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의 世祖 光武帝 建武 18년 壬寅(AD42년) 契浴日에 그들이 살고 있는 북쪽 龜旨에서 무엇을 부르는 이상한소리가 났다. 사람들 2,3백 명이 여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모양은 숨기고 소리만 들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九干 등이 말했다. “우리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또 말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 “구지(龜旨) 입니다”이에 또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 곳에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였으므로 일부러 여기에 내려 온것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파면서 노래를 부르되 龜何龜何 首其現也 거북아 거북아 네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하고, 뛰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大王을 맞이하여 기뻐 뛰놀게 될 것이다.“ 九干들은 이 말을 좇아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다가 얼마 안되어 우러러 쳐다 보니 다만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져서 땅에 닿고 있었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金閤이 싸여 있으므로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黃金 알 여섯 개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유사 구지가 설화입니다. 그리고 일본서기 신대기의 이야기를 보도록 합니다.
【일본서기 2권 9단 一書 제 4 日本書紀 卷第二 第九段 一書第四 】
一書曰 高皇産靈尊 以眞床覆衾 裹天津彦國光彦火瓊瓊杵尊 則引開天磐戸 排分天八重雲 以奉降之 于時 大伴連遠祖天忍日命 帥來目部遠祖天津大來目 背負天磐靫 臂著稜威高鞆 手捉天梔弓 天羽羽矢 及副持八目鳴鏑 又帶頭槌劍 而立天孫之前 遊行降來 到於日向襲之高千穗日二上峯天浮橋 而立於浮渚在之平地 膂宍空國 自頓丘覓國行去 到於吾田長屋笠狹之御碕 時彼處有一神 名曰事勝國勝長狹 故天孫問其神曰 國在耶 對曰 在也 因曰 隨勅奉矣 故天孫留住於彼處 其事勝國勝神者 是伊奘諾尊之子也 亦名鹽土老翁
일서에 말하기를 고황산영존이 상을 덮는 이불로 裹天津彦國光彦火瓊瓊杵尊 에 입혀서 돌문을 열고 八重의 구름을 헤치고 내려가게 했다. 때에 대반련의 선조 天忍日命이 내목부의 선조 아마노구시노오오구메
를 데리고 등에는 天磐靫을 짊어지고 팔에는 稜威高鞆을 끼고 손에는 天梔弓과 天羽羽矢를 잡고
八目鳴鏑를 가지고 또 頭槌劍을 차고 내려와서 日向襲의 구시히( 日 ) 二上峯의天浮橋에 이르러서 바다 가까이의 평지가 있는 곳에 서서 膂宍의 무네구니(가라구니?? 空國)를 먼 언덕을 지나 좋은 나라를 찾아 吾田의 長屋의 笠狹 해변에 다달았다.
때에 一神이 있어 이름은 事勝國勝長狹이라 하였다. 천손이 그 신에게 물어 " 나라가 있는가?"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나서 " 말씀대로 바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천손이 거기 머물렀다.事勝國勝長狹은 伊奘諾尊의 아들로서 鹽土老翁이다.
기마 민족설을 주장한 에가미 교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구지가 부분과 일본서기 신대기의
이 기록이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같고 거기에 등장하는 소품의 일치 ( 왕을 덮는 이불) 가
도저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가 다를 뿐 구지봉..구시히 라는 지명이 일치하는 점.. 그리고 일본서기에서는 空國 이라고 적고 무네구니로 적었지만 가라구니로 읽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면.. 역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후지와라 사다모토의 표현대로 일본이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일본서기를 읽어야 원래 뜻을 알 수 있다고 한 표현대로..그런 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이런 부분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서 일본서기를 본다면 단지 재미난 수수께끼입니다.
동성왕 이야기 드리면서 일본 무열천황과 같이 분석한 것이 좀 생뚱맞다고 느끼셨던 분들은
일본서기란 어떻게 만들어진 책인가.. 한번 정도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