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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 결함이라는 이름의 희망
게시물ID : panic_1026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순정남이광철
추천 : 3
조회수 : 5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1/19 03: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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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똑똑하다고 친척 어른들의 칭찬을 독차지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곳이 지구의 1990년대 한국이라는 곳이었다면 이 아이는 판검사감, 대통령감 소리를 들었겠지만 여기는 2090년대의 별 A-9136, 속칭 바이오스피어2라는 별입니다. 여기서 어른들은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를 칭찬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녀석은 땅을 붙이든 하늘을 붙이든 하겠구먼!" 이 이야기는 이 가능성으로 빛나던 아이, 광철이의 이야기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지구의 생태계와 분리된 자체적인 생태계를 구성해보려는 노력은 미국이 그들 국토의 일부를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여 바이오스피어2라는 이름으로 85년부터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각종 생물을 비롯, 사람을 투입하여 생존시켜보려는 실험은 94년을 끝으로 중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인간은 외계에서 이 실험을 지속하기에 적당한 별을 찾아낸 것입니다. 바이오스피어2 프로젝트를 지속할 공간을요. 


 그런데 왜 하늘이나 땅을 붙이는 게 대단한 일이 되었느냐고요? 그건 바이오스피어2의 결함 때문입니다. 바이오스피어2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공에 더 큰 공을 덧씌운 것처럼 단단한 벽으로 된 하늘이 바이오스피어2에는 존재했고 바이오스피어2의 대륙과 대륙 사이도 자꾸만 부스러져서 하늘을 수리하는 일과 땅을 수리하는 일이 이 별에서는 최고의 학자들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위대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친척 어른들의 칭찬을 독차지하던 한국출신 바이오스피어2 이민자 광철이의 장래 희망도 자라나는 세대다웠습니다. 광철이면 이왕이면 하늘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저 구름 너머 대기를 감싸고 있는 하늘벽을 수리하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짜릿했습니다. 거기까지는 바이오스피어2의 다른 청소년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요. 하지만 광철이는...뭐라 해야할까...성질이 급했다고 해야 할까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중학교 졸업 후 자격시험을 통과해 명문 고등학생이 된 광철이는 처음에는 수업에 대한 열의에 불타 전자 노트에 교사들의 수업을 녹화해놓고 반복 시청하며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광철이는 그 정도로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곧 수업에 등장하는 것 이상이 궁금했고 명문고답게 거대하게 마련된 전자 시청각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광철이의 도서관 체류 시간은 점점 늘어가, 나중에는 정규수업을 반복 청취하는 시간의 두 배는 되었습니다.


 시청각 책은 교사들과 달리 실수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훨씬 정교하게 디자인되었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깊고 넓은 지의 영역으로 광철을 데려다주었습니다. 광철은 점점 수업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수업을 등한시하니 성적도 점점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광철은 더 깊은 지식을 알고 있는 자신에게 정답이 보이지 않는 시험이란 엉터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성적과 광철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렇게 광철이 동창생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가다가 졸업이 왔고 광철의 성적으로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광철은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가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늘이 아니면 땅이라도 붙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지 못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홀로 골몰하던 연구의 결과가 파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년제 고등학교에서 2년째쯤 되던 해 가을에 광철은 바이오스피어2의 하늘과 땅의 크랙들이 거의 정복단계에 이르렀다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철은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모든 크랙을 없앨 수 있는 지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꿈에 벅차 혼자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관련 항목을 뒤지고 관련 논문을 읽어도 그 이후에 대한 후속 연구자료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광철은 운송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언뜻 보면 지적인 분야에 심취해 있던 광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지요. 완력을 들이는 대신 많은 월급을 얻어가고 지적 작업은 거의 없는 직종에 이광철이라니요. 그러나 광철은 알아버린 것입니다. 크랙들은 정복당했고, 어쩌다 크랙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고치는 고난도의 작업을 할 만큼 타고난 두뇌를 자신은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요. 어째서 그의 출신 고등학교 도서관에 관련 자료가 없었는지에 대해서요.


 광철은 가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구름 너머를 만지려 해봅니다. 광철이 꿈에 미쳐 살았던 도서관에서의 나날을 눈을 감고 음미해 봅니다. 이제 그는 다른 꿈을 꿀 자격을 갖춘 것이겠지요. 연인과 아이 같은,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칭하는 행복들을 좇을 자격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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