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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심에서 징역 1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습니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난 것인데요, 143일만에 풀려났습니다. 이 결과를 보며 저는 지강헌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지강헌 사건이란 1988년 10월 16일, 서울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탈주범 4명이 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10시간 만에 죽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영화 홀리데이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마지막 인질범은 최후의 순간에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로 자기 목을 그었습니다. 다른 인질범들은 먼저 총으로 자살을 하고 총알이 없어 유리로 목을 그은 것입니다. 그러다 인질을 해치려는 줄로 착각한 경찰특공대가 쏜 4발의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그 인질범이 바로 지강헌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유행했습니다.
당시 탈주범들이 밝힌 탈주 원인은 10년에서 20년까지 내려진 과중한 형량이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특별법을 양산했습니다. 이들의 탈주계기가 된 것은 형량의 불평등이었습니다.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항변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는 수십 억 원에 대한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습니다. 지강헌 등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 없고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상대적 불평등에 분노한 것입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이런 상황은 더 나아졌을까요? 저도, 여러분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지요. 책임회피를 위한 수법은 더욱 교활해졌고 탈세와 사기, 횡령 등의 범죄는 큰 돈을 해먹어도 여전히 그 수위에 비해 높은 형량을 선고받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저는 그 답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정의구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옳은 일을 했으면 상을 주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이 사단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 군관들이 국군의 요직에 앉고, 그 때 당시 정권에서는 젊은이들을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보냈습니다.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을 대기업으로 밀어주며 GDP 성장이라는 껍데기뿐인 성장을 이뤄내고 낙수효과라는 말로 부의 재분배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지요. 베트남전이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국가유공자들의 후손들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에서 2013년에 수도권 초중고생 6000명을 대상으로 윤리의식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설문 항목 중에 10억 원이 생기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은가?라는 설문 항목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고교생의 44%가 감옥에 가겠다는 항목을 골랐습니다. 그 당시 상당한 이슈를 일으켰던 일이지요. 하지만 누가 비난을 하겠습니까? 청소년들의 인성을 탓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말은 당연한 상식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당연한 상식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옛 속담입니다. 황금만능주의는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의 본성에 박혀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정의구현을 통한 사회의 자정작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에 따라 이런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이 사회에는 이미 철폐된 신분제 대신에 새로운 신분제가 생겼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노비, 중상층은 평민, 부자들은 양반. 양반들은 백화점에 가서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리고 뺨을 때립니다. 노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지요. 생계가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신분제의 권위가 사람들을 묶었다면, 이제는 돈이, 생계가 사람들의 목줄을 쥐고 위협합니다. 5공 시절에는 3S정책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려 정치에게 멀어지게 만들었지요. 야구단을 창단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겨 자신들이 편히 정치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것을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평균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인터넷의 발달로 더 이상 그런 정책은 통하지 않게 되었지요. 그래서 기득권을 쥔 사람들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고, 임금을 적게 풀고 또 건물과 땅값을 높였습니다. 강남의 한 미용실을 예로 들어보지요.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직원의 월급은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올랐고 건물 임대료는 2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건물시세는 10억에서 70억으로 올랐습니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어 집을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노동력을 열심히 쥐어짜 일해봤자 태반이 임대료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결국은 건물주들의 배만 불립니다. 암담한 현실에 사람들은 포기를 하기 시작하지요. 육아, 출산, 더 나아가 연애, 구직까지…….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즉흥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지요. 미래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봤자 답답하고 속만 상하지 답이 나오지 않거든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사람들이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합리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말해서 튀고 싶지 않고 자기만 손해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하는 이유도 한 몫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예전에 비해 거대해지고 구조도 복잡해졌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뛰어난 인물 한 명이 나서서 나라를 바꾸겠다면 가능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훌륭한 대통령이 나서서 나라를 바꾸겠다고 해도 거대해진 구조를 혼자서 바꾸기는 힘들죠. 노무현 대통령이 그 예시일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시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이렇게 말했죠.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몇 년 후에 잘 살고 잘 먹는 것을 보면 국민들이 무엇을 배울까요? 또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자정작용을 잃고 계속 부패해가는 사회의 말로는 수도 없이 보아왔습니다. 현재진형형으로는 그리스가 있지요. 그리스 위기의 진원은 작은 봉투를 뜻하는 ‘파켈라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탁이나 청탁을 하면서 돈봉투를 청탁하는 것은 그리스에선 고착화된 관행입니다. 수술을 받는 환자는 의사에게 돈봉투를 찔러줘야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고 몇백 유로가 든 파켈라키를 내밀면 시험 없이 운전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특히 부패가 심한 곳은 세무관서로, 세수의 30%이상이 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부패가 문제인줄은 누구나 알지만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최고위층부터 말단까지 파켈라키 문화가 워낙 만연해 있는 탓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국제 투명성 기구가 조사한 부패인식 지수조사에서 그리스는 71위로 EU국가중 부패가 가장 심한 나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가 좀 더 정의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이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정의는 곧 올바른 도리를 뜻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그 중 하나겠지요. 조현아의 집행유예 선고사태는 그저 작은 판결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에게는 민주주의의 퇴보로 다가오는군요. 사회에서 정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계속된 침묵은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법원이야기 : 살림지식총서 390, 오호택, 2011.3.7. (주)살림출판사,
출처 | 제가 직접 쓴 글입니다. 법원이야기 : 살림지식총서 390, 오호택, 2011.3.7. (주)살림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