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 지원부대가 아닌 단독부대로 배치됨
총 부대원이 70명정도였나 그렇고 예하부대까지하면 100명이넘는 이례적으로 사람이 많은 부대임
사람이 많은 만큼 내무생활은 좀 빡셌음
지원부대는 그 부대의 마크라도 달고 전역하지만 나는 부대마크조차 없음
일단 기본적으로 기무사는 군대라는것이 표시되면 안됨
그래서 어느정도 머리도 기르고 외박이나 휴가나갈때도 사복을 입고 나감
모든 부대가 그러지는 않을 수도 있음
암튼 내가배정받은 부대는 예하파견부대가 있기 때문에 다시 대기병 상태가 됨
하지만 사령부때의 대기병이 아님
그곳의 부대원들은 계속 볼 얼굴들이었기 때문에 더 빡셈
잘때아니면 눕지도 못하고 각잡고 있고 자기들 청소할때 불러서 청소시키고
여기는 파라다이스가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차라리 예하부대로 가길 간절히 기도함
초코파이 하나로 종교를 바꾸는 훈련병때보다 더 간절했음
하지만 초코파이를 원한것도 아닌데 신은 나를 버림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병이 됨
키 180임
음.. 솔직히 179.6 임
위병으로선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위병의 TO가 급했고 대기병중엔 제일 컸음
그렇게 신들은 나 버렸고
나도 예수 부처 알라신 공자 간디? 암튼 버릴 수 있는거 다버림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위병으로 뽑힌것이 나에겐 다행이었음
사람이 많은 부대인 만큼 할 것도 많음
아침점호를 받은 후에 바로 청소를 하는데
잔디구장까지 갖춰진 나름 큰 부대라
당연히 막내들은 개고생임
그러나 나는 위병이라 새벽에 근무를 서면 오침을 함
당시의 위병소는 짬이 됐던지라
신도 버린 나를 고참들이 짬으로 주어줌
점호받고 청소안하고 오침한 날이 많았던 거임
거기다 고참의 은혜가 뼛속까지 사무치는 날에는
군대리아 나오는날에 아침도 안먹고 오침하고
일어나면 정성스럽게 포장된 햄버거 두개와
제주도 청정지역에서 아침해가 빛나는 끝이없는 바닷가에서 맑은 공기마시며 자란
젖소들이 갖 짜낸 우유의 맛이 나는 서울 우유가 관물대에 놓여져 있었음
암튼 위병이라는 보직이 막내생활을 하는 나에게 너무나 큰 방패막이었음
하지만 거기까지.. 욕심이 과했는지 나의 군번은 꼬이기 시작함
이얘기는 나중에 하도록하고
위병 근무를 서려면 간부들의 차를 다 외워야 함
우리부대 간부들만해도 100명이 넘는데
거기다 군인아파트가 부대를 통과하는데 있어서
다른 부대의 간부들까지 다 외워야했음
300명인 넘는 간부들의 차종과 차번호와 간부 계급과 이름을 외웠음
나는 차에는 잼병이고 지금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차종자체를 외우는게 힘들었음
목록에 없는 차들도 지나가기 때문에
잡아서 계급이나 이름은 물어보겠지만 차종을 물어보기에는
니의 자존심이 몹시 상하였지만
신이 버린 내가 할수 있는게 없었음
지나가는데 잡는다고 상량한 운전자들의 욕을 먹다보니
그냥 지나가는 차 뒤를 바라보면서 차뒤에 차종 마크가 붙어있길 빌뿐이었음
없으면 같이 근무서는 고참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러 가야했음
간혹 집합이 걸리면 외운걸 물어보는데 대답 못하면 맞선임이 욕먹음
하지만 맞선임은 나에게 크게 뭐라고 안함
나중에 알게 됬지만 선임 근무면 후임이 10분 먼저와서 서고
교대는 10분 늦게 하는 그런 부조리가 있었다함
근데 내 맞선임이 그걸 신고했던거임
덕분에 맞선임은 고문관아닌 고문관이 되버렸고
나는 행복했음
부조리가 계속 있었다면 나는 자살했을 거임
원래는 꼬인 군번이 아닌데 어쩌다보니 상병 5호봉때 맞후임을 받았음
맞선임은 원래 고문관 스타일은 아니었음
그냥 내가 왕림할 것을 대비해 부조리를 척결하려 했을 뿐이고
덕분에 한결 편했음
고참들에게는 눈엣 가시같은 존재였기에
짬대우를 잘 안해줬고 나와 막내생활을 같이하게 했음
그러나 말했듯이 고문관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왕고가 전역한 후에는 맞선임도 다같이 재밌게 놈
여담으로 세상은 넓고도 정말 좁다라는걸 몸소 체험했음
나와 같이 대기병으로 온 동기가 친하진 않았지만
얼굴과 이름정도는 아는 고등학교 동창이었음
같은 위병소 아버지가 고등학교 1년 선배였음
다른 보직 아버지가 대학교 같은과 1년 선배였고
나중에 내 두달 후임으로 들어온 이가 있었는데
짬 안될때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일병달고 어쩌다 얘기가 나왔는데 동창이었음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이놈과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음
그러나 거기서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게 됨
사람들 없을때는 말놓으라고 한거였음
이자식이 고참이 시키는데 말 드럽게 안들음
나의 부대는 내무실 바로 밑에 PX가 있었고 거기에는
티비와 당구대가 있었음
티비는 상병부터였고 당구는 상병 5호봉부터였음
신이 버린 나는 고참들의 은총을 입고 있었으므로
내 의지로 할 수는 없었지만 티비며 당구며 이등병때부터 했음
다른 보직들은 일과시간이 딱정해져 있었지만
위병은 근무가 없으면 쉬는 시간이 었기에
낮에 아무도 없을때 고참들이 대리고가서 같이 티비도 보고
당구도 어느정도 칠줄 알았기에 당구도 침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당구는 절대 져주면 안됨
져주는건 축구에서나 통하는 거임
당구는 1:1로 각자의 기량과 솜씨를 뽑내는 스포츠로써
단전에 힘을 주고 정신을 집중하여 과학적으로 미래를 예측해야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함
그런데 거기서 계속 져주면 상대방은 싱거움을 느끼고
나의 이등병 당구생활은 거기서 끝나는 거임
오히려 계속 이기고 실력을 업글시켜나가야
고참의 참된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결국에는 당구의 신으로 추앙받아 우러러보게끔 됨
간혹 내 바로 위 고참들이 당구치지 말라고 뭐라했는데
병장급 고참이 시키는데 내가 뭘 어쩌겠음
신의 경지에 이르면 고참들 청소할때 당구를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임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개념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느정도 재미를 위해 각색을 한거고
고참들의 이쁨을 받으면서 군생활 잘했음
어쨌는 나의 군생활은 고참들의 짬덕에 나름 편했으나
다가올 위기를 알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