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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황금, 개인의 돌 - 위플래쉬 (Whiplash, 2015)
게시물ID : movie_445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들러
추천 : 14
조회수 : 960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5/06/07 13: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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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이 글은 2015년 국내 개봉작인 영화 위플래쉬의 리뷰입니다.

-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읽는 것을 가정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플래쉬 이후 다양한 감상이 쏟아져나왔다. 그 중에는 플래쳐가 제자의 재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위대한 스승이라 찬사하는 사람도 있었고, 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켜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 두려움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양 쪽 모두 플래쳐가 '드러머' 앤드류를 완성시켰다는 부분에는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드러머로서의 완성을 위해 플래쳐가 (또한 앤드류가) 취한 방식들이 과연 옳은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들의 가치가 과연 무시당할 만한 것인지일 것이다.

 위플래쉬에 대한 사람들의 감상들 중 나를 당황시킨 것이 있다. 이 영화가 목표 달성을 위한 열정과 노력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는 감상이 그것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이 영화에서 열정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는 캐릭터를 찾을 수 없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음악에 뛰어든다. 사람들은 손에서 피가 철철 나면서도 드럼스틱을 놓지 않는 앤드류에 감탄하지만, 그의 라이벌인 라이언도 손에서 피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플래쳐의 아이들은 모두 노력한다. 모두 열정을 품고 있다. 하지만 플래쳐는 그 모두를 쓰레기로 인식한다. '위대한 성취'에 대한 플래쳐의 목마름을 생각해보면,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성취는 고작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이란 것을. 

 그래서 플래쳐는 재능있는 아이들을 모은다. 하지만 천재란 귀한것이다. 천재를 황금에 비유한다면, 아무 단련 없이도 찬란하게 빛나는 금광석 원석 같은 것은 수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것이다. 그런 것을 찾을수는 없다. 결국 두들겨 깼을때 그 안에 금조각이 들어 있을지도 모를, 그런 돌들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플래쳐가 모아들인 아이들은 결국 그런 것이다. 그 안에 금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어쩌면 금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어쩌면 가치없는 돌덩이일 뿐인 아이들. 오직 부수고 박살냈을때만 금인지, 돌인지 구별할 수 있는 아이들.

 영화 초반, 앤드류가 플래쳐와 첫 수업을 가지기 직전, 플래쳐가 앤드류를 따뜻하게 대해주며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는 장면이야말로, 이런 플래쳐의 입장과 그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이 단지 플래쳐가 앤드류를 괴롭히고 엿먹일 생각으로 그랬던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플래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부숴버리기 전에, 부숴버려도 좋냐고, 부서질 각오가 되어있냐고 물어는 봐야지." 그 질문이야말로 플래쳐에게 "그냥 돌"과 "금 후보생"을 가르는 마지막 선이었을 것이다.

 그 선을 통과해 금 후보생이 된 돌들에게 주어지는 플래쳐의 교육은 그래서 가혹하고 잔인하다. 그가 관심있는것은 돌을 깨서 그 안에 잠들어있을지도 모르는 금을 끄집어내는 것 뿐이다. 그는 '돌'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 말한다. "네가 원한 것 아닌가. 바로 네가, 금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문제는, 그 돌이 애당초 금을 품지 않은 경우이다. 애당초 재능에 한계가 있다면- 즉 애당초 돌 안에 금이 함유되어있지 않았다면, 돌을 깨든 가루로 만들든 그 안에서 금 따위는 찾을 수 없다. 플래쳐는 금을 찾기 위해 그의 아이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지만 애당초 대부분의 아이들은 금을 품고있지도 않은 그냥 돌들이었다. 플래쳐는 그런 아이들을 거침없이 버린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돌 안에 든 금을 찾는 것이지, 돌을 금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금이 없다고 판명된 돌에는 관심가질 이유도, 매달릴 시간도 없다. 그런 아이들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깨고, 깨고, 깨도, 금은 귀한 것. 결국 플래쳐는 금을 찾지 못한다. 그가 가장 금에 가까워졌다고 기대한 션 케이시는 결국 박살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린다. 플래쳐가 학교에서 쫓겨난 뒤, 바에서 앤드류에게 하는 푸념은 그래서 그의 본심이다. "왜 이렇게 재능있는 놈이 없냐?" 그의 푸념의 주체는 학생들이 아니라 자신이다. "왜 (너희는) 금이 되지 못하지?" 가 아니라 "왜 (나는) 깨봐도 깨봐도 금이 안 나오냐?" 이다. 그리고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앤드류를 무대로 올린다. 이미 산산조각난 앤드류를 아예 글라인더로 갈아버릴 생각을 하고서. 

영화의 결말? 결말이야 해피엔딩이다. 결국 앤드류는 금을 함유한 돌이었고, 플래쳐가 그를 깨고 부수고 갈아버린 최후의 최후에 결국 작은 금조각을 토해냈으니까. 영화 내내 '나는 금이 되셔야겠다'며 울며불며 발광하는 앤드류나, '나는 금을 찾으셔야 되겠다'며 수도 없는 돌을 박살내댄 플래쳐 모두 아마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리고 - 내 의문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금이 되어야 하나?

지금까지 금이니 돌이니 비유로 이야기했지만, 인간은 돌멩이 나부랭이가 아니다. 금을 품지 않았다고 바로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은 굳이 금이 되지 않더라도 찾을 수 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포근한 이불에서 잠드는 삶만으로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식의 행복, 즉 돌의 행복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앤드류의 여자친구다. 너도 나도 금이 되겠노라고 미쳐 날뛰는 이 영화에서, 금이 꼭 되어야 해? 나는 돌이어도 행복한데... 라는 스탠스를 취하는 유일한 인물인 그녀는 아무런 야망도 상승욕구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미친 금 지망생이 된 앤드류에게 차이기 전까지) 나름대로 행복하며, 소소한 인생을 무난하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저 모든 행복과 안정을 희생하면서 내 안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는) 금을 찾아나서야 하는가?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 안락을 모두 포기시키며 네 안의 금을 찾아내겠다고 매일같이 부수고 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그 결과 찬란한 금을 발견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하자면, 나는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희생이 너무나 크다. 한 조각의 금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돌들이 깨지고 박살나야 한단 말인가. 그 돌 하나 하나의 입장에서, 금이 발견되지 않은 채로 산산조각 나버린 자신의 인생은 굉장한 비극이다. (바에서 플래쳐와 재회하지 못한 앤드류를 생각해보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금 한조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며 달려왔는데 그 결말이 "죄송합니다. 당신의 금 함유량은 0 입니다." 라면 너무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만약 황금을 위한 그 희생과 포기가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내려진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그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최악의 비극이다.

반면, 인간을 군체로서 인식한다면, 이러한 방식의 황금찾기야 말로 인류를 이곳까지 이끌어온 힘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분명 한 조각의 황금은 그 수천배의 돌보다 귀중하다. 실패한 가수 지망생 수천명보다 서태지 한 명이 음악에 기여한 바가 더 큰 것 처럼. 황금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를 위한 투자는 - 투자비용으로 계상되는 당사자들에게야 희생이겠지만 - 인간 군체로 봤을 때 정말 사소한 부분일 것이다. 인류의 신기원을 열어젖히는 뮤지션, 영화감독, 문학가, 스포츠맨, 기업가, 사상가가 등장하는 대가가 수만명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면 굉장히 싸게 먹히는 투자가 아닌가.

결국 인간은 개체인 개인이면서 동시에 인류라는 군체의 일부. 인류의 황금이 되고야 말겠다는 금 지망생의 도전은 인류의 해프닝이자 개인의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비극이 두려우니 내 안에 잠들어있을지 모르는 찬란한 황금의 가능성을 도외시한채 돌인 채로 잠들겠다고 하기엔 그 유혹이 강렬하다. 금 지망생이냐, 돌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개인에게, 영화 위플래쉬는 이렇게 묻는다.


"각오는 되었나?" 




- 위플래쉬 (Whiplash,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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