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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말이야. 귀신을 믿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운전을 하고 있던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귀신이요? 어.... 네 믿죠. 그건 왜물어보세요?”
사실 믿지 않지만 그냥 거짓말을 했다.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지금까지 지원한 사람들은 많았는데 정작 귀신 믿는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거든. 자네는 왜 지원했나 싶어서 물어봤지.”
“이유랄게 있나요? 그냥 돈이 좀 필요했어요. 뭐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일자리를 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종이 전단지. 그곳엔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있었다.
[폐가에서 일주일을 버티면 오백만원 지급.]
단순 고액 알바 수준을 넘어선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아저씨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한 것이었다.
“뭐 별거 없어. 그냥 재미있으니까. 당당하게 들어간 놈들이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덜덜 떨면서 나오는게 제법 볼만하거든. 물론 소소하게 돈벌이도 하고.”
아저씨는 웃으며 안주머니에 넣은 봉투를 툭툭 두드렸다. 거기엔 내가 건넨 참가비가 들어가 있었다.
차는 좁디좁은 산길을 달려 낡은 폐가 앞에 멈춰 섰다. 제법 크기가 큰 2층 건물이라 잘 관리만 되어있었다면 훌륭한 별장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을씨년스러울 뿐이었다. 묘하게 공기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귀신 안 믿어. 흉가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여기도 결국 그냥 빈집이지. 집주인인 내가 제일 잘 알지 않겠어?
근데 말이야 이상하게 강심장이라는 놈들도 저기서 며칠 지내보면 엉엉 울면서 나오더란 말이지.
저 집에 귀신이 있다고 말이야. 자네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만약에 제가 성공하면 최초인가요?”
“그런 셈이지. 지금까지 제대로 버틴 사람은 없었으니까. 제일 오래 버틴게 나흘이야. 그나마 그놈도 반송장 돼서 나왔지.”
“그 정도에요?”
“내가 얘기 했을 텐데? 어설프게 돈만 보고 덤빌 일이 아니라고.”
물론 그런 얘길 들었고 몇 번씩이나 다짐 받기는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실패 한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저씨 말대로 결국은 그냥 빈집에서 며칠 지내는 것뿐이다. 포기할 이유도 무서워해야할 이유도 없다.
“못하겠으면 지금 얘기해. 시작했다가 포기 하면 한푼도 못줘. 지금 포기하면 차비라도 챙겨 줄테니 잘 생각 하라고.”
난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할게요.”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짐내리자고. 무전기 하나 줄테니. 포기하고 싶음 바로 연락하고.”
난 멀어져가는 차를 뒤로한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 꼴은 밖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판은 다뜯겨있고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구는 꼭 누군가 다 때려 부순 것 마냥 멀쩡 한게 없었고 창문도 어디 하나 성한곳이 없었다.
공사라든가 보수를 하려 해도 사람들이 귀신들린 집이라며 피하는 바람에 이꼴이라고 했다.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과 캠핑 장비들을 현관 앞에 놓고 우선 집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일층은 큰 거실과 주방. 부엌방 하나가 있었고 이층은 큰방 하나와 작은방 하나가 있었다.
“이왕이면 넓은데 있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는 짐을 챙겨와서 큰 방에 텐트를 쳤다.
조금 오싹한 느낌은 있었지만 역시 지내기에 무리가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버너에 불을 켜고 라면을 끓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일주일 버티는건 크게 문제없긴 한데 이거 영 의심스럽네.
혹시 이거 인신매매 이런거 아니겠지? 귀신이라고 겁준 다음에 아무것도 못할 때 쓱싹 해버리는거 아냐?”
오히려 현실적인 걱정이 다가왔다. 난 몰래 챙겨온 캠핑나이프를 손으로 더듬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오기만 해봐 그냥 쑤셔버릴테니.”
그리 생각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눈이 떠지지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뭐야? 나 가위 눌린 거야?’
평생 가위는커녕 악몽한번 꾼적 없던 나였기에 너무도 낮선 느낌이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많은 목소리였기에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망할...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다시 자면 되나?’
그렇게 잠시간 애를 쓰고 있자니 거짓말처럼 모든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섬뜩할 정도의 침묵사이로 현실의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끼익...’
나무판자가 끼익 거리는 소리. 누군가 나무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망할... 내가 이럴줄 알았어.’
난 급히 몸을 움직여 나이프를 뽑아들려 했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여라 쫌!’
하다못해 눈이라도 떠보려 해봐도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발걸음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2층 복도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안가 내가 텐트를 치고 누워있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내게 달려들 것 같은 느낌에 뒷덜미가 저릿할 지경이었다.
밖에 있는 놈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퍼소리가 나며 닫아놓은 텐트 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전혀 서두를 필요 없다는 듯 느리게, 느리게. 그래봐야 십초쯤 걸렸을 테지만 나한텐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날카로운 칼이 내 몸을 파고드는 끔찍한 상상에 숨조차 쉬지 못할 때 쯤 내 얼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닿았다.
분명 손 같았지만 너무도 거칠고 차가운 감촉이었다.
난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 손을 뿌리치려 했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 손은 촉감으로 내 생김새를 가늠해 보는 듯 몇 번이나 얼굴을 훑어내다가 이윽고 감겨진 내 눈 근처에 닿았다.
날카로운 손가락이 내 눈꺼풀을 뒤집고 눈 안으로 파고든다 생각한 순간, 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뜬 후였다.
마치 밤새 노가다라도 한 듯 몸이 삐거덕 거리는 느낌이었다.
다급히 얼굴을 만져보니 다행히 어디 하나 문제없이 멀쩡했다.
“후우.. 뭐야 죽는줄 알았잖아.”
꿈이었구나 싶어 헛웃음을 삼키며 안심하려는 찰나, 어젯밤 분명히 닫아두었던 텐트 입구가 열려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먼지 쌓인 방바닥에서 내것이 아닌 발자국도 찾아볼 수 있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어젯밤 일은 꿈이 아니었다.
“결국 그거네. 그 아저씨가 그냥 사람 가지고 노는 거네.”
얼마간 생각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밤에 그 아저씨가 찾아와 장난질을 친 것이다. 날 포기 시키기 위해 겁을 주려는 짓이 틀림없다.
처음엔 겁이나서 도망칠까도 생각했지만 다행히 금세 냉정함을 되찾았다. 애초에 귀신같은게 있을리 없다.
“이쯤 되면 나도 그냥은 못나가지. 뻔히 아는데 무서울 필요가 있나.”
난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뭐야 또 이래?’
그날 역시 일찍 잠에 들었지만 어제처럼 가위에 눌렸다.
다행이라면 지금은 눈만은 간신히 뜰 수 있었다.
어제처럼 수많은 소리가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소리들은 무언가에 겁을 먹은 것처럼 갑자기 뚝 하고 끊겨 버렸다.
소름끼치는 고요함 속에서 텐트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끼익’
그 발소리가 2층 복도를 지나 방안으로 들어온 그때, 텐트에 옅은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느릿하고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점점 텐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얇은 몸과 긴 팔. 한껏 늘어뜨린 머리칼. 주인아저씨의 실루엣이 아니었다.
아니 사람의 실루엣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이번엔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 형체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아주 천천히 텐트로 다가와 지퍼를 잡고 열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두를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열리는 문. 곳이어 열려진 텐트 사이로 그것의 얼굴이 드러났다.
마치 시체를 말려놓은 듯 쭈그러지고 뒤틀린 얼굴.
듬성듬성 빠진 긴머리는 마구 엉긴 채 머리에 달라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손.
갈퀴를 연상시키는 가늘고 긴 손가락들이 뻗어와 내 얼굴을 훑어내기 시작했다.
떠져있는 내 눈으로 그 손가락중 하나가 점점 다가왔다.
난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정신을 놓고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던 건지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어제일을 떠올리며 얼굴을 만져보았다. 역시 몸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텐트 문이 열려있었고 희미한 발자국 역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야한다.
다급히 일어나 짐을 챙겼다. 우선 이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음에 무전기로 포기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저씨의 비웃음 따위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되는대로 짐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왔다. 일단은 최대한 이곳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현관을 벗어나 마당으로 들어선 순간.
“악!!!”
다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내려다보니 커다란 곰덫에 걸려 다리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무전기를 찾기 위해 떨어진 가방을 주워들었다.
“아저씨.. 제말 들리세요?”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집어 들고는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답은 오지 않았다.
휴대폰이며 연락가능한 모든 전자기기는 맡겨놓은지라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제발 대답좀 해라...”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근처에 떨어진 돌로 덫을 부숴보려 했지만 여간 튼튼한게 아니라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덫을 두드리고 무전기에 고함을 치며 몇시간이 흘렀을때쯤, 무전기에서 답변이 왔다.
‘아아, 내말 들리나? 내가 너무 늦게 받았지? 그래 슬슬 연락이 올거라 생각했지. 포기하려고?’
난 다급히 말했다.
“왜 이렇게 무전을 안받아요. 네 포기 할게요. 더 이상 여기 있기 싫어요. 아니 그보다 당장 와주세요.
지금 덫을 밟아서 꼼짝도 못하겠어요. 벌써 몇 시간째 피흘리고 있어요. 얼른 와서 살려주세요.”
내말에 무전기 너머로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혹시라도 안걸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걸린 모양이구만. 잘되었어.’
이해 할 수 없는 말에 내가 멍하니 있자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
그 집말이야. 어찌나 사람이 죽어나가는지 아주 골칫거리였거든.
싼맛에 사긴 했는데 자꾸 이상한게 튀어나온다고 하니, 영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어.
그래서 용한 무당을 불러다 물어봤더니 온갖 잡귀들이 드글드글 하는데다 끔찍한 악귀까지 들러붙어 있다지 뭐야?
방법이 없겠냐고 하니까 한다는 말이. 제물을 바쳐서 악귀를 달래야 한다더구먼.
악귀가 떠날때 까지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나한테 큰 화가 온다나?
어쨌건 뭐 그다음부터는 대충 어찌 돌아가는지 알겠지? 큰돈 주겠다고 꼬드겨서 자네 같은 머저리들 불러 모으면 되는거지.
무슨 짓거리를 해도 너 구하러 올 사람 없으니까 죽기 전까지 기도나 해둬. 어차피 해떨어지면 끔찍한 놈이 달려 들테니.
아 이미 봤으려나? 한 며칠 장난치는 것처럼 네몸 쓰다듬으면서 간보다가 어느 순간 확하고 눈깔을 후벼 팔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
난 덫에 물린 다리에서 나는 통증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무전기를 들었다.
“야! 네가 사람이야? 너 당장...”
하지만 어지럼증 때문에 오래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무전기 너머로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 나한테 거짓말했지? 귀신 믿는다고 말이야.
귀신 믿는 놈들은 죽으면 죽었지 이런데 안와. 그래서 거짓말 한줄 알았지.
아 물론 나도 거짓말했어. 난 귀신 믿어. 거기 있는 그 시체 같은 놈 나도 봤거든.
그놈을 봤으니 어쩌겠어. 무당말 들어야지. 아 그리고 거짓말 하나 더했네.’
잠시간의 침묵 후에 무전기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에 눈멀어서 거기 들어갔던 놈 중에 살아나온 새끼는 한놈도 없었어.’
희미해져가는 의식 너머로 해가 완전히 넘어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