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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6개월간을 주말부부로 살았다.
한 주는 와이프가 내려오고, 한 주는 내가 올라가고...
그때만해도 일요일 저녁에 헤어질때는 와이프가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지기 싫어했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이뻤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달콤한 6개월간의 주말부부 생활이 끝나고 합가했을때..... 만 해도 나는 대접 받았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임신해서 부른 배를 부여잡고 밥해주고, 퇴근해서 또 밥 챙겨주고...
내가 강태공마냥 한량으로 잠만 처자도 나에 대한 헌신은 끔찍했다.
하지만 그 농밀하게 달콤했던 봄날은 얼마 유지되지 못했다.
어느날부터 아침에 빵조각만 툭 던지고 가더니....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없다..
음.. 이제 내가 떠나야 할땐가?? .. 아..아니.. 이제 슬슬 사랑의 약발이 떨어질때인가...
생각해보니 참으로 와이프한테 못된 짓 많이 했다. 허니문 베이비로 생긴 꽁알이를 뱃속에 넣고, 자기일 열심히 하는 와이프 두고 맨날 술이나 처먹으러 다니고...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새벽 길에는 늘 페이스북을 일삼았다.
이 시간에 술 처먹고 집에 가는 중인 간 큰 유부남이라는 것을 위해 온갖 허세는 다 부렸다.
친구들이 "넌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결혼전이나 후나 늘 똑같애. 제수씨가 뭐라 안하냐?" 라고 오히려 걱정을 해주면..
"야.. 임마들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나라를 구한게 아니라 마누라가 나라를 팔아먹었을수도 있어.. 내가 이러니까 니들하고 끝까지 술 처먹는거지~ 고마워 해~"
나의 그런 삶을 좋아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처음에는 이해해주던 와이프도 그런 일이 잦고, 아니 그게 일상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부인이라면 당연히 화낼 그런 상황을 난 오히려 역정을 냈다.
내가 술먹고 다니는 것은 다 사업을 위한거라고..
(아우.. 내가 생각해도 밥맛이네..)
당시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 대부분이 바깥을 많이 다니던 사람이었고, 어쩌면 결혼 선배들인 그들을 부러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는 학회때문에 서울에 온 모임 형이랑 만나서 소주한잔 하는데 형수님도 같이 왔었다.
물어봤다.
"형수님.. 형이 바깥 돌아다니는거 첨부터 이해했어요??"
"아니~ 우리도 처음에 많이 싸웠지.. 내가 저 꼴 이해하는데 한 5년 걸렸나?"
"아.. 5년?? 음.. 그럼 난 이제 4년만 버티면 되겠군"
"아이고... 그러지마~ 부인한테 잘해줘야지.."
옆에서는 그 형은 허허허 웃으면서 소주잔만 기울인다.
친하다던 사람 대부분이 술 마셨다하면 밤새는게 다반사인 유부남들이었으니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런 집안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자충수를 둔건가.
처가집 장인장모의 모습이 너무나 화목해서 그것이 나에게 결혼이란 것을 확신하게 해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딸은... 당연히 부부란 같이 붙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이 생각과 난 달랐다.
사람이 일이 있으면 늦을수도 있고, 출장 갈 수도 있고, 밤샐수도 있고, 며칠 집에 못 들어갈 수도 있고...
그게 내 생각이었다. 어릴때부터 외지 생활과 자취를 오래한 탓도 있고....
이런 서로 다른 생각으로 우리는 늘 싸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페이스북에는 허세 가득한 쎈 남편 코스프레는 지속되었고...
하루는 와이프가 진지하게 말한다.
"오빠가 계속 이러면 오빠랑 더는 못산다."
"그게 뭔 뜻이지?"
"뭐긴.. 같이 못산다는 거지."
"그래? 알았어. 사람이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다. 싸우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별개다. 난 나를 테스트하기위해 헤어져라는 말을 하는 사람하고는 두말없이 헤어져왔다. 니가 또 다시 이런말을 한다면 니가 원하는데로 해줄께."
"지금 그게 뭔말이야? 그게 할 소리야?"
"할 소리고 뭐고 내 말은.. 니가 날 욕해도 좋은데, 같이 사니 못사니 하는 말이 다시 나올 경우는 니가 원하는대로 같이 안 살아줄께."
나를 더 자극하면 또라이 될까봐여서인지 와이프는 더 이상 말 안했다.
이것으로 우리의 상호간섭체계가 완성된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술을 처먹고 다녔고, 와이프는 잔소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고향서부터 죽마고우였던 놈과 만나 어떤 일을 추진하다가 뒤통수를 맞았었다.
평소 그 친구의 인상이 안 좋다고 어울리지 말라는 와이프 말에 친구 욕하지 말라며 화내곤 했었는데, 막상 그런일이 있고나니 와이프 볼 면목이 없었다.
지친 몸을 끌고 집에와서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정리하는 나에게 와이프가 한마디한다.
"에구~ 그동안 고생했네. 이제 그만 잊고 좀 셔~"
잔소리라도 퍼부을지 알았는데, 잔잔히 위로를 해주는 마누라를 말없이 쳐다보며 멋적게 웃었다.
"그봐.. 새끼야.. 옛날부터 마누라말 잘 들으면 떡이 나온댔어~ 앞으로 내 말 잘 듣고 살어! 알았냐??"
자존심은 상하나 틀린 말 없는 그 말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걸로 모든 상황이 정리된건 아니나...
결혼하고 처음 시작이 바닥이었으나,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가 생기고 늘어가고... 나이를 먹어가며 생각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와이프는 나를 점점 놓아주기 시작했다.
옳다쿠나!!
귀가 허용 시간이 12시에서 2시로.. 새벽 4시까지 늘어났다.
예전에 형수님이 한 말마따나 5년 정도가 되니...
귀가시간, 청소 뭐 이런걸로 치고박던게 모두 사라졌다.
신혼초... 서로 기선 제압하려고 싸우는거... 의미없다..
상대에게 이길 필요도 없고, 져줄 필요도 없다.
시간 지나면 그냥 다 살게 된다...
이제 우리부부가 싸울 일은 애들 교육관의 차이... 그거 하나밖에 없다..
많은 결혼 후배님들이 재밌게 살았으면 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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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많은 분들이 글을 읽고 불편해 하셔서.. 마무리를 변경하려 하나, 그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추가적으로 변명합니다.
결혼생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수하고 아픈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많으리라 봅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현재의 좋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연작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의 시작의 글이 이 본문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모쪼록 나중의 글을 통해서 꾸준히 변명(?)을 하려하니..
이런 놈도 행복하게 살수 있구나.. 라고 위안을 삼으셨으면 합니다...
출처 | 경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