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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가 쓰는 병원 관련 tip.txt
게시물ID : bestofbest_1024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석까
추천 : 524
조회수 : 46338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3/13 06:33:27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12 19:18:56

요즘 이게 유행이랍니다.


지방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 입니다. 전국에 흉부외과 의사가 몇 명 없어서 신상 금방 털리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오유님들께 소소한 병원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1. 왜 맨날 피뽑아가고, 엑스레이 찍는데 제대로 된 설명이 없나요?


죄송합니다. 바빠서...ㅜㅜ


...







 

만병 통치약이 없는 한 병의 치유 과정에는 시간이 소모됩니다.


짧게는 수 분, 길게는 몇 년에 걸리며, 그 과정을 예의주시하는 일이 병원 업무의 태반입니다.


월요일에 혈액검사와 엑스레이를 촬영하였고, 수요일에 또 혈액검사를 하고, 토요일에 또다시 혈액검사와 엑스레이를 촬영한다 하면


당연히 그 모든 검사 결과와 소견을 보호자와 환자분들께 설명을 해드려야 하지만


수 십 명의 환자분들께 특별한 이상이 없다, 괜찮다 말씀드리기에는 


저희가 너무 바쁩니다... 


특별히 면담요청을 하시거나 complaint 를 하는 환자분들께는 비록 큰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30분이고 1시간이고 설명드리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과중한 업무에 치여있다 보니 따듯하게 다가갈 수 없었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아껴서 월요일, 수요일에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중대한 이상징조나 변화를 보인 환자분들을 치료하고 집중하고 있으니


얼굴 자주 못본다고 너무 언짢게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case#1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로 입원해 있는 74세 할아버지.


잦은 혈액검사와 매일 찍어대는 가슴 엑스레이에 화를 내시는데...


솔직히 다친 가슴부위의 가슴관에서 출혈량도 적어지고 있고, 엑스레이도 좋아지고 있는 과정.


하지만 콩팥에 안좋은 약도 쓰고 있고, 가슴부위의 출혈량이 갑자기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2일에 한 번 혈액검사를 고집했는데


월요일 혈색소 11.3, 수요일 혈색소 7.7, 할아버지 왈 '어제 밤 부터 조금 어질어질했긴 했어..'


이게 무슨 일이냐!!


배변 안 본지 3일 되었다 해서 관장 한 번 시켜드리니


흑색변 (소화된 혈변) 이 줄줄줄...ㅜㅠ


위장관 출혈 진단 하에  내시경으로 막고 잘 퇴원시켜드림. 



2. 그냥 놀다가 머리 부딪혀 머리 1cm 찢어지고 옆구리 조금 아픈데 엑스레이 찍었으면 됬지 왜 CT까지 찍나요


엑스레이는 CT 의 하위개념이 아닙니다.


상보적인 검사입니다.


골절이나 이물질 등 직관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엑스레이가 한눈에 딱 보이니 좋고


내부의 문제를 볼 때는 당연히 CT 를 촬영해야 합니다.


case #2

그냥 술드시고 넘어져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온 45세 남환.


엑스레이고 나발이고 필요없다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고


보호자 (아들) 은 그냥 머리만 꼬매고 퇴원하겠다고 우기는 것을 어찌어찌 설득해서 머리 CT, 머리와 가슴 엑스레이를 촬영한 결과


경미한 뇌출혈, 외상성 공기가슴이 보여서 추가로 가슴 CT 촬영 및 응급조치 후 중환자실로 입원함.


머리만 꼬매고 보냈으면 의료사고라고 플랜카드 걸렸겠지요.


3. 수술 받으러 왔는데 합병증 안 생기게 수술 잘하면 되지 왜 이런 것을 다 설명합니까? 자신 없는 것은 아닙니까?


합병증, 후유증은 저희들이 가장 겪고 싶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 하나 설명드리는 이유는


인간의 힘으로 100% 예방이 안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 및 수술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합병증 및 후유증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하고,


또한 저희들도 그러한 상황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막상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발생하게 되면 머리 쥐어뜯으며 슬퍼하는 것 또한 저희의 숙명입니다.


100% 예방 가능한 합병증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의료 사고이지만, 아래 나열한 몇 가지 케이스는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case#3

폐암으로 폐 엽 절제술을 시행받은 69세 할아버지.


수술 후 가슴의 통증으로 제대로 기침을 못해서 가래가 끓기 시작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짐.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열이 나서 '아 폐렴이 왔구나!'


강력한 항생제를 사용하고 기관지 내시경으로 가래를 쭉쭉 뽑아드림.


한 3일 집중적으로 치료했는데 좋아지는 듯 하더니 다시 차도가 없음.


왜 그럴까... 왜 그럴까... 


혹시나 해서 가슴 CT 를 찍어봤는데 폐 색전증을 발견!


1주일도 안 누워 있었는데.. 다리가 붓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이게 왠 뜬금포냐.


수술이 잘못되서 그러네 의료사고네 항의하는 보호자 (아들)을 뒤로하고 일단 헤파린 등의 항응고제를 투여하고


다행히 몇 일 후 증상이 확 좋아짐. 나중에 아들께도 폭풍설명해서 우리한테 감ㅋ사ㅋ 퇴원함.


case#4

34세 임산부.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이 순산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호흡곤란.


응급실에 내원했는데 검사 결과 폐 색전증.


배에 아기가 들어있어서 하지 대정맥이 눌려있었고, 정맥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는 상태에서 애가 쑥 빠져나가니


하지 정맥에 쌓여있던 혈전들이 이때다! 요러면서 가슴으로 돌ㅋ진ㅋ


인공호흡장치 달고 헤파린 써서 다행히 웃으며 퇴원하긴 했지만


웃으며 퇴원하고 화내며 동네 산부인과 탓을 함.


아니라고, 과실이 아니라고 보호자 납들할 때 까지 열심히 설명드림... 다행히 고소는 없었음. 



더 쓰고 싶은데 수술 이 막 끝나서 너무 출출하네요.


친구들과 닭도리탕에 소주 한 잔 하러 나가는데


반응 괜찮으면 짬내서 2탄도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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