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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페 갤러해드
게시물ID : panic_1024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6
조회수 : 8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8/09 09: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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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 카페 갤러해드(Galahad)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혹은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 채더라도,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래되어 녹빛으로 바랜 문 앞에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 준다는 누런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을 뿐,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사슴처럼 투명한 눈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남자는 잘못된 행동이라도 하는 어린아이 마냥 얼굴에 긴장감이 배어있었다.

 

 보통의 카페와 달리 앉을 수 있는 곳은 계산대 앞에 있는 의자 다섯 개가 전부였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초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에 잘못된 일에 대한 두려움과 금단의 영역을 넘어가는 희열이 복잡하게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실링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남자의 목소리에 계산대 너머 자그마한 공간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던 여주인이 몸을 일으켰다. 창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테이프로 인해 바깥의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실내의 어스름한 불빛에 대충 걸친 검은 원피스가 한순간 일렁였다. 왼손에 들고 있는 낡은 담뱃대에서 새빨간 열기가 피어올랐다

 

 계산대를 가운데 두고 남자와 여주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담배 연기와 카페 안의 해묵은 공기를 폐로 흡입하면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 줄 수 있나요?”

 

 남자의 투명한 눈이 반짝였다.

 

 여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여주인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끊임없이 찾았다.

 

 한참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남자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떠올랐다.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런 거죠?”

 

 여주인은 담뱃대를 구석 한곳에 놓인 재떨이에 털었다. 아주 희미한 표정의 변화가 있었지만, 남자처럼 자세하게 쳐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세한 차이였다.

 

 투명하기만 하던 남자의 눈에서, 방금 전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렬한 욕망이 타올랐다.

 

 “얼마면 되나요? 돈은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어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남자를 보며 여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돈은 필요 없어.”

 

 “그럼, 뭐가 필요하죠?”

 

 “그 여자의 눈물.”

 

 여주인은 담뱃대를 재떨이 위에 올려놓고, 희뿌연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안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여주인이 꺼낸 것은 평범하게 생긴 작은 병이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편지를 넣어 줄법한, 그런 코르크 마개가 달린 작은 병이었다.

 

 “여기에 눈물을 담아오면 된다, 이거죠?”

 

 남자의 대답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이제 남자의 눈은 여주인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 시선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병으로 향해 있었다.

 

 지금 남자는 이 작은 병에 어떻게 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담을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병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 붙어 있던 종이가 휘날리듯 흔들리고, 잠시 밝아졌던 실내가 다시 어두워졌다.

 

 

#2

 

 

 남자가 다시 찾아온 것은 약 2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새벽이었다. 여전히 사슴과 같은 투명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지만,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감출 수 없는 희열이 온몸에서 흘러넘치듯 새어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 속에서 값비싼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작은 병을 꺼냈다. 병 안에는 코르크 마개 아래로 흘러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눈물 한 방울이 들어 있었다.

 

 여주인이 남자를 향해 걸어왔다. 왼손에는 담뱃대 대신 찻잔이 들려 있었다. 접시를 계산대 앞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음, 그 위에 조심스럽게 찻잔을 올려놓았다. 뜨거운 물이 담긴 찻잔에서 김이 올라와 어두운 카페 천정 안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여주인의 손을 꿰뚫을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단 한 순간이라도 허투루 흘릴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이면서, 동시에 강한 집착이었다.

 

 작은 병의 코르크마개를 연 채로, 여주인은 그 안에 든 눈물을 한참동안 살펴보았다.

 

 “남자친구랑 헤어졌대요. 그래서 괴로워하는 그녀를 위로해 줬어요.”

 

 여주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눈물로 그녀가 나를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요?”

 

 여주인의 손이 느릿하게 기울었다. 조명 탓인지 기분 탓인지 남자는 그 모습이 매우 느린 비디오처럼 느껴졌다. 작은 병 안에 든 눈물은 천천히,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이 타고 내려왔던 흔적을 따라 내려왔다

 

 병의 입구에서 한참을 멈춰서 있던 눈물이 찻잔 아래로 떨어지자, 남자는 무언가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빨개진 남자는 흥분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사정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억눌러왔던 아주 은밀한 욕망이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외면하고 억압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배출되는 쾌락이자 해방의 순간이었다. 여주인은 턱을 괸 채 자신 앞에 놓아진 찻잔을 바라보았다. 찻잔 속에 떨어진 눈물은 여자의 모습이 되었다가, 곧이어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3

 

 

 남자가 여자를 만난 것은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주변 친구들은 그녀를 수수하게 생겼다고 평가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남자에게 있어 그 여자는 주위에 흔하게 널린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일종의 신앙이자 절대자였다. 때문에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고, 그러는 사이 여자에게는 몇몇 남자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남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던 남자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녀의 결혼 예정 소식을 듣고 난 다음부터였다. 매일 밤 꿈속에 그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매일 다양한 모습으로 남자를 찾아왔다. 신입생 시절의 풋풋하던 모습으로 찾아올 때도 있었고, 한껏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갈망할 때도 있었다.

 

 꿈속에서 남자는 그녀와 희로애락의 시간을 보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벚꽃에 둘러싸여 산책을 하기도 했고, 좁은 자취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질척하게 서로의 몸을 탐하기도 했다. 자신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동안, 다른 남자들이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을 남자는 꿈속에서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날이 계속되면서, 그녀에 대한 남자의 사랑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남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깃들었는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실제의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남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소유욕에 의한 집착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사랑인지 그로써는 구분할 길이 없었다. 주변의 친한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친구들은 오히려 그의 고민을 듣고 놀란 듯 반문할 뿐이었다.

 

 “? 네가 지은이를 좋아했었다고?”

 

 뒤늦은 후회와 자책이 몰려왔지만, 이미 정해진 그녀의 결혼을 물리게 할 만큼의 자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카페 갤러해드(Galahad)가 남자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쯤 부터였다.

 

 

#4

 

 

 남자의 품에 안겨 여자는 울고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남자는 여자를 품에 안은 채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여자의 안심하는 표정 위로, 남자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겹쳐졌다. 강렬한 욕망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남자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실타래처럼 위태로워보였다.

 

 이윽고 남자가 여자를 바래다주는 장면이 찻잔 위에 떠올랐다. 여자는 무언가 망설였지만, 곧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여자가 집에 들어가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지켜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손에는 코르크마개가 닫힌 작은 병이 들려 있었다. 천천히 여자의 집에서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남자는 고조되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여자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와 여자의 남편이 있었다. 그 결혼식에서 남자는 식장 한구석에 선채 그녀의 결혼을 축복하는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남자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이게 뭡니까?”

 

 절정의 순간에서 찬물을 맞은 것처럼, 남자가 항의하는 목소리로 여주인에게 따졌다.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 준다고 했으면서, 이게 도대체 뭡니까?”

 

 남자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지만, 여주인은 그저 엎질러진 찻잔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네가 가져온 눈물의 사랑이야.”

 

 “뭐라고요?”

 

 남자가 더 큰 목소리로 화를 냈지만, 여주인은 여전히 그의 태도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엎질러진 찻잔에서 흘러나온 물이 테이블 아래로 조금씩 떨어졌다.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지켜주는 사랑. 그게 네가 지금 가져온 사랑이야.”

 

 “난 그딴 것 필요 없어요! 그냥 그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요.”

 

 남자가 다시 테이블을 내려치며 역정을 내었다.

 

 “그럼 그에 맞는 눈물을 가져와.”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여주인을 노려보던 남자는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5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지만, 그들이 결국 완성된 묘약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사랑의 묘약을 사용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악마와 거래를 하는 자는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겠다고 대답하는 순간부터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전부터 거래는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이 같은 경우도 그랬다.

 

 

#6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눈물을 구해 왔다고요.”

 

 봄비가 거세게 내렸다. 아직 채 푸르지 않은 잎들을 촉촉이 적셔주던 봄비는 어느새 그 존재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주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말든 상관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사슴같이 큰 눈을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지은이랑 잤어요.”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두운 카페 안으로 울려 퍼졌다. 비를 잔뜩 맞아 추운 듯 남자가 몸을 웅크렸다.

 

 “신혼집에서, 그 남자보다 나랑 먼저 잤어요. 아직 한 번도 사용한적 없는 그 침대에서 말이에요.”

 

 품속에서 남자가 작은 병을 꺼냈다. 백열등의 조명을 받은 병 안에는 눈물 한 방울이 들어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려간 자국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거면, 그녀를 내 걸로 만들 수 있겠죠?”

 

 여주인은 아무 말 없이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병을 받았다. 병 속의 눈물은 남자의 눈과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곧 알게 되겠지.”

 

 병에서 눈물이 흘러 나와 찻잔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남자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찻잔 속에 떨어진 눈물은 여자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다시 여자의 남자친구 모습이 되었다.

 

 

#7

 

 

 “그러니까 나한테 뭘 더 바라는 거야? 이 집을 산 것도 나고, 안에 있는 가구들을 마련한 것도 나야. 그런데 당신 아버지는 도대체 뭘 더 바라시는 거지? 내가 도대체 뭘 더 해야 되냐고?”

 

 술에 취한 여자의 남자친구가 비틀거리면서 소리쳤다. 우산은 이미 망가져 차가운 봄비가 여자의 뺨을 때렸다.

 

 “그만해. 사람들 듣겠어.”

 

 “들어? 사람들이 듣는다고? 들으라고 해. 듣고 나서, 누가 잘못했는지 한 번 이야기해 보자고. ?”

 

 “제발 그만해. 앞으로 여기에 살아야 하는데, 부끄럽지도 않아?”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 선채 여자의 남자친구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급하게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켜. 내가 할 테니까.”

 

 남자가 여자를 밀치고 도어락에 손을 대자 지문인식이 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바닥에 넘어진 여자를 두고 남자는 비틀비틀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빗물에 섞여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혼을 생각했을 때만 하더라도 여자의 남자친구와 여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견례가 끝나고 청첩장을 돌릴 때쯤 여자는 결혼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 여자의 남자친구 역시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결혼은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른다. 거실 소파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며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혼집에 도착한 남자는 비에 잔뜩 젖어 있었다. 여자의 전화를 받고 온 것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여자는 울고 있었는지 눈가 주변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 남자는 여자를 안고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를 하던 여자의 입술이 남자를 받아들일 때쯤, 그들은 안방에 있는 침대 위에 있었다. 격렬한 움직임이 끝이 나고,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워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우냐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비가 내리는 아파트의 현관까지 여자는 남자를 마중해 주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남자는 여자를 과감하게 안았다.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미소에 만족하며, 남자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곧이어 여자가 결혼하는 모습이 찻잔 위에 떠올랐다. 상대자는 여전히 여자의 남자친구였다. 다만 이번에는 결혼식장 안에 남자의 모습이 없었다.

 

 여주인이 찻잔 속의 물을 작은 병 속에 따랐다. 여자와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남자가 병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코르크 마개를 닫고 남자의 앞에 내밀었다.

 

 남자는 지난번과 달리 분노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답을 구하려는 듯 여주인에게 물어볼 뿐이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죠?”

 

 “여자가 후회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나랑 잤어요. 이건 그녀도 원한거에요. 그리고 날 배웅해 주면서 웃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날 후회 한다고요?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여주인은 담뱃대에 불을 붙인 다음, 희뿌연 담배연기 한 모금을 내뱉었다.

 

 “글쎄. 길거리에 있는 창녀가 하룻밤을 내주고 웃어준다고 해서, 돈을 쥐어준 남자를 사랑하지는 않겠지.”

 

 “난 그녀에게 돈을 준 적이 없어요.”

 

 “대신 감정을 줬겠지.”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눈물은 남자 스스로도 어떤 의미를 가진 눈물인지 알지 못했다.

 

 “난 그녀를 사랑해요.”

 

 “그럼 그녀를 사랑에 빠뜨릴 수 있는 눈물을 구해와.”

 

 남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아직까지 차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8

 

 

 남자가 다시 찾아온 것은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밤새 돌아다녔는지 피곤한 기색과 충혈 된 눈이 어둠속에서 희번득였다

 

 여주인이 다가오기도 전에 테이블 위의 찻잔을 들고 물을 끓였다.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병 속에는 혼탁한 눈물이 들어 있었다. 여주인이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남자는 끓는 물을 찻잔에 붓고 코르크 마개를 열어 눈물을 넣었다. 찻잔 속에 들어간 눈물은 붉은 피가 되었다.

 

 “이제 이걸로 그녀는 내 거에요.”

 

 남자가 잔뜩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찻잔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깨어날까 불안해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남자는 막무가내로 자신을 받아달라고 소리쳤다. 어제 저녁의 일은 실수였다고 용서를 구하는 여자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려고 했지만, 여자는 혀를 깨물어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혀끝에서 흘러나온 피가 입술을 타고 새어나왔다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여 남자는 여자를 집 안으로 몰아부쳤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안쪽에서 자고 있던 그녀의 남자친구가 달려 나왔다. 남자는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달려들어 쓰러뜨린 다음, 그 옆에 같이 넘어져 울고 있는 여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찻잔 속에 여자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찻잔 속에는 결혼식도, 남자도, 여자의 남자친구도 없이 언제까지나 혼자 울고 있는 여자가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녀 혼자밖에 없어요. 남은 건 그녀가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뿐이에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이 찻잔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과 대조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 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경찰들이 들어왔다. 경찰들은 카페 안에 있는 여주인과 남자를 한 번씩 보고서는 남자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에게 체포당하면서도 남자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쇳소리 같은 그 목소리가 기분 나쁜 듯 경찰들은 남자를 차에 태우고 황급히 출발했다.

 

 

#9

 

 

 찻잔 속에 남자의 눈물을 넣었다. 얼마 전 카페를 찾아온 여자가 들고 온 눈물이었다. 찻잔 속에 들어간 눈물은 곧바로 남자와 여자로 바뀌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남자와 여자는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여주인은 병을 들어 찻잔에 속에 있는 물을 따른 다음, 코르크마개를 닫아 한쪽 구석으로 치웠다

 

 구석에는 먼지에 쌓인 수많은 병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병 속의 남자와 여자는 언제까지나 행복했지만, 이 물약이 남자에게 전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끗. 

 

출처 그러게 좀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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