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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생활을 보낸곳은 전투부대는 아니고, 교육시설이었음.
(전북인데.. 혹시나 싶어서 명칭은 안밝힐게. 아닌가? 밝혀도 상관없나?)
방어전술담당 조교였는데, 진지가 설치된 야산에서 장애물 및 방어화기 설치, 상황별 대처방법 등등을 교육했었음.
어영부영 병장을 달았고, 태풍이 불어올 즈음에 이 썰의 주인공인 신병이 들어옴.
생활관 들어와서 자기소개하는데, 보자마자 '아 얘. 좀 신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어머니가 어렸을때 신비한 체험을 한 이후로(쓰다보니 이게 나오네. 이것도 나중에 시간되면 썰 품)
토속신앙을 신봉하진 않으시지만,
무시하지는 않는 정도의 수준의 거리감을 갖고 살아오셨는데, 나한테 이런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거든.
'OO야. 신기 있는 사람들은 눈동자랑 눈빛이 다르다.
눈동자가 먹처럼 까매서 조금만 관심있으면 다 알 수 있어'
신병 눈을 보자마자 딱 저 말이 생각났음.
엄청 까맣고, 쳐다보고 있으면 뭔가 위화감이 드는.
(웹툰중에 '타인은 지옥이다' 보면, 거기 주인아줌마 눈동자가 딱 그 느낌임)
초면에 '너 신기있냐?' 라고 물어보는것도 웃기고 물어봤는데 '예 있습니다.' 하면 분위기 이상해질거 같아서 암말 안하고 지나갔는데,
며칠 뒤에 교장에서 이번 썰의 사건이 터짐.
한참 태풍시즌이라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었음.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이게 기억남)
교장에 나가면 일병-상병짬들이 후보생들 통솔하고,
병장들은 이병들 데리고 대항군 역할 수행해주면서 꿀빠는 시스템이었는데 내가 얘랑 같은 조가 됨.
그날은 야간방어전술-청음초 실습하는 날이라 밤 11시까지 교육을 했음.
(동절기에는 해가 빨리 떨어지니까 저녁먹고 후딱시작하면 9시면 끝나는데, 하절기에는 해가 늦게 떨어져서 저녁먹고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
후보생들이 청음초 진지에서 경계하고 있으면 대항군이 시간맞춰 진지 앞을 지나가면 되는거라
시간될때까지 정해진 장소에서 대기하면 되는데, 내 이동동선의 대기장소가 '묘지'였음.
(묘지라고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그런 스산한 묘지는 아니고,
4~6봉정도 있고,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고,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니라 앞이 훤하게 터져있는. 그런 묘라서
달 밝은 날에는 한밤중에도 사방이 다 보이는 그런 묘였음)
나는 어려서부터 차례, 제사 지내는 집안에서 자란 탓에 봉분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서
거기서 대기할때마다 '오늘도 신세 좀 지겠습니다.'하고 속으로 인사하면서 앞쪽 잔디밭에 그냥 대자로 누워서
대기하곤 했었음
(피곤하면 '야. 때되면 깨워라' 하고 자기도 함)
근데 그날은 비바람이 부니까 눕지는 못하고, X같은 아디다스 모기들 쫓아내면서 궁시렁 거리다가
신입이랑 노가리나 까볼까 하는 생각에 '야 신병' 하고 쳐다봤는데!!
이 새끼가 사색이 되어서는 벌벌 떨고 있는거야.
'후.. 후..'하고 심호흡 내쉬면서.
비가 내리니까 땀인지 빗물인지도 모르겠는데 얼굴은 다 젖어있고.
내가 놀래서 '야! 왜 그래! 어디 아파?' 하고 어깨잡고 물어보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병장님. 이상하게 들리실거 압니다만,
여기.. 너무 많이 있습니다.
뒤에서 다 저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 시X.' 하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타고 소름이 쭈욱 올라오더라고.
근데 순간 '여기서 겁먹으면 뭔 일이 생길거 같다' 라는 공포감에
'원래 여기 계시던 분들인데, 네가 갑자기 와서 궁금하신가보다. 인사드려. 조용히 있다가 갈거라고' 라고 말했더니
그 까만눈이 토끼눈이 되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병장님도 보이십니까?' ㅇㅈㄹ...
하...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아니. 나는 안보이는데. 계시는건 알지. 그니까 빨리 인사드려(이 XX끼야.. 제발. 빨리.ㅠ)' 하고 태연하게 말함.
그리고는 바로 일어나서 애 데리고 거길 벗어났지.
얼레벌레 교육마치고 복귀했는데, 원래 야간교육하는 날은 불침번 면제라,
야간취식하고 연등좀 하다가 자는 날임에도 라면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땡기는거야.
그래도 걔랑 이야기는 좀 해봐야 할거 같아서 뽀글이에 물 담은 다음에 쥐어주면서 이야기를 좀 했지.
오늘 있었던 일 물어보면서, 신기 관련 이야기를 좀 했는데 하는 이야기 중에 특이한건 없더라고.
그냥 가끔 보인다. 신기가 있는거 같다. 대화를 하고 막 그런 수준은 아니다. 이 정도?
그래서 이야기하다가 '왜 나한테 보인다고 이야기했냐? 그런말 하면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해왔을건데' 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거기 어르신들이 병장님 뒤에 서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병장님도 뭔가 느끼시는 분인거 같았습니다.'
그 소리 듣고, 다음 교육부터 거기서 대기 안했고 두어달 있다가 전역했음.
그리고 차례, 성묘, 제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