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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도 우리 중 하나 였을까?
게시물ID : panic_1025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선비킴
추천 : 11
조회수 : 14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09/30 18: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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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공게 여러분. 

 

 추석연휴~ 백신여파까지 한참을 쉬고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저는 오유를 직장에서만 보기 때문에 거의 1주일치 베오베가 밀려있더군요. 사실 볼거 많으면 좋잖아요? 개꿀~ 이러면서 하나하나 읽어보고 있었는데, 베오베에 공게에서 올라간 글이 하나 있더라고요. '네이트판 소름돋는 썰 모음' 이 게시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처음에는 도시괴담을 말하는 듯 하다가 자신의 썰들이 글의 주를 이루게 되더라고요.

 

 흥미롭게 읽어나가면서 문득 '나는 이런 썰이 없나?' 하고 생각을 해봤어요. 평소 제 삶은 평이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항상 위험하거나 대응이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면 피하는 삶을 살아 왔기에 '내 삶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뭐 있겠어' 라며 잠시 잡생각에 빠졌는데...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알게 된 당시에도 소름이 돋았었고,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한 일이 하나 있어서 여러분과 한번 나눠보고 싶었어요. 퇴근시간이 다 됐지만 생각난 이야기는 다 적어놓고 일어나야 겠네요.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온전히 제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때의 사실과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는 더 붙이거나 줄이지도 않은 제 경험담 입니다.

 

 

 저는 20대 초중반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정 형편때문에, 질병 때문에 고생을 하다 많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이미 10년도 지난 일이라 이제는 감정이 조금 희석이 된 듯도 하지만 사실 말이 그렇지 전혀 희석이 되지 않아 여전히 어머니를 떠올릴때 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어머니는 많이 왜소한 체격이셨어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연애결혼을 하시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를 못낳는다며 격렬히 반대를 하셨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든 그 편견을 이겨내고 결혼을 하셨고, 왠일인지 정말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요. 두분이 결혼한지 7~8여년이 흐르고 나서 겨우 제가 생기게 되었고 저를 낳고 나서는 더이상 욕심을 내지 않고 사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동생이 생겼어요. 계획에도 없었는데 갑자기 생겨난 동생이라고 했어요. 어쨌든 생긴 아이는 낫겠다는 두분의 의견아래 저에게 남동생이 생겼습니다.

 

 으레 형제들이 그렇듯 저와 동생도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어요.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나 동생이 다 쉽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고 적지 않은 나이 차이가 오히려 더 사이를 갈랐습니다. 그렇게 저희 네가족은 어머니가 중심에서 모두를 이어주는 형태로 위태위태하게 삶을 살아왔어요.

 

 위에서 적은 것처럼 동생과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살았고 아버지는 가부장의 끝판왕쯤 되시는 분이라서 어릴때의 존경이 점점 실망과 체념으로 이어졌죠. 사실 20대 초반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불안장애가 찾아왔던 저는 어머니를 의지하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급하게 응급실에 가셨던 어머니가 6개월남짓 남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무너질듯 충격적이었지만 어떻게든 어머니를 살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가족들 모두가 어머니가 가진 짐을 나눠가지려고 노력했고 어머니 역시 최대한 병원의 리드에 따라 치료를 받으셨어요.

 

 그렇게 무뚝뚝하고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던 큰 아들은 어머니와 더욱 각별해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무거운 짐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셨어요.

 

 그러다 어느날 오후에 들었던 이야기는 이랬어요. "사실 너랑 동생 사이에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여자아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유산이 됐었다" 며 제가 어릴때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었죠. 저는 깜짝 놀랐는데 사실 그 뒷말을 듣고 더욱 놀라게 되었죠. "어제 거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베란다 쪽을 보니 어떤 여자 아이가 빨래를 개고 있었다" 라는 말이었죠.

 

 물론 꿈에서 보신거라고 하셨지만 사실 소름도 좀 돋았습니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조용히 빨래를 개면서 어머니를 바라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유산됐던 그 아이와 꿈속에서 본 그 아이를 겹쳐서 생각하고 있으신 듯 했어요.

 

 솔직히 좀 오싹한 느낌도 있었지만 항상 어머니에게 좋은말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던때라 "그 짧은 시간도 인연이라고 엄마 힘들때 집안일 도와주러 왔나보다" 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나 동생은 이런 이야기 하면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말라고 할거라며 저만 알고 있으라고 하셨지요.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는 1년 6개월여를 투병하시다 떠나셨습니다. 남들은 참 대단하다고 했었지만 한창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급작스레 떠나신 어머니의 마지막에 저는 장례식을 거의 실성한 채로 지냈습니다.

 

 그 뒤로도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들은 했지만 한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되는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살아 있는 목숨이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다보니 능동적으로 뭔가를 할 순 없어도, 남겨진 가족을 위해 수동적인 역할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하고 살았어요.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사적인 이야기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동생과도 아주 조금씩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어느날 밤 둘다 그 예의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네가족이 처음부터 추억을 쌓아왔던 도심에 있던 자그마한 아파트를 정리하고 예전부터 아버지 사업때문에 시골에 있는 작은 규모의 공장 옆에 마련해 두었던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은 "이사 오기전에 하루는 거실에서 자는데 엄마가 나오는 꿈을 꿨다. 그런데 엄마의 꿈을 꾸다가 깬 다음 다시 잠이 들었는데, 베란다에 어떤 여자애가 빨래를 개고 있더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분명히 저에게만 하셨다고 했고, 제가 누군가에게 더 말하지도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추궁하듯 어머니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냐고 따져 묻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군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자기가 꿈에서 본걸 말한거라고 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동생에게도 해주었습니다. 동생은 자기 위에 유산된 여자아이가 있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고 그냥 엄마꿈을 꾼 다음 바로 그런 꿈을 꿔서 이상해서 말해줬다고 하였습니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 뒤 둘다 놀란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빠졌었고 이 내용은 가끔 동생과 이야기를 할 때 이상한 이야기라며 나누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저는 감수성이 꽤 풍부한 사람 입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몰라도 꿈을 거의 꾸지 않습니다. 아니, 아마 꾸는데도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꿈꾼 내용을 잠시라도 기억한 경우가 손가락 발가락 모두를 세었을때 그 수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전혀 볼 수 없었던, 어쩌면 제 동생이 됐을수도 있는 그 여자아이...이제는 이사를 와서라도 보기 힘들겠지만 언젠가 한번 꼭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쓰고보니 별 이야기는 아니네요. 혹시나 끝까지 읽어주신분들 두서없고 재미없는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환절기 건강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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