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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도적님과 카메라, 그리고 사진
게시물ID : deca_421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니콜라스명
추천 : 6
조회수 : 53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5/22 23: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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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난민선 표류 어언 열하루, 이 글을 닻 대신 내려 정박해 볼까 합니다.
사게에 올려야 하나 카게에 올려야 하나, 아니면 자게에? 삼박사일을 고민하다, 여기에 올리는 것으로 결론을...

저는 도적님들과 인연이 좀 있는 편인데요.
아주 어렸을 적엔 집앞에 흘리고 가신 '덩'의 기억부터 시작하여...
 
대학 입학 초년 시절이었죠.
선배들이 주는 소주를 몇 컵 들이키고 동아리방 바닥에 쓰러져 밤을 지낸 후,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지 않고 한 최초의 외박에 '아 X됐다"하는 불안한 맘을 부여 잡고 집에 들어섰는데...
그 밤에 집에 도둑님이 드셔서 정신 없는 통에 조용히 묻혀 지나가, 지금까지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다는 전설로 이어지니 말이지요.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어느 날 들고 오신 저희 가문 최초의 SLR.
삼성 미놀타 XD-5 였던가... 모델은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이것으로 사진의 첫 맛을 본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이 또한 도적님들의 손에 넘어가고...
 
그 후론 그 전부터 있었던, 이모부가 사우디에서 오시는 길에 가져오신 롤라이 35S로 시름을 달래곤 했죠.
사실 이 때까지는 사진이 뭔지 알지 못하던 시기였고, 어렸을 때부터 워낙 기계를 좋아했던 저에게는 그저 하나의 재미있는 기계로 보였었죠.
롤라이로는 충족되지 않는 SLR에 대한 목마름이 그 정도를 더해갈 즈음,
대학 시절 선배 집 장롱 속에 모셔져 있던, 그 당시에도 골동품에 가까웠던 펜탁스 스포트매틱을 접수하여 본격적으로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죠.
나중엔 신혼여행까지 함께 했었고요.
렌즈는 수퍼타쿠마 50mm f1.4가 달려 있었죠.
선배네 장롱 속엔 200mm도 있었는데 주머니 사정으로 몇 번 맛만 보고 반납 했었네요.
당시에 약간 노란 빛으로 나온 사진들을 보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당시 렌즈 성능 향상을 위해 방사성 물질을 첨가 한 결과 세월이 흐른 후 황변이 온 것 이라더군요... 흑흑
방사능의 양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여 버리지는 않고 지금은 창고 깊숙히 모셔져 있답니다.
한 때는 루페 대신 쓰기도 했었죠...ㅋㅋㅋ
스포트매틱은 그 후 고장나서 호기심 충족의 대상이 되어 준 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답니다.
 
그러다 취직을 하게 되고, 더 좋은 카메라에 눈이 가게 되고...
결국 사진하는 후배와 함께 샵에 가서 덜컥 들고 온 것이 마미야 645수퍼...ㄷㄷㄷ
중형 카메라에서 필름 자동 감기가 되는 초기 모델이었죠. 물론 중고였고요.
80mm와 150mm 렌즈 두 개를 가지고 그래도 약간 본격적으로 사진 생활을 하게 되었었죠.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다 보니 이 놈 가지고 아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마눌님을 압박하고 압박하여 처음으로 손에 넣게 되었던 신품 카메라.
캐논 EOS5... 5D가 아님.
당시 캐논의 획기적인 신기술 - 시선추적 자동초점 기능이 최초로 적용되었던 그 넘.
그런데 이 놈과 얼마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던 어느 날...
장모님이 다치셨다는 급보를 받고 가족 모두 황급히 외출을 하게 되는데...
당시 2층 집, 베란다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 한 것이 화근이었죠.
저녁 8씨 쯤으로 기억하는데, 집으로 돌아와 열쇠로 문을 여는데...
한 번에 열리지를 않는 겁니다. 반대 쪽으로, 다시 반대 쪽으로 돌리니 그 때서야 문이 열리는데...
뭔가 어색하면서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 지는 느낌... 이런 경험 있으신 분은 아실 겁니다.
처음 돌린 방향이 여는 방향이 맞는데 뭔가 돌아가는 느낌이 없자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려 잠궜던 겁니다.
문이 안 열리자 재차 여는 방향으로 돌렸던 거였구요.
문을 열자 서늘한 그 느낌이 현실이 되는데...
 
집안이 난장판이더군요.
분실물 목록은 대략, 결혼 패물 조금, 포장 뜯지 않은 새 옷들, 회사에서 명절 선물로 받은 샴푸, 린스 및...
재수생 때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어머니 졸라 산 전자기타... 검정 하드케이스에 담긴, 그 당시 적지 않은 금액을 주고 샀던, 추억이 담긴 그 것. 어머니의 선물.
아버지껜 비밀...ㅎㅎ "원래 있던 거에요" "그래?"
제 자신이 부모 입장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참 관대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알고도 속아 주셨을 아버지도요.
어머니,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두둥... 카메라 가방!
 
신고 후 방문했던 경찰분께서 위로차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저도 사진을 하는데, 전에 불이나서 홀랑 태워 먹었었죠, 구입가로 하면 한 400 되려나..."
그런 사연을 가진 경찰분이 오시다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요...?
"도난 접수는 하겠지만 다시 찾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겁니다."
 
다시 열면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 며칠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열어 보았던 정리함 문.
증발해 버린 것은 아니니, 이 하늘 아래 어딘 가에 있을 그 넘들이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
퇴근 후면 해지고 어두운 아파트 구것구석을 헤매었던 것이 며칠 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가방이라도 버리지 않았을까...?
 
금전적인 가치를 떠나서 소중한 추억을 함께 한 손때 묻은 물건을 잃어 버렸을 때의 상심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눌님을 조르고 졸라 다시 장만한 젠자브로니카 ETR-S, 캐논 EOS1-HS. 전투형 중 전투형...ㅎㅎ
그 후론 아이들 양육에 씨름하느라 EOS1만 주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주로 아이들 사진이겠죠.
 
이 당시 급격한 기술의 진보, 사회 변화까지 가져온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저 역시 디카에 대한 목마름이 시작되는데...
우선은 똑딱이로... 그것도 어렵게 장만한 루믹스 LX-2...던가
한창 해외 출장 많이 다니던 시절 항상 함께 했던 정든 넘이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장농을 지키고 있네요.
 
LX를 장농으로 몰아 넣은 장본인은 현재까지 사용 중인 펜탁스 K-7이네요.
이 넘을 장만하느라 브로니카와 EOS1을 처분하게 되었고, 사실 이 때문에 스르륵과 인연을 만들게 되었었지요.
그리고 지금 이 자리까지도요.
 
그러고보니 저는 신품으로 산 것이 EOS5 하고 LX 밖에 없네요.
저는 왠지 중고에 더 정이 가는데요, 전 주인님의 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그럴까요?
 
K-7은 그 만듬새에 반해서 매복매복하다가 장터가가 상당히 떨어진 후에, 그러니까 K-5가 나온 후에 장만하였고, 아직까지 불만 없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 있습니다...ㅎㅎㅎ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그 때의 마미야와 EOS5가 누군가의 장농 속에, 혹은 어느 상점 진열대에, 어딘가 같은 하늘 아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잃어버린 카메라에 대한 아쉬움이 이 정도인데,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아, 생각만 해도 아픕니다.
 
세월호를 잊지 맙시다!!!

기승전...삼천포네요.
이상, 안산 서식 후보 징어 였습니다.

P.S. 무단 상륙은 안된다, 조공이 필요하다 하여 부끄럽지만 조금 올려 봅니다.
이 기회에 필름 사진들도 스캔하여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올려볼까 합니다.
 
근데 방문횟수는 하루에 하나만 올라가나요?
 
1. 집 근처 공원에 피어 있던 예쁜 꽃
크기변환_IMGP0999-1.jpg
 
2. 집 앞 그 건너편 공원의 어느 가을날
크기변환_IMGP7272-1.jpg
 
3. 2.와 같은 공원의 이름 모를 열매
크기변환_IMGP8015-1.jpg
 
4. 그 바로 옆 나무에 핀 꽃
크기변환_IMGP9637-1.jpg
 
5. 퇴근 길, 잠시 올라본 전망대에서의 일몰
크기변환_IMGP1597-1.jpg
 
6. 이리저리 모음...
Thumbnail_17.jpg

출처 출처는 내 USB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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