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모자란 중학생이구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86년째를 맞이하는 한글날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집니다. (이 글을 제 친구가 쓴 글로 제 생각과 수정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언어학과 매콜리 교수는 20년 동안 해마다 10월 9일이면, 학생들과 교수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열어왔다고 합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가 만들어진 날인 한글날은 마땅히
"인류가 축하해야 할 우리들의 공휴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요.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에서는 문맹퇴치에 공헌한 국가나 단체에 주는 상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King Se-Jong Prize" 즉 세종대왕상입니다. 그 상의 이름도 이색적이지만 그 상의 첫번째 수상국이 바로 한국이었는데, 그 이유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세종대왕께서 처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문맹율이 낮은 나라 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 언어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언제 누가 어떤 의도로 그 문자를 만들었는지가 분명하고 또 유일한, 그리고 아주 과학적인 글이라고 언어학자들은 감탄을 합니다. "대지"의 저자인 펄벅 여사 같은 이는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은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라고 찬탄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한글창제 당시의 기록들을 잘 살펴보면 조금 이상한 구절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세종 재위시 기록에 나타나는 이 구절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전 조선시대(고조선)에 있었던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 (세종실록 103권 ; 세종 23년에 발표한 것) (2).....이 달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을 모방한 것이다... - (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 (3).....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옵서 정음 스물 여덟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서 보이시면서 이름지어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하되글자는 옛날의 전자를 본따고..... - (정인지(해례서문:훈민정음 제작원리 등을 설명한 책으로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 (4).....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반대상소) 일본의 신대문자를 살표볼까요? 『일본의 신사에 가 보면, 신도 경전이나 신사에서 나눠주는 부적에, 그리고 어떤 신사에서는 아예 신사 간판에 한글과 비슷한 글자가 적혀 있다.(물론 우리처럼 자음 + 모음 + 받침 ― '검'을 ㄱ + ㅓ + ㅁ 으로 적는 것처럼 ― 으로 글자를 적지 않고 자음 따로, 모음 따로 적는다./* 예 : '가'를 ㄱ ㅏ 로./ 그리고 받침을 쓰는 일이 없다) 신관이나 궁사에게 글자의 뜻을 물어보면 "글자의 뜻을 알 수 없다."고 대답한다. 글자는 가나로 된 글과 같은 소리가 나지만 ('가'를 ㄱ ㅏ 라 적고 가나로는 'が'라고 쓰며 '가'라고 읽는다) 가나를 보지 않고서는 어떻게 읽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부적에 쓰는 글자나 간판에 적힌 글도 마찬가지. 모습은 한글과 닮았는데 뜻이나 읽는 방법은 잘 모르고 있다.』 실제로 바로 위에서 본 일본땅에 있는 유물들을 증거로 일본의 국학자들은 "한글이 일본의 신대문자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한단고기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자, 바로 그런 주장을 펴던 일본학자도 드디어 "일본신대 문자의 원형인 원시한글이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는 계속해서 "이 고대문자는 불과 38자 뿐이지만 귀중한 신대문자 자료이다. 나의 연구에 의하면, 이 원시한글이 만들어진 연대는, 신시개천 1715년(기원전 2181년)에 해당한다. 이것은 실로 아득한 초고대인 것이다. 진실로 본서는(한단고기를 말함) 거듭된 분서에 의해 잃어버린 한민족과 일본인의 뿌리를 가리키는 아시아의 지극한 보물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단고기-단군세기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가 있다해도 열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 사람들의 역사왜곡 경향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인 "한반도로부터의 고대 문화전수"를 부인해 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일본사람 그것도 언어학자가 신대문자의 뿌리가 바로 단군조선시대의 원시한글인 가림토 문자라고 "눈물을 머금으며"(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러나 학자적인 양심이 있었기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연구결과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96년 10월 9일 한글날 조선일보의 보도)를 인용한다면 "요즘 학계에서는 한글을 세종 혼자서 친제 했는지, 신하들과 공동 창작했는지 논쟁이 한창"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학계에서는 한단고기를 위서(믿을 수 없는 조작된 책이라는 뜻)라며 옆으로 밀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한단고기가 위서인지 아닌지를 굳이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글의 포인트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종께서(혹은 신하들과)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창제 했다."라고 굳게 믿으시는 분들은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기 735년 전에 쓰여진 고대일본의 한글-신대문자는 그렇다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밝힐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종실록을 비롯한 많은 기록상의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옛문자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대목들을 해명해야 할것입니다. 만일 신대문자의 뿌리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가 아니라면, 한글의 원조는 일본문자인 셈이 됩니다. 한국사람이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문자를 만들 정도로 실재햤던 시대였고, 훈민정음의원형이 가림토 문자라는것, 그리고 한단고기의 정확성(가림토 문자에 관한 한)을 인정하기 싫어서, 우리 한글의 뿌리를 엉뚱하게 일본문자로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또한 가림토문자의 흔적은 일본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만적으로 중국문면이라고 알려져 있응 은나라의 은허 유적지에서 발견된 소의 어께뼈에는 한글이 선명하게 쓰여 있습니다. 은나라는 물론 세종 창제 3천년전인 기원전 1500년~1100년 사이에 있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글의 뿌리가 중국어일까요? 은나라는 바로 단군조선의 중기 무렵에 고대 한국인인 동이족이 세우고 다스렸던 나라입니다. "중국의 상상고사는 모두 동이족의 역사"라는 것이 북경대 고고학과 엄문명 주임교수의 결론이지요.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가 아니라면 이번에도 "한글 창제 3천년 전 은나라에 이미 있었던 한글"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를 살펴 볼까요? 지금도 인도의 남방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이 문자는 우리의 한글과 아주 흡사한데,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도 10자(ㄴ,ㄷ,ㅌ,ㅇ,ㅁ,ㅈ,ㅂ, ㅗ,ㅔ,ㅣ등)나 같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나와있습니다. 또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은 한글과 너무나 흡사하고 (꺼커거...,쪄쳐져...,떠텨더...,뻐펴버...,셔허) 우리 한글처럼 "ㄱ"에서 시작해 "ㅎ"으로 끝납니다. 구자라트주의 시내에 있는 간판들은 한국인이면 지금도 60~70%정도는 읽을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요? 영어와의 관계-한편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영어의 알파벳 자모도 여러 개 보입니다. 가림토 문자는 4177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반해, 알파벳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3000년을 넙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혹 알파벳도 가림토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요? 앞으로 세대들의 연구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렇듯 일본, 중국뿐 아니라 인도, 몽고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다고 알려져 있는 나라들에는 지금도 풍부하게 가림토 문자의 흔적은 남아있답니다. 물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서기 1443년) 이전인 고대로부터 사용되어오던 문자이지요. 단군조선 시대와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이 모든 미스테리가 풀리며, 우리 역사 속 깊이 숨겨져 ㅇㅆ던 신비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우리의 세종께서는 단군시대 때부터 이미 사용해 오던 언문을 새로이 틀을 짜고, 실용성 있게 문자체제를 확립해 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종대왕은 한글을 처음으로 창제한 것이 아니라, 가림토 문자를 참고로 한글을 쓰기 편하게 제창조하였고, 지금까지 널리 쓰이게 하셨지요. 물론 그것만 해도 너무나 큰 업적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종대왕은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 전인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 문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가림토 문자를 활용하여 재창제 되었다는 진실을 왜 당당하게 밝히지 못 했을까요?
첫째는 역성혁명과 골육상쟁을 거치며 건국된 이씨 조선왕조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의 발달은 몇 가지의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성간의 사랑수준에서 효-충-도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해간다고 하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가 속해있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지극한 효자였으며, 또 어질고 현명한 임금이었으므로 "효"에서 "충"의 의식수준까지는 도달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충"은 된"이씨 조선왕조에 제한된 충"이었습니다. 만약 한민족 전체를 생각하는 진충이었다면,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단군조선과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밝혔겠지요
둘째는 세종에 대한 신하들의 과잉충성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이던 그런 신하들은 있게 마련이지요. 덕분에 세종임금은 그렇게 과학적이고 우수한 한글까지 창제한 유사 이래의 성군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중국 눈치보기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조 초기는 이미 중국(명)의 눈치를 보던 정신적 속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도 명나라 황제의 뽑기(ㅜㅜ)로 결정되었고, 새 임금이 등극하거나 세자의 임명 등도 명나라에 보고를 했어야 했지요.("대변설","도징기","삼성밀기","옥추경","조대기","지공기","천부경","통천록","표훈천사"등 한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기록하고 있는 책들은 이씨조선의 금서로 지정되어 마음대로 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공자를 사모하던 유학자들이 우글거리던 이 조선시대에, 중국에게 문화,문명을 전수해 주었던 단군조선의 역사를 전달하기는 아마 몹시 힘들었을 것입니다.(실제로 훈민정음 재창제 이후 세종대왕 재위시 전국에 집서령이 내려져 수거된 책들이 불태워 졌고, 그 과정에서 가림토 문자와 관련된 책들이 소멸되어 훈민정음의 뿌리는 알 수 없게 되었지요.)
가림토 문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재창재하기 3600여년 전, 지금부터 4178년 전인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에 삼랑 을보륵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의 원형문자이다. ***참고서적 - 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정연종)*** 흠.. 이 글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을 무조건 나쁜사람으로 몰 순 없겠지요. 어쨌든 그 당시에는 한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단군이 만든 한글을 계승하고자 노력하셨고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글을 사용 할 수 있었던 것이고,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십만원 권이 나온다면 '단군'을 넣으면 어떨까 하는 '모자란(OTL...)' 생각이 있네요.; 오늘 한글날을 맞아 새로운 사실과 함께 다시한번 우리조국과 우리의 말이 있음에 기쁩니다.
가림토 문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재창재하기 3600여년 전, 지금부터 4178년 전인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에 삼랑 을보륵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의 원형문자이며, 이를 다듬어 계승한 것은 조선왕조 4대왕 세종대왕이요, 곧 1446년의 '훈민정음'이다. ^^ 지금까지 대한의힘★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