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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신발도 벗지 않고 소파에 몸을 맡긴 내게 고양이는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화가 난 표정이었다. 고양이는 화장실의 모래를 벌써 이주일이나 갈아주지 않아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다.
“네가 요새 너 힘든 건 아는데, 이건 정성의 문제야. 정성. 무슨 말인지 알지?”
갑자기 일어난 당황스러운 일에 입을 열고 그저 멍하니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그 멍한 표정은 또 뭐야? 알아들은 거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신발을 벗는 것도 잊어버렸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잘못 들었을 거야.”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곧 연말이고 바쁘다 보니 정신이 잠시 어떻게 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득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에 늦은 대학생처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고양이는 소파 한 구석에 앉아 털을 손질하고 있었다.
벗은 신발을 들고 조용히 신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휴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허리를 굽혀 신발장에 신발을 내려놓았다. 조용히 다시 방에 들어가기 위해 일어서는데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혀를 내밀어 앞발을 손질 하면서 한쪽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고양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근 바쁘다는 이유로 사료도 잘 챙겨주지 않고 화장실도 청소해 주지 않았다.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료와 물을 채워 넣고, 화장실의 모래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모래에서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읍….”
나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거봐. 내가 더럽다고 그랬잖아. 너 같으면 그런 곳에서 볼일을 보고 싶겠냐?”
화들짝 놀라 쓰레기봉투를 떨어뜨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봉투에서 터져 나온 모래가 거실을 어지럽혔다.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거실에는 나와 고양이 밖에 없었다.
“뭐야, 너 오늘 어디 아프냐? 행동이 조금 이상한데.”
거실의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열이 나듯 땀이 났다. 한동안 고양이를 마주보며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거실에 쏟아진 모래에서 오래된 암모니아 냄새가 올라왔다.
그날 이후 나는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곧 집 밖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고양이 외의 다른 동물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집 주변을 지나가는 강아지, 새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처다 볼 뿐이었다.
고양이들은 각각 지내는 곳에 따라 개성 있는 말투를 구사했다. 절에 사는 고양이는 언제나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었으며, 수산시장에 사는 고양이는 오늘 어디 생선이 좋다는 이야기를 내게 항상 들려주었다.
“보살님, 오늘도 평온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불전함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봐, 거기 아가씨. 오늘은 저기 102동에서 파는 고등어가 품질이 좋다냥. 아침에 잡아온 신선한 물건인데 하나 사지 않겠냥? 혹시 많이 사서 남으면 나한테 한 마리 줘도 된다냥.”
나이트클럽과 술집 근처에 사는 고양이들은 항상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양아치와 조폭들에게 말을 배운 덕인지 사람도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험한 말들을 구사했다.
“이야, 씌이뻘.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렇게 야려보냐 이 콩만한 년이.”
“아따 어떤 조막만한 년이 어서 우리 형님을 야려봐샀소? 확 앞발로 할켜부러불라마. 험한 꼴 보기 전에 어여 안 사라지냐?”
“아이고오 형님 거 쓸데없는 거 내비두고 얼른 들어 오이소. 오늘 물 좋은 아들하고, 요 앞에서 가져온 생선으로 쫙 차려 놨심다.”
물이 좋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 호기심이 동하긴 했지만, 치켜드는 발톱이 무서워서 그 뒤로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
평소 제일 많이 이야기를 하는 고양이는 당연히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나비였다. 나비는 까만 턱시도를 입고 있는 것이 딱 나비 같다며 남자친구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작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가 데리고 살았던 녀석은 은연중에 그의 말투, 성격을 닮아있었다.
무심한 듯 아닌 듯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가 그랬고, 고양이인 주제에 생선을 싫어하는 점이 그랬다.
“넌 왜 생선을 싫어하는 거야?”
“글쎄, 네가 오이를 싫어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난 비린 건 싫어해.”
“정말? 고양이들도 그런 걸 따져?”
“…사람들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생각 하는 경향이 있어. 고양이니까 당연히 생선을 좋아할 거라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아. 그리고 이 생선. 요 앞 수산시장 녀석 말만 듣고 사온 것 같은데, 그 녀석 말은 듣지 않는 게 좋아. 완전 사기꾼…, 어이쿠. 여기 웬 빨간 점이.”
내가 손에 든 레이저 포인트를 움직이자 나비가 재빨리 쫓아갔다.
“이봐, 내가 이 레이저 포인트 놀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이쿠. 이런 놓쳤군.”
절대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
“그래도 적어도 밥 먹는 중에 이런 장난은 하지 않는 것이…, 쳇. 재빠르군.”
나비는 불만스러운 듯 이야기했지만, 몸은 솔직했다.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자세를 낮춘 채 나보다도 더 집중해서 레이저 포인트를 쫓았다. 잡을 수 있는 물체였다면, 이미 몇 번이고 잡혔을 것이다.
남자친구가 죽은 후 딱히 다른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나에게 있어, 저녁 시간 나비와 놀아주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연말이 오고 나비와 나는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졌다. 레이저 포인트를 가지고 놀지도 않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화장실은 다시 더러워졌고, 사료는 말라 비틀어져 굳어갔다.
작년 겨울, 남자친구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비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소리 없이 나의 삶에 남자친구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밀어 넣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대학교 커플로 시작한 우리는 남자친구가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잡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딱히 결혼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 외에 가장 오랫동안 만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항상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의 우울은 곰팡이처럼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도 있었고,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잠만 잘 때도 있었다.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 후로부터 조금 나아졌던 나의 우울증은 겨울이 오면서부터 다시 심해졌다.
“이봐.”
회사에서 돌아오면 항상 나비가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딘가 조금 아픈 것 같았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잠이 오지 않으면 항상 수면제를 먹었고, 악몽에 시달리며 아침을 맞이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퀴퀴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발을 벗어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방에서 나와 거실의 불을 켰다.
나비가 항상 앉아 있던 소파 위에 쓰러져 있었다. 달려가 나비의 몸에 손을 댔다. 불덩이처럼 몸이 뜨거웠다.
“…뭐냐, 왔냐.”
그제야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 챈 듯 나비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아픈 거야?”
다급하게 물었지만 나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쌕쌕거리며 힘겹게 숨을 쉴 뿐이었다. 며칠간 몸이 안 좋아 보였는데, 그냥 놔둔 것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비를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온갖 상상이 날개를 펼치며 뛰어놀았다. 문을 잠그지도 않은 채 거리로 나와 동물병원을 향해 뛰어갔다.
쓸데없이 다시 남자친구 생각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남자친구와 나비의 모습이 겹쳐졌다.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그렇게 울먹이며 미친 사람처럼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도로 위를 뛰었다.
“뭐냐…, 너 문 단속은 제대로 한 거냐? 칠칠맞게 열고 나온 건 아니겠지….”
아직 말을 할 힘은 남은 듯 나비가 중얼거렸다.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쳇…, 쪽팔리게스리.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안 돼. 절대로…,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삼류 영화의 주인공 같은 대사를 나누면서 도로를 질주했다. 차가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발에서 피가 났다.
발은 피투성이가 되고 얼굴에서는 눈물, 콧물 다 흘린 채 동물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퇴근을 준비하던 수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는 처참한 내 몰골에 테러리스트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나비를 받아 들었다. 증상은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나비 죽으면 나도 못 산다고 그렇게 질질 짜면서 추태를 부렸다.
잠시 후 수의사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멈췄던 눈물, 콧물을 다시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눈앞에는 언제 아팠냐는 듯 선생님과 장난을 치는 나비의 모습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나비가 토해낸 생선 찌꺼기와 뼛조각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나비는 나를 보더니 쪽팔린 듯 구석으로 숨기 시작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은 안 주는 게 좋아요. 잔뼈가 걸리거든요.”
병원에서 빌린 슬리퍼를 신고 가슴에 나비를 안은 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진심으로 발이 아팠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우습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단순히 목에 뼈가 걸린 것이었다니 쓴웃음이 났다. 한편으로는 여태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너 생선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냐?”
나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방금 전까지 환자였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집에 가면 청소나 해야겠다….”
나의 중얼거림을 듣던 나비는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성혁이가 너 걱정 많이 해.”
나비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갑자기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그러니까.”
그리고 다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리던 눈물은 어느새 쉴세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소리 없는 울음은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만큼 커다란 울음소리로 변해 있었다.
혼자서 버티고 버티던 슬픔과 괴로움이 무너져 내리듯 눈물이 흘렀다. 나를 혼자 두고 먼저 간 남자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듯 가슴을 아려왔다.
“아가씨. 그렇게 울면 예쁜 얼굴이 다 상한다냥. 이 손수건으로 닦으라냥.”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던 내 앞에 생선가게 고양이가 다가왔다.
“임마. 이 콩만한 게 어디 시끄럽게 울고 있냐? 뚝 안 그치냐? 내가 그 유명한 어린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아이고, 형님. 오늘은 눈치 좀 차리십쇼.”
“보살님. 오늘은 마음껏 우시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요. 그리고 저희 불전함은 언제나 열려 있답니다.”
나는 그렇게 몇 시간을 울었고, 고양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런 나를 지켜주었다.
“좀 후련하냐.”
나비의 말에 나는 눈물 콧물 다 흘려 새빨개진 얼굴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화장실 청소 좀 잘 해라, 임마.”
“미…, 미안해. 나비야.”
다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유, 저기 아가씨 또 운다냥. 다들 얼른 일어나서 다시 나오라냥.”
그날 이후 나는 동네 센터에 상담을 다니게 되었다.
때때로 우울이 찾아왔고 느닷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나비와 고양이들이 옆에 있어 주었다. 나비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날 이후 화장실 청소를 거르지 않는 내가 내심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