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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은 예비되어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741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0
조회수 : 128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6/05 14:40:02
1. 관절에 한계가 온 사람이 한 계단씩 올라가지 아니하고 2~3계단 폴짝 뛰어넘고자 한다면 급하게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충고를 듣지 않는 꾿꾿하게 올라가는 이에게 붙잡을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은 계단을 올라갈 뿐. 힘이 드는 것은 그 자신이기때문이다.

하지만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이 무리해서 올라가고자 한다면 나는 막아야하지 않을까?
나는 무릎이 안 좋은 이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만 하는 어떠한 강제적인 법적 제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서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무릎이 부셔져라 올라가면서 좀 더 빨리 가기 위해 홱 뛰어 올라가는 와중에도 나는 아래서 바라보고만 있다.
그리고는 혼자 생각한다. 저 사람 다치는 거 아니야??

설령 목적지까지 올라가 헥헥 거리는 그 사람이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의 존엄성을 존중했으며 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야만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 될테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정당하다.


2. 이런 내가 나이가 들어 무릎이 안 좋아졌다.
안 좋은 무릎을 이끌고 헉헉 막히는 호흡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간다.
저 아래에서 젊은 청년이 나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그 청년의 말소리가 들린다.
저러다가 다칠텐데. 라고 말이다.

나는 그에게 나를 부축해달라고 말할 힘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젊은이가 선뜻 달려와줄지 의문이다. 자기 자신이 고통과 위기의 순간에 직면하지 않는 한, 도움에 인색한 사회가 되었기때문이다.
법도 소용이 없다. 메마른 곳에 처벌 조항을 넣겠다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건 개인의 도덕과 윤리에 기대는 것 뿐이다.

그런데 나의 젊은 시절도 그 청년과 닮았다. 나는 파릇파릇한 생기있는 생명이었음에도 나의 명줄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뻔히 알고도 외면했다.
누군가는 말이라도 해봤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조께서도 자주 언급하시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행(行)'하라고 말이다.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가 조화를 이루어 도덕을 이루면 우리는 윤리를 행할 수 있다.
만약 윤리적인 사회일 경우 젊은이는 나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타인을 도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윤리적인 사회가 또 다시 이루어진다.


3. 이제 급히 올라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 안절부절할까봐 더 악착같이 발을 내딛고 그래서 더 고통스러워할 이유는 없다. 

이제 옆에서 말하지 않아도, 법이라는 회초리를 들이밀지 않아도 옆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생긴다. 처음엔 한명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두명이서 양팔을 잡아주며 아픈 무릎에 무리가 가지않도록 힘을 실어준다.
세상은 살만해졌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나는 합리적인 인간을 추구했으나 윤리적인 인간은 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나는 윤리적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공동체는 윤리적이었다. 그리고 윤리적일 것이다.


PS. 단테가 말했다.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예비되어 있다" 라고.

전염병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될 경우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해당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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