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는 불행한 고아로 살아온 내게 찾아온 늦은 입대......
욕먹는게 두렵고 누군가 나에게 실망하는게 두려운 내 애정결핍이
힘들고 고되지만 예쁨 받는 이등병을 만들었고
그 꼬인 군생활은 상병 물호봉에 분대장을 만들고
군생활 중 내 생활패턴을 보아하니 내무실장급이 되었다.
탈영 후 타부대에서 전출 온 선임은 사고뭉치였다.
내가 말하는 사고뭉치란 힘든 군생활에 적응 못하는
혹은 엄격한 규율과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는 청춘이 아닌
이상행동을 하는 본인 때문에 고통받는 나와 같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단적인 선택과 행동으로 같은 처지의 사람을 곤란하게, 힘들게 생활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었다.
말이 좋아 앞선 설명이지 그냥 또라이였다.
결국 군생활에 FM과 최선, 효율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는 나에게
부대는 그를 안겨주었다. 내가 분대장으로 있던 분대로 배정되었다.
당시 그는 내게 큰 걸림돌이었지만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은 최고의 선택이자 최고의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늦은밤...
당시 타 경쟁프로는 기억이 안나지만 모든 사람이 보는 경쟁프로를 안보고 초창기 무한도전을 보는 그를
우연치 않게 주말 저녁에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무한도전은 10회? 20회? 안쪽으었을 것이다.
당시 목욕탕에서 물퍼는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03년 10월 군번인데 기억은 희미하다. 지금은 내가 누구보다 무한도전의 열렬한 매니아라는것이 신가할 뿐이다.
여러사람이 보고 있는 프로를 안보고 왜 이시간에 여기서 혼자 불꺼진 내무실에서 이걸 보냐고 했을때
그 물움이 내 인생 최고의 질문이나 최악이 질문이 될 것을 몰랐다.
그가 말하길 '그냥 이런 엉뚱한 도전이 좋다.' (기억이 희미해 정확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또라이라고 생각하며 긴 얘기를 하던 도중 또렷한 그의 질문 한가지는 기억한다.
'넌 뭐라도 되냐. 왜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피곤하게 일하냐'
당시 나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준비도 없었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내가 이곳에 머물렀다면 내가 머물고 지나간 후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란다.'
이런 것멋들린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훔친 내 포장이었다.
문제는 그 한마디가 내 인생 전체를 매듭짖고 있다.
그 후 나는 그 쓸데 없다고 생각한 한마디에 목숨을 걸고 살았다.
후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많은 군생활의 선택을 그것에 기반을 두고
기존의 모든 군질서를 어지럽게 만들고 보여지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
말이 좋아 인권이지 보여지기 위한 편함을 후임들에게 안겨줬다.
내 인격이라고 자위하며 행동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그 또라이 탈영병과의 대화의 결과였다.
그리고 내 군생활은 남은 어떤지도 모른체 내가 모든 부대 문화를 바꾸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말년에도 청소를 하고 작업을 하고 열혈장병으로서 마감했다.
문제는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이다.
사회생활을 지나가오며 인간생활을 지나오며 많은 선택에 기로에서 혹은 행동의 기반이
당시 그 탈영병과의 대화로 귀결되는 선택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 여지가 그 선택을 못따라가니 이것이 우울과 짜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답답한 내 성격...
차라리 책을 덜 읽고 덜 깨었으면 어쩌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런말 좀 그렇지만 현명한 문외한을 삶 속에서 무던히도 만나며 내가 아는게 다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너무 힘들다.
술을 많이 마신 이 밤
술을 많이 마셨던 전날의 모든 밤에
난 늘 그런 고민을 한다. 석민아.
네 이름은 어떤 이름 보다도 안 잊혀진다.
그 날밤 내 인생은 헝클어졌다.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좋고 나쁨이 없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음이 날 힘들게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허세에 들린 그 대답을 찾기위해 난 10년을 애가 마르게 달려왔다.
이 대답의 정당성이 보장받기 위해
그로 인해 내 그릇보다 더 큰 책임을 갖게 되어 내 주변사람이 힘들어 질만큼 난 그 대답을 찾고 있다.
그런 넌 내 물음에 어떤 대답으로 살아 가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