합리가 난무하는 21세기의 학계에서, 주술이니 신의 언어이니 하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tv를 보던 나는 카메라에 잡힌 좀비들의 웅얼거림을 들었다.

 

그들이 뭐라 웅얼거리는 소리는, 도저히 내가 아는 지구상의 언어가 아니었다.

 

^#@%^&!^

 

TV를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불현듯 좀비들의 웅얼거림에서 한 가지 언어가 떠올랐다.

 

바로 최근 발견된 8페이지 코덱스 성경에 쓰여진 신의 언어! 좀비들이 그 언어를 웅얼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했다. 좀비들이 말을 하는 톤, 특유의 억양, 음절, 단어 등등!

 

좀비들의 웅얼거림은 코덱스 성경의 천사의 언어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상해. 저렇게나 천박하고 악마 같은 좀비들이, 천사들의 언어를 사용하다니!!’

 

나는 동영상의 소리를 높여 잔뜩 귀를 기울인 후, 좀비들의 언어를 분석했다.

 

그들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악을 처단할 것이다]

 

[악마는 그 육신이 다시금 흙으로 되돌아갈 것이니]

 

[기필코 악마들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러한 좀비들의 웅얼거림과 함께, 좀비와 눈을 마주친 사람들 모두 죽었던 것이다.

 

대가리가 터져버린 채...

 

 

 

나는 며칠을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좀비들이 말하는 악마, 인간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 지구가 거대한 하나의 지옥이었다는 말인가?

 

저 좀비들은, 천사들이 보낸 정의의 집행자 정도로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으니...

 

 

♬♩♭

며칠 후.

 

좀비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울 남산 주변으로 올라간 후, 일명 좀비 탑을 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좀비들이 몸으로 쌓아 올린 탑은, 웬만한 아파트 높이만큼 높아졌다.

 

그리고 그 좀비의 탑 꼭대기에서, 한 좀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껏 웅얼거리던 소리만을 내던 좀비들과는 달리, 꽤나 확실하고 정확한 언어였다.

 

, 그 좀비가 내지른 언어는,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그 언어는 코덱스 성경에 쓰여진 천사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나는 TV로 그 광경을 직접 보았다.

 

좀비가 말하는 내용은 이것이었다.

 

[앞으로 지구에 대재앙이 있을 것이다. 3일 후, 이곳 탑에서부터 강력하고 지독한 전염병이 시작될 것이다. 이 병은 인간의 몸은 물론, 시멘트, 철근, 그리고 온갖 인간이 창조한 금속과 물건들을 부식시킬 것이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단 하나. 원수의 피를 병에 담은 후, 그 피를 이곳 탑에 뿌려라! 그 피의 양은 무조건 이 탑 전체를 적실 만큼의 양이어야 한다!!]

 

어이 없는 말이었다.

 

천사의 언어를 쓰는 좀비들이, 3일 후 전염병으로 세상을 멸망시킨다고 한다.

 

더욱 어이가 없는 건 원수의 피를 바치라니!

 

무엇보다 도가 지나친 건, 거대한 좀비들의 탑을 모두 적실 만큼의 피를 요구한 것이다.

 

도대체가 말도 안 되잖아?”

 

결국 인류는 멸망당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이후 3일 동안, 나는 꽤나 현실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어차피 지구는 구할 수 없다.

 

대신, 후세에 이러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릴 수는 있겠지.

 

나는 8페이지짜리 문서를 만들었다.

 

문서에는 천사의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좀비의 출현... 그 좀비들이 다시금 지구에 침입하여 언제고 또 다시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멸망에 대비하기 위해서, 나는 언젠가 다시금 이 지구에 문명의 뿌리를 내릴 새로운 인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썼다.

 

[원수의 피를 모아라. 원수의 피가 강물을 이룰 정도로, 그 피를 모아라! 죽여라! 원수를 죽여라!]

 

며칠 후.

 

예상대로 좀비들의 탑 부근에서 역겨운 검은 기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 검은 기체는 인간의 육신, 시멘트, 콘크리트, 철근 등등 모든 것을 녹여버렸다.

 

지상에는 그 어떠한 것도 남지 않았다.

 

지구가 멸망한 것이다.

 

 

이후 60만년 후.

 

지구는 몇 번의 빙하기와 온난기를 거쳐서, 다시금 인간들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좀비들의 멸망 이후 정확히 666,666년 되는 해,

 

인간들은 제법 문명의 진보를 이뤘다.

 

그들은 원자력의 힘을 사용하게 되었고, 양자 역학을 기초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며, 곳곳에서는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들 앞에 좀비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며...

출처 내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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