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팀 감독 지휘봉을 잡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죠. 그러나 누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젊은 감독이 나설 수 없고 제가 맡게 됐는데 여러모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습니다. 대표 팀에 대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한국 남자 배구는 앞으로 아시아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지난 겨울과 초 봄 한국 배구 코트는 뜨거웠다. 남자부에서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명승부를 펼쳤고 여자부에서는 이재영(흥국생명) 김희진(IBK기업은행) 등 올림픽 스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남자 배구의 경우, 국내를 벗어나면 매우 초라해진다.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남자 배구 대표 팀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한동안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던 한국은 어느새 아시아에서도 이란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밀리는 처지에 몰렸다.
남자 배구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구원 투수로 나선 이는 김호철(62) 감독이다. 선수 시절, 프로 배구 최고 리그인 이탈리아 리그를 호령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의 전성기를 이끈 컴퓨터 세터 김호철(62)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2014~2015 시즌 현대캐피탈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코트를 떠났다. 배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기 생활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다시 코트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짊어지고 가야할 한국 남자 배구의 부활을 위해서였다.
올해 한국 남자 배구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써미트호텔에서 열린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2그룹 서울 시리즈 감독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김 감독을 비롯해 미구엘 앙헬 체코 감독, 삼멜부오 투오마스 핀란드 감독 코박 슬로바단 슬로베니아 감독도 참여했다.
기자 회견을 마친 김 감독은 취재진을 만나 한국 남자 배구의 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프로가 출범한 뒤 대표 팀은 명예직 혹은 의무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과거 국가 대표의 명예를 위해 뛰었던 풍토는 바뀌었다. 프로 선수가 된 선수들은 재산인 자신의 몸을 위해 대표 팀에 출전하는 것을 꺼렸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탓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변했으니까 선수들은 몸값을 높이기 위해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러다보니 대표 팀에 소홀해지고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은 그저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대표 팀에 대한 제도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 팀에 발탁된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주고 이들이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개선이 절실하다.
그러나 대한배구협회는 오랫동안 망망대해를 헤메고 있다. 협회는 여전히 갈등 속에 '힘싸움'에 집중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한국 배구 발전은 아직도 뒷전에 있다.
김 감독은 "지금 협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월드리그에서 승리하면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할 예정"이라며 "서울 시리즈에서 만나는 체코, 핀란드, 슬로베니아는 모두 이기기 어려운 팀이다. 그러나 혼 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선수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취재진과의 대화 말미에서 김 감독은 한국 남자 배구에 경고가 담긴 충고도 남겼다. 그는 "대표 팀 지휘봉을 잡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 팀에 대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한국 남자 배구는 앞으로 아시아에서도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 http://v.sports.media.daum.net/v/201706011238364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