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형성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1867~1918년까지 존재했었던 이중제국이며 이중제국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이한 정치체제입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1867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와 헝가리의 귀족들사이의 대타협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할때까지 이 이중제국은 유지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제국은 180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란츠2세가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지와 바깥의 영지들을 전부포함하여 오스트리아제국으로 승격시키면서 생성됩니다.
하지만 1809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수도 빈까지 점령당한 오스트리아 제국은 나폴레옹과 프란츠1세의 딸인 마리 루이츠를
결혼시키고 1813년 오스트리아제국은 다시 프랑스제국과 싸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독일지역에서
프랑스를 몰아냅니다,이후 영국-프로이센-러시아-네덜란드-스웨덴-라인동맹-스페인-포르투갈-오스만제국-알제리-페르시아-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공격해 워털루전투에서 완전히 프랑스를 패배시키고 유럽의 강대국자리를 다시 차지하였으나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전국각지에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바람이불자 오스트리아제국은 이를 강력하게 탄압하였는데 이는 결국 독립요구로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제국내 에서 가장 강한 저항세력인 헝가리를 회유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제는 합스부르크가
의 차지이지만 헝가리는 독립의회를가지며 독립의회가 헝가리를 통치하는형태로 이중제국이 성립하게됩니다.
민족의 샐러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게르만계통의 오스트리아인 슬라브계통의 체코,폴란드,슬로바키아,보스니아,슬로베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라틴계통의 루마니아인 우랄계통의 헝가리인이 거주하였으며 다민족을 합쳐서 한군대로 엮은 미국과달리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각 민족마다 따로 군대를 뒀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행정지도(16번이 헝가리왕국)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제국의 다른 민족에 대한 형태는 매우달랐는데 원래부터 지배하던 민족인 오스트리아인들은
다른민족들에게 비교적 순한정책을 썼는데 비하여 헝가리는 주변지역의 민족들을 탄압하였으며 서서히 오스트리아인들에 대한반감은
헝가리민족에대한 반감으로 옮겨갔으며 이는 후에 헝가리가 엄청난영토를 잃는데 상당한 역할로 작용했다고 보고있으며 실제로 현재의
헝가리는 방대한 영토를 잃고 수도와 그주변지역만 남아 남한보다 작은면적을지닌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전락하였습니다.
발칸반도로의 진출
이렇게 많은 민족들이 살고 민족들이 저항하는 상황에서도 오스트리아는 더 많은 민족들이 있는 발칸반도로 진출하였는데 이는
당시 열강들이 아프리카로 급속하게 팽창했는데 비해 해운력이 뒤떨어졌던 오스트리아는 이럴 기력이없어서 발칸반도로 나가는
동진정책을 펼쳤고 이는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정면충돌하였고 1908년 오스만제국에 혁명이일어나자 이때를 틈타 보스니아를 잽싸게
합병해버리면서 러시아와 세르비아간의 사이가 나빠지게되는데 이때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려하였지만 러시아가
준비가안됬다는 주문을보내어 실패하였는데 이후 1914년 러시아제국은..
대오스트리아 합중국방안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제안하여 정치가 아우렐 포보비치가 1906년 세부안건을 작성한 방안으로 시대를 앞서간 EU모델이라 평가받으며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가장 강했던 저항세력인 헝가리는 누를수있었지만 이외의 많은 민족들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내에서 발언권이 없다시피
하였으며 독일계와 헝가리계가 아무리 많다지만 전체인구의 44%밖에 차지하지못했는데 이 민족이 더많은수의 민족들을 휘둘렀다는것은
이 체재가 오래지속될수 없었음을 의미했다, 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외에 자치권을 누리는민족은 크로아티아인밖에없었으며 그마저도 제한된권리만
행사할수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민족들은 제대로 권리를 누릴수없었고 결국 체재를 안정화시키고 민족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가 제안한것은 전 국토 내부 경계선을 새로 그어버리는것이었으며 새로 개편된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제국을 아예 연방국가
로 만들어버리고 국가명도 오스트리아 합중국으로 바꾸며 각 민족들의 언어와 문화를 살리고 민족간 불균형을 살리자는 방안이었는데 이 방안을 제안
했던 사람이 저명한 정치가도아닌 황태자였고 오스트리아의 귀족들도 대부분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며 독일계의 기득권을 내주겠다는 대인배스러운
방안이었지만 제국내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것을 두려워한 헝가리제국이 반대하고 반대하다 1914년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들이 페르디난트를
암살하고(사라예보 사건) 이에 격노한 황제 프란츠 요세프 1세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하게되고 이는 1차세계대전으로 번져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트리아제국은 공중분해되었으며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으로 남고 헝가리는 원래 자국 영토였던 지역들도 루마니아,오스트리아,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 상실하며 유럽의 최약국으로 전락하고 이후에도 헝가리역사는 고난과 굴욕으로 점철되었으며 1990년 철의장막이 붕괴되고 나서야
겨우 나라의 틀을 찾았지만 현재도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크게 몰락한상태이며 오스트리아는 소련에 편입되지않아 그나마 국가가 안정되고 현재는
상당히 부유한국가가 되고 서유럽과 공산권을 잇는 중립국이라는 점때문에 각 국가의 주요회담이 열리는등 예전만은 못하지만 상당히 세계에서
큰입지를 차지하는국가가 되었습니다.
식민지 확보및 진출 오스트리아제국은 일찍이 다른나라들이 해외식민지로 진출할때에 같이 식민지로 진출하여 인도일부와 니코바르제도를 획득하였으나 상실하고 결국 오스트리아는 유럽 내부로 눈을돌려 동쪽과 남쪽으로 확장하였고 이는 해외식민지에비해서 많은 분쟁을 일으켰고 결국 다른나라에비하여 산업혁명도 늦게일어나고 다른열강들은 크게 시달리지않던 민족문제에도 시달리는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소유했던 해외식민지인 니코바르 제도(인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식민지 목록 알바니아(1916~1918)->알바니아 독립 벨기에(1714-1793/1795)->프랑스에 상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878-1918)->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독립 헝가리(1526-1918)->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해체 롬바르디아(1714-1859)->사르데냐왕국에 할양 몬테네그로(1916-1918)->몬테네그로독립 폴란드(1916-1918)->폴란드독립 세르비아(1718-1739/1915-1918)->세르비아독립 루마니아(1916-1918)->루마니아독립 오스트리아령 북이탈리아(1737-1796)->사르데냐왕국에 상실 시칠리아(1720-1735)->양시칠리아왕국에 상실 오스트리아령 인도(1719-1750)->영국에게 상실 오스트리아령 니코바르제도(1778-1783)->네덜란드에게 상실 |
1차 세계대전 패전 및 제국 해체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다른국가에비해 산업화가 늦었고 오스트리아는 농촌사회가 잘 보존되어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좋았으나
제국의 재정상태는 늘 나빴고 그때문에 군대의 장비는 부실했고 장교들은 해이하여 1913년 레틀대령사건이라는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또한 군대의 경우 군인들은 국가를 지키기보단 경찰과 같은 치안사무를 주로맡았고 군사훈련이 힘들지않았으며 규율이 엄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군대의 제복은 전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고 국가에서 군행사를 자주 주최하였기때문에 군인들은 전 국가에서 인기가
폭발하였다고합니다
그러나 이런군대가 전쟁에서 제대로 싸울리없었고 세계대전에서는 러시아군에의해 쓸려나가는 굴욕을 당하기도했으며
이에의해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에서는 120만명이 사망하고 360만명이 부상을입었으며 엄청난 영토손실을 겪을수밖에없었고 결국
자기나라마저도 지킬힘이없어진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선언을하였고 헝가리는 다른나라의 사실상 지배하에 떨어진 위성국가로 전락하였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