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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일어나야지.”
차가운 계단에서 한 여중생이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여보세요? 일어나세요.”
그 여중생은 바닥에 누워있는 다른 여중생을 깨웠다.
“여긴 어디야?”
“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지.”
그 계단은 한 사람이 살면서 올라가는 길이었다.
“가야 하는 길? 하필 왜 계단이야. 엘리베이터면 좋을 텐데.”
“뭐?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가 가는 거지. 너가 가는 게 아니잖아.”
“어쨌든 올라가자.”
깨어난 여중생은 자신을 깨운 여중생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넌 이름이 뭐야?”
“음, 나는 너랑 같아.”
“뭐? 내 이름은 ‘이혜연’인데?”
“나도.”
깨운 여중생은 자신이 ‘이혜연’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는 시간대만 다르고, 같은 사람이다, 라고.
“내 손 잡아.”
사실 이혜연은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중생이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너는 미래의 나야? 그래서 도와주는 거야?”
“음, 아니. 방해하는 건데?”
확실히 그 여중생은 미래의 이혜연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의 이혜연과 차이가 없었다.
“방해라니? 너는 날 도와주고 있잖아. 내가 가야 할 길을 도와주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말했잖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건, 너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
이혜연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남들이 하는 대로 움직이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나를 도와주는 저 사람은 미래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올라가고 있잖아?”
그런데도 이혜연은 웃었다. 일단은 올라가고 있으니까. 적어도 남들처럼 떨어져 왔던 길을 다시 걷게 되진 않았으니까.
“내 손 잡아.”
“그래.”
이혜연은 또 올라갔다.
“다들 저기 있는 고등학교를 간데, 너도 갈 거지?”
“야, 나도 하고, 쟤도 하는데 너만 안 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너도 이 대학 갈 거지?”
“너는 이 정도 성적이니까, 이 대학까지만 원서 넣자.”
“너도 우리랑 같이 이 일 하자. 너가 말하는 그런 일은 돈 안 된다니까?”
이렇게 모두가 손을 내밀어 준다.
그리고 나 스스로 역시도 나에게 손을 내민다.
“이건 너가 올라온 길이 아니야.”라고 나 스스로에게 경고도 한다.
하지만 또다시 “그래도 올라가고 있잖아?”라고 대답한다.
“아, 이제 많이 올라왔다. 조금 여유로워졌지?”
“응, 덕분에. 그래도 많이 올라왔네.”
“그렇지?”
자신을 이혜연이라고 하던 여중생은 어느새 커서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혜연은 여전히 여중생인 그대로였다.
“자,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해? 우리가 얼마나 올라왔지?”
“모르는 거야? 너가 올라온 길인데? 아, 너가 올라온 게 아니던가?”
“그래도 올라왔잖아?”
“그래? 그럼 계속 올라가야 해.”
하지만 어느 순간, 손을 내미는 사람은 사라진다. 이제 깨워준 사람은 사라졌다.
“어라, 어디 갔어?”
이제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어디로 올라온 거지?”
“난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 거지?”
“어떻게 올라온 거지?”
“어떻게 올라가는 거지?”
스스로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그럼 당신은 또다시 이렇게 답하겠지.
“그래도 올라왔잖아.”
여기까지 올라온 당신은 어디를 오르고 있는가요? 원하던 곳으로 오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