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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감정
게시물ID : panic_102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2
조회수 : 11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5/30 21: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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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과거의 전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 등살에 못이겨 죽어라 공부한 끝에 결국 의사 가운을 입었을때에도,

뒤늦게 생명을 살리는 것은 나의일이 아님을 깨닫고 가운을 벗어던졌을 때에도 별다른 감정은 없었지요.

어두운 곳에 발을 들여 제 외과 지식으로 통나무를 만들어내는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전 그냥 하나의 흙인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가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아름다움이 어떤것인지 배웠고 인간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저의 예술이 대중적이지는 못하죠.

그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기괴함을 넘어서는 반인륜적 행위라는 평가도 이해합니다.

작품에 대한 비평과 해석은 관객들의 권리이고

모든 의견을 수용하는게 예술가의 도리니까요.

물론 제 작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는 행위는 수용범위 밖입니다.

그런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심지어는 저 자신에게 조차 없습니다.

전 그저 제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줄 뿐이지요.

그러니 당신 역시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작품 그 자체를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전 제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디테일한 해석을 섞어가며 감상에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서론입니다.

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필멸의 존재입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쉼없이 달려가는 덧없는 존재.

아등바등 살던 그들에게 마땅히 찾아와야할 죽음이 당도하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나무토막이 되어 바스라질 운명이지요.

그 한시적인 재료들을 가지고 전 예술을 합니다.

땅에 묻혀 한줌 흙으로 돌아갔어야할 그것들은 제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일시적이고 비루한 삶은 영원하고 찬란한 작품으로 변하는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조금은 흥미가 생기셨을까요?

만약 아니시더라도 곧 생기실게 분명합니다.

직접 제 작품을 감상하신다면 말이지요.




그럼 곧바로 첫 번째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자, 누구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가녀린 손에 가면처럼 들려있는 아름다운 얼굴이 잘 보이시겠죠?

하지만 그녀의 찬란한 얼굴 가죽 아래엔 권태와 슬픔만이 있을 뿐입니다.

가죽이 벗겨진 얼굴에 서린 고통스런 표정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무언가 느껴지십니까?

개인적으로 매우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몇 년전 이 여인의 아름다운 시체를 보는 순간, 전 이토록 멋진 작품이 나올거란 것을 확신했습니다.

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녀의 다른곳은 거의 건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얼굴 가죽만 슬쩍 오려내어 손에 들렸을뿐.

제 작품 중 유일하게 생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작품입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황홀한 곡선들은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야기 해 주고 있지요.




다음으로 이 작품.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제가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기도 하죠.

수많은 얼굴들이 벽에 붙어서 서로 다른 표정을 지은채 한곳을 바라보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네, 당신이 앉아있는 바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지요.

이 작품 안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웃고 화내고 울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그리워하고....

자 당신은 어떤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드실까요?

이 얼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감상하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얼굴이 보일겁니다.

어쩌면 당신의 표정역시 그것과 같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반대로 그 얼굴이 당신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어디보자 다음은.... 그래 이게 좋겠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 그럴수도 있지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

이 둘은 생전에 실제로 연인이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랑을 했을 그들은 제손에 의해 그야말로 처절한 사랑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몸으로 입을 맞추듯 마주보며 끌어안은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말의 틈마저 용납하지 않았지요.

둘은 저 작은 유리상자에 전부 들어갈 정도로 딱 붙은채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프레스로 정교히 작업해서 정육면체로 빚어내기 전,

저 둘의 시체는 정말로 사랑을 나누듯이 꼭 끌어안은채 입을 맞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정말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지요.



어떠셨습니까?

제 작품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전 관객들의 감정과 표정,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제게 영감을 주니까요.

아시겠지만 제 작품의 특성상 관객들은 모두 저마다 극단적인 감정을 내비치는데

그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아름답습니다.

너무도 황홀하니 한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인 겁니다.

이것이 진정 제가 추구하는 예술이지요.

저의 노고와 저의 영감과 저의 고통과 저의 땀, 피,

고심하며 노력한 수많은 시간들...그리고 작품으로 산화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들까지...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을 본 관객들이 제게 보답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그러니까 죽은이의 몸뚱이로 만든 예술 작품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요?

비명을 지릅니다.

욕설을 퍼붓고 화를냅니다.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지릅니다.

쓰러지고 외면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신에게 기도하거나 신을 저주하거나...

울렁이고 흔들리고 부서지고 깨지고 망가지고 바스라지고.....

아시겠습니까?

저의 예술은 작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체들로 만들어진 제 작품들을 본 그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과 생생한 현장.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습.

네,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어떠셨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부디 상세한 감정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의 대답에 따라 다음 작품의 방향이 정해지니까요.

아 물론 재료는 당신이될겁니다.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죽음을 목전에 둔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끼고 계십니까?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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