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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마는 반려동물의 외로움을 먹습니다.’
며칠 전, 연수는 외로움을 먹는 하마라는 물건을 구매했다.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새까만 원형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제품의 작동 원리는 간단했다. 목표로 하는 대상을 하마로 촬영한 뒤 대상의 거주지에 비치하면 작동했다. 습기를 빨아먹는 타사의 제품처럼 하마도 빨아들였다. 습기가 아닌 외로움을.
‘주의 사항. 반려동물이 아닌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연수는 하마에 적힌 사용 설명서를 읽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눈에 뒹굴거리는 삼색 고양이가 들어왔다. ‘야옹’ 하고 불만 섞인 울음소리가 곧바로 울렸다. 벽에 걸린 LED 시계가 2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또 권 부장에 의해 야근을 했다.
“미안해, 몽이야. 이걸 쓰고 나면 외롭지 않을 거야.”
찰칵- 몽이 사진을 찍고 작동 스위치를 누르려던 찰나였다.
따르릉- 핸드폰 벨이 울어댔다. 연수는 자켓 품에 하마를 도로 넣고 핸드폰 액정을 주시했다.
지영이다. 삐이이- 커피 포트기가 성을 내며 절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삑삑삑삑- 연수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문 너머로 팔짱을 낀 지영이 서있었다. 오늘따라 지영의 키가 더 커보였고 가로로 뻗친 눈매는 날카로워보였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연수가 입술을 다시다 입을 열려던 순간, 지영이 말했다.
“헤어지자.”
“아니... 바퀴벌레 잡아달라며?”
“그랬지. 근데 넌 나를 바퀴벌레만큼이나 신경 쓰니?”
연수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랬다. 잦은 야근과 게임 동호회 활동으로 지영에게 소홀했다. 연락마저도 제때 안했으니 그녀가 서운한 것이 사실이리라.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아?”
“어어... 그게... 아! 2주년이구나?”
지영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연수는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리며 정답을 찾으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하고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내 생일이잖아.”
펑- 하고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졌다.
“지영아, 요즘 내가...”
지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부스럭 소리를 내더니 박스를 들고 나왔다.
“가져가. 그동안 네가 나한테 줬던 거. 그동안 고마웠다.”
지영은 더 할 말이 없는 듯 등을 지고 섰다. 살짝 옆으로 휜 지영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연수는 망설이다 품에서 하마를 꺼내들었다. 곧장 스피커를 손바닥으로 막고 연수의 뒷모습을 찍었다. 찰칵...
그러고 나선 작동시킨 하마를 박스 깊숙이 집어넣었다.
“조금만 더 지켜봐줘. 별똥별이 떨어지기 전으로 돌아갈게.”
헤어지긴 싫었다. 그녀를 외롭게 한 건 사실이지만. 지영은 다시 뒤돌아서 박스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연수는 그녀를 뒤따라가 박스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다. 지영은 박스를 교차로 접으며 닫고 있었다. 안도하던 연수의 눈에 새까만 무언가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바퀴벌레였다.
*
며칠이 지났다. 연수는 게임 동호회 회원들과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뒤섞인 남녀 무리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얼큰히 취기도 올랐다.
“연수 씨, 저번에 여자친구랑 헤어질 위기 아니었어? 연락 안해줘도 돼?”
한 여회원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연수에게 말을 걸었다. 연수는 핸드폰을 번쩍 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에 한번만 연락해도 충분하던데요? 할 거 다하면서 만나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그게 정말 가능해요?”
여회원이 납득이 되지 않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연수는 잔에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 씩- 웃었다.
연수는 비틀거리며 인도를 걸었다. 밤공기는 시원했고 가로등 불빛은 찬란했다. 연수 머릿속에 충만한 만족감이 스며들어왔다. 구속받지 않고 외롭지도 않은 완전한 상태.
“자유다!”
행인들이 쳐다보든 말든 연수는 환호했다.
우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쳐다보니 한 사람이 여러 번 전화를 건 모양이다. 지은, 여자친구 지영의 친언니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다급한 지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연수야! 지영이... 지영이가 사라졌어!”
불현 듯 하마의 사용 설명서에 적혀있던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반려동물이 아닌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지은이 한발 앞서 지영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연수는 베란다로 나간 지은의 눈치를 보곤 지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고 방 내부를 눈으로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방바닥에 하마가 산산조각 난 채 방치돼있었다. 연수는 지은이 볼 새라, 황급히 조각들을 주워 책상 아래 놓인 휴지통에 버렸다. 좋지 않은 타이밍에 지은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금 뭐야?”
“아... 바퀴벌레를 잡았거든요.”
지은은 고개를 저으며 지영의 방에 놓인 물건들을 들었다 놓으며 살폈다. 연수는 핸드폰으로 하마 상담센터 연락처를 검색했다.
하루가 지났다.
“김연수 씨 맞으십니까?”
한적한 카페에 앉아있던 연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새까만 정장 차림에 포마드 머리, 하얀 피부와 대조적인 빨간 입술의 남자는 자신을 K 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하마에서 보낸 직원이었다.
“최소 일주일의 시간을 내십시오. 그리고 현재 상황이 심각한데... 빠른 시일내로 찾지 않으면 이지영 씨는... 살인을 저지르게 될 겁니다.”
*
전라도 군산 앞바다는 은하수가 보인다. 거대한 지네가 별 사이를 떠다니고 별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할 수 있는 밤하늘. 1년 전, 연수는 지영과 함께 군산 앞바다에서 은하수를 올려다봤었다. 눈동자에 별을 가득 담으며.
그때 홀연히 나타난 별똥별 하나가 밤하늘을 찢으며 내려왔다.
K가 끌고 온 검정 그랜저 차량에 올라탄 연수는 다리를 떨었다. K는 다리 떠는 연수가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했다. 연수는 다리떨기를 멈추고 K에게 물었다.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일단... 지영 씨가 근무했던 회사로 갈 겁니다. 그 뒤엔 연수 씨가 근무했던 장소. 마지막으로는 연수 씨의 게임 동호회가 되겠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하마를 인간에게 사용했을 땐 큰 문제까진 발생하지 않아요. 가벼운 우울감이나 식욕부진 정도죠. 그러나... 작동중인 하마를 무작위로 파손시킨다면 문제가 커져요. 억제된 외로움이 폭발하게 되면 폭력성을 띄는데... 그 대상이 외로움을 주는 상대, 혹은 그 상대를 그렇게 만든 주변인들에게로 향하죠.”
“저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제 주변 사람들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뜻이겠군요.”
K는 답하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정지 신호를 받고 차를 잠시 정차한 K의 눈에 행인에게 몸을 부비고 있는 길고양이가 들어왔다.
“유기묘 같군요. 외롭게 내버려둘 거면, 책임지지 못할 거면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죠.”
연수는 K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영은 유리컵을 만드는 중소기업의 경리로 근무했었다. 연수는 대리로 근무 중인 남자에게 지영이 근무하던 책상으로 인도받았다. 꺼진 모니터 가장자리로 알록달록한 메모장이 붙어있었고 간이 달력도 놓여있었다. 달력을 넘기니 연수와 관련된 기념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책상 서랍을 열자 연수에게 쓰다만 편지와 접다만 색종이가 보였다.
“바쁜데도 눈치 보면서 이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더라고요. 만나는 남자가 누군지 참 부럽다 생각했는데... 아무쪼록 지영 씨 찾게 되면 꼭 돌아오라고 전해주세요.”
대리는 아쉬움을 가득 묻히며 말했다. 짐짓 말없이 서있던 K는 핸드폰으로 액정 목록의 스크롤을 내린 뒤 턱 아래에 손을 댔다.
“연수 씨. 매번 지영 씨에게 연락을 못하거나 만남이 취소됐을 때 누굴 많이 거론했죠?”
“그야... 권 부장?”
삑- 출입증 바코드를 찍은 연수는 회사 정문으로 들어섰다. 연수가 근무 중인 회사는 중소 게임 업체다. 그는 이곳에서 기획을 담당했는데 매번 권 부장에 의해 야근을 하게 됐다.
연수는 사무실을 벌컥 열어 부엉이처럼 고개를 돌리며 권 부장을 찾으려 애썼다.
“아니, 연수 씨. 오늘 연차 낸 거 아니었어?”
이 대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은 나중에... 권 부장님, 아니 회사 사람이 아닌 여자가 여기 들어왔어요?”
“그게 무슨...”
꺄아악- 고막을 찢는 비명 소리가 부장실에서 들려왔다. 연수는 K와 시선교환을 한 뒤 부장실을 향해 내달렸다. K는 품에서 초록색을 띈 용액이 든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부장실 문이 벌컥 열리자 여사원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뛰쳐나왔다. 연수가 무작정 들어가려하자 K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흥분을 가라 앉혀요.”
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장실로 몸을 들이밀었다.
횟칼을 든 지영은 권 부장의 목을 향해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었다.
“지영아! 나야, 연수! 내가 잘못했어. 진정해!”
지영의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그녀는 자신의 목적인 권 부장을 향한 칼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던 K가 지영의 등 뒤로 접근해 주사기를 목에 꽂으려했다. 그러나 눈치 챈 지영이 칼을 뒤로 휘두르는 바람에 K는 손을 다치고 주사기를 놓쳤다. 공교롭게도 주사기는 연수 발밑으로 떨어졌다.
“연수 씨, 주사기 이리 줘요!”
연수는 주사기를 손에 들고 K에게 건네려다 방향을 틀었다. 지영의 목이 가깝게 느껴졌다. 이정도 거리라면. 그는 주사기를 지영의 목에다 꽂고 용액을 주입시켰다. 동시에 지영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연수는 의식을 잃은 지영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더는 외롭게 놔두지 않을게.”
*
연수는 군산 앞바다의 은하수에 별똥별이 떨어지기 전으로 돌아갔다. 권 부장에 의해 야근이 발생해도, 게임 동호회의 회식 참석보다 지영을 우선시했다. 그녀 또한 예전으로 돌아간 연수의 모습이 싫진 않은 듯 배시시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연수는 어딘가 불편해졌다.
“오늘 우리 2주년인데 레스토랑...”
“아, 미안해. 오늘 급한 약속이 생겼어.”
연수는 2주년을 기념해 값비싼 레스토랑에 방문하려했다. 지영은 그런 제안을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연수는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이 서운하지 않은지.
“그래, 알겠어.”
연수는 지영과 함께 방문하려했던 레스토랑에서 홀로 식사를 마쳤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레스토랑 정문으로 낯익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큰 키에 긴 머리, 살짝 옆쪽으로 굽은 허리. 이따금씩 나란히 걷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웃는 여자의 얼굴을 봤다.
지영이었다.
연수는 자취방 침대에 몸을 뉘이고 천장을 응시했다. 몽이가 연수 가슴팍에 올라와 골골거리며 연수의 눈치를 살폈다. 연수는 몽이를 번쩍 들어 옆으로 옮기고는 몸을 일으켰다.
방구석 어딘가... 희미하게 위이잉- 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방에 놓인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들었다 놨다 했다.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이 하마는 외로움을 먹습니다.’
하마였다. 하마 몸통에 노란 쪽지가 붙어있었다.
지영이 남긴 메시지였다. 연수는 분노가 치솟았지만 하마를 부술 수 없었다. 어느새 나타난 K가 주사기를 들고 씩 웃고 있었으니까.
“이지영 고객님이 문제가 생기기 전에 손을 써달라고 하셔서 말이죠.”
K의 싸늘한 말을 듣던 연수는 지영이 남긴 메시지를 되뇌었다.
‘떨어진 별똥별이 다시 올라갈 순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