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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2007.05.16 作)
게시물ID : freeboard_8651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리고오늘
추천 : 0
조회수 : 1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22 19: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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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작은 운동장이다.

한쪽 구석에 철봉이나 시소, 구름다리 등 낯익은 시설물들과 지금껏 보지 못한 특이한 시설물들도 함께 설치돼 있다.

"뛰어"

"?"

"뛰어"

"왜요?"

"뛰어"

뛰란다.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에 보이던 여러 가지 시설물들을 지나친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다.

"이제 됐어요?"

"뛰어"

기곈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지만 몸은 그 명령에 반응하고 있다. 또 다시 그 시설물들을 지나간다. 이번엔 생김새 등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한 바퀴를 또 돌았다. 멈추려는 찰나 동일한 말이 들린다.

"뛰어"

그래.. 뛰자. 이제 한 바퀴를 돌건 두 바퀴를 돌건 중간에 멈출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뛰고 있다. 초반에는 흥미가 가던 여러 시설물들도 이제 내 시야에서 벗어난다. 한참을 돌다 보니 출입구가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기로 나가버릴까?'

혼잣말로 중얼거리지만 이내 단념한다. 밖에 무서운 괴물이라도 있으면 어떡할려고.. 좀 지겹긴 하지만 안전하게 운동장을 계속 뛰기로 이내 결정해버린다. 이제 머리 속은 텅 비어가고 있다. 잡생각도 들지 않는다. 뛰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누군지, 왜 그러는지도 이제 궁금하지 않다. 그냥 뛰고 있으니까 계속 뛰는 거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는지 셀 수는 없지만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백만 바퀴는 돈 것 같다. '뛰어'라는 명령을 내리던 사람을 지나가려던 찰나

"이제 됐어"

라는 말을 듣는다.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니 머리가 어지럽다. 다리도 풀린다. 눈 앞이 캄캄하다. 하늘을 보고 땅바닥에 누워버린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하늘을 본다. 점점 호흡이 정리가 되면서 안정이 돼간다. 다리 피로도 조금 풀린 것 같다.

"잘 달렸다. 이제 너 하고 싶은 걸 해"

"정말요?"

해방감이 든다. 자유란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근데하고 싶은게 뭐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떠오르지가 않는다. 예전엔 뭘 하고 싶었는지도 생각해 본다. 어렴풋하게는 생각나지만 구체적으로 뭐였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저 사람들은 뭐지?"

출입구 쪽에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있다. 구경거리라도 있는 건가? 그 사람들 쪽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가 본다. 군중들이 있는 곳까지 거의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총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천천히 뛰어가는 것이 보인다. 나도 같이 뛴다.

"왜 뛰는 거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뛰고 있으니까 같이 뛰어본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앞선 사람들도 따라 잡아 보려고 용을 써 본다. 한 두명 제꼈다.

'아싸-'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만 뿌듯해 하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하지만 가장 선두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선두그룹에 들어 가는 것은 일찌감치 그른 것 같다. 한참을 뛰다 보니 또 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내가 왜 뛰는 거지?'

역시 이유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무서워 보이는 사람이 시키길래 뛰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뛰길래 같이 뛰고 있다.

'멈춰서 다른걸 할까?'

주위를 둘러 본다. 아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지리도 낯설다.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 두 다리 이외에 다른 교통수단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사람들이 워낙 열심히 뛰고 있어서 물어보지도 못 하겠다. 민망하다. 그래서 결국 멈추지 못한다. 골목길과 큰 길들을 지나친다. 그 곳으로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사람들이 뛰고 있는 방향대로 뛰고 있다. 멈추지 못한다. 옆길로 새지도 못한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뛰었던 거리가 너무 아깝다. 근데 다리가 아프다. 숨도 차고 눈꺼풀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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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썼던 글이 문득 생각나서 올려 봅니다.

저는 의무교육을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까지 진학했는데, 미래를 고민하면서 저의 인생을 진행시키기 보다는 그냥 '정해진 길'에 따라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대학원에 진학할 때 쯤 대학원 진학이 과연 관성에 의한 것인지 정말 제가 하고싶어서 하는 것인이 고민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결국 대학원에 진학은 했었는데, 저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입학한지 1년만에 대학원에서 뛰쳐나와서 다른 살 길을 찾았습니다(지금은 예전에 했던 대학원 1년이 아쉬워서 다시 대학원에 들어와서 졸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고민하시는 분들은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하셔서, 다른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하는 일 말고,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내 싸이월드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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