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년부터 작은 도움을 드리던 단체에서 책을 내시는데, 군의료체계에 대한 글을 써줬으면 하셔서 쓴 글입니다.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 단체의 이름은 '함께' 이며 군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분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입니다.
1.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군의관으로 근무했고, 지금은 두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된 사람입니다. 저는 연구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 지금까지 수 백, 수 천 페이지의 글을 써왔지만, 이렇게 여러 생각이 한 번에 들고, 어떻게 글을 정리해야할지 막막한 글을 지어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제가 여러 아픔과 차디찬 현실의 공기를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또 관계자들만 보는 딱딱한 보고서와 논문만을 쓰다 제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전달해드리는 글을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럽고 어색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1년 전 ‘함께’의 공복순 대표님을 알게 된 장면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저는 군장병의 감염병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몇 일 전 직접 조사하였던 폐렴으로 사망한 장병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기사를 읽던 중 우연히 군 피해자 치유센터를 보게 되었고, 여러 다른 기사를 찾아보며 기대, 후회, 미안함 등의 감정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예방의학전문의입니다. 흔하지는 않은 전공이라 글을 읽으시는 독자 대부분은 잘 모르시리라 생각합니다. 예방의학은 환자를 직접 보지 않는 전공입니다. 저희 전공은 환자 개개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구집단 전체를 바라보며, 자신의 학문을 닦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런 예방의학전문의도 직접 환자를 보는 경우가 드물게 있습니다. 바로 감염병 같은 질병의 유행을 규명하고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역학조사를 할 때입니다. 군에 있는 동안 저는 수많은 역학조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10개월 쯤 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저는 군복무 중 폐렴으로 사망한 장병에 대한 역학조사 위해 야전부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망한 장병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떻게 조사를 해볼까 여러 궁리를 하다 직접 장병의 생활관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생환관의 병사들은 대위 계급장과 전투복을 입고 있지만, 군인처럼 보이지 않는 저를 보고 주춤거리며 경례를 했고, 저는 병사들에게 ‘혹시 여기 OOO의 자리가 어딘가요?’라고 질문을 했고, 병사들은 한 관물대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폭은 5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한 관물대는 여느 것과 다를 것 없었지만, 이미 그 자리 주인의 물건은 사라져있었습니다. 평범한 자리의 주인도 이미 세상에는 없었지요. 옆자리를 쓰던 병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OOO어땠어요?’ ‘참 좋은 자식이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더 이상 대답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처음 보는 타부대 간부였으니까요. 이미 조사는 몇 번이고도 받았을테니까요.
그 장병은 아직도 군에 유행하고 있는 아데노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이후 몇일 동안을 부대 근처에 머무르며, 조사하고 공부했습니다. 왜 ‘참 좋은 자식’은 군에서 폐렴에 걸려 죽게 되었을까? 그 해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역학조사를 하면서 드는 느낌은 공복순 대표님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와 같았을 겁니다. 장병의 감염병을 조사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써의 미안함, 아쉬움 그리고 이번 조사를 잘 끝내고 나면 같은 일을 막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연구를 하면 더 할수록 큰 벽이 느껴졌습니다. 어찌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장병의 죽음이었지만, 하나의 결과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요소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쓰고자하는 글은 왜 그 ‘참 좋은 자식’이 군에서 폐렴으로 죽었는가? 에 대한 제 대답이며, 오늘날 군에서 여러 질병으로 사망하는 장병에 대한 예방의학자로서 미안함의 표시입니다. 제 작은 글을 얼마나 많은 분이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장병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병사들은 얼마나 군에서 병으로 죽어가는가?
제가 36개월 군 생활에서 가장 황당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몇몇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한 부서에서 부서장이 바뀐 후 탈모환자가 급격히 늘어난다면 역학조사를 부탁받았던 것도 그 중 하나였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군 장병의 질병사망에 대한 통계를 찾아본 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군에는 질병으로 사망한 장병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은 2000년대 이후 사망사고에 대한 통계를 제공합니다. 통계청 홈페이지에서 조회할 수 있지요. 그런데 사망사고는 자살과 같은 인사사고와 안전사고만을 의미합니다. 즉 군에서 자살하거나, 교통사고가 났거나, 총기사고가 나서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는 통계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질병으로 죽은 사람의 통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소 몇 명의 장병이 질병으로 사망했는지? 무슨 질병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통계는 상식적으로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그런 자료는 없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사망에 대한 조사나 보고서는 어느 문서고나, 누군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겨있겠지요. 그런데 전체 사망자에 대한 자료는 누구도 만들어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년 사고를 제외한 순수하게 군복무 때문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의한 사망자가 최소 4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저는 매년 2~3명의 아데노 바이러스 폐렴 사망자를 조사했었고, 매년 1명의 유행성 출혈열 사망자를 조사했으니, 다른 호산구성 폐렴 등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매년 5명의 젊은 청년이 군복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병으로 죽은 것입니다. 생각보다 적으신가요? 이것은 군복무가 100%원인이 되는 경우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만약 이야기를 바꿔서 만약 아플 때 군에 있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장병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그 수는 늘어날 것입니다. 앞에서 읽으셨던 여러 이야기에서 충분히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2015년 저는 경제학과 교수님과 함께 젊은 20대 장병이 한 명 죽었을 때 사회가 받는 경제적 손실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추정해 본적이 있습니다. 20대 병사 1명의 죽음은 약 15억 원 정도의 국가적 손해로 다가옵니다. 매년 군에서 발생하는 사고로 사망하는 130여명과 군에서 얻은 병이나 병을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장병을 더하면 매년 수천억 원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 가족의 아픔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손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3. 병사들은 무슨 질병에 많이 걸리는가?
장병의 사망에 대한 통계는 정확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장병이 무슨 질병에 많이 걸리는가에 대한 통계도 없지 않을까 걱정되실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장병의 질병 자체에 대한 통계는 존재합니다.
병사들의 질병을 간단하게 구별해서 설명드리면, 허리 · 무릎 ·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이 전체 환자 중 절반정도를 차지하며, 나머지 질병 중 절반 정도는 발열을 동반한 감기나 폐렴과 같은 질환을 앓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질병을 우리나라 민간인 20대와 비교하면, 근골격계 질환과 발열성 질환은 훨씬 많은 편이고, 나머지 질환은 오히려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서 적은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입니다. 군인 장병은 일단 여러 번의 신체검사를 통해서 건강하다고 확인이 된 사람이니까요. 신체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군인이 될 수 없으니 군복무를 통해 얻는 질병을 제외한 나머지 질병은 군 복무를 하지 않는 20대보다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근골격계질환은 몸을 많이 쓰고, 무거운 것을 들거나, 오랫동안 뛰거나 걸어야하는 장병이 많을 수 밖에 없고, 발열성질환은 생활관이라는 단체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군대의 특성이 크게 작용합니다.
군병원도 이런 질환을 진료하는데 특화되어있습니다. 특히 정형외과와 내과 전문의는 군에서도 매우 바쁜 편입니다.
4. 병사들은 왜 아픈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저는 군장병의 질환을 군복무를 해서 걸리는 질환과 군 복무를 하지 않았어도 걸렸을 질환으로 구분지어 설명드리겠습니다. 대표적으로 군복무를 하기 때문에 걸리는 질환으로는 근골격계 통증과 폐렴, 각종 온열 손상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사실 대부분의 이런 종류의 질환들은 예방이 가능합니다. 보통 우리나라 군은 어떠한 분야든 미군의 체계와 교범 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주로 미군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요. 미군과 비교했을 때도 우리나라 장병은 근골격계질환과 폐렴, 온열손상이 많은 편입니다.
먼저 근골격계 질환은 체계적인 훈련, 근력강화, 개인 장비 개선, 기계화, 경량화 등으로 해소가 가능합니다. 미군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미군이나 선진국의 군은 신체 훈련에서부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도입하였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군의 훈련방식과 손상예방에 대한 인식은 2차 대전의 미군보다 못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쓰면 쓸수록 단련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 정신력을 강조하며 실제 장비와 물자 지원은 부족한 현실 등이 크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배낭만 좀 더 편한 것으로 바꿔줘도, 무릎, 팔꿈치 보호대만 제대로 지급해도 근골격계질환은 많이 줄어들겁니다. 감기, 폐렴과 같은 발열성 질환도 비슷합니다. 발열성질환은 대부분 인플루엔자와 아데노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입니다. 이런 질환은 밀집된 생활환경에서 발생하고 유행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몇 조원의 예산을 투자해도 아직도 최전방 가장 추운지역 장병 10만 명은 2차 대전만도 못한 생활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밴드오브브라더스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 미군은 1940년대이지만 개인 침대가 있는 생활관을 씁니다.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군대식의 침상형 생활관(관물대 밑에 모포를 깔고 얼굴을 맞대고 자는 형태)은 침대형 생활관에 비해 수 배~ 수 십배 이상의 폐렴 발생률을 보입니다. 지금은 2017년입니다. 지금 군에오는 장병들은 96~99년생들이겠지요. 이 장병들이 군에 오기 전까지 이런 생활환경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보았을까요? 차라리 과거 어른들처럼 어린 시절에 한방에 여러 명이 자는 경험을 한 세대이면 지금의 폐렴 유행이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다양한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었을 것이니까요. 우리 사회과 경제는 그렇게 발전했는데, 군의 발전은 아직까지도 느립니다. 열사병, 열탈진과 같은 온열손상을 한번 볼까요? 미군사진을 보면 작은 배낭같은 것에 관을 연결에서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신적 있을겁니다. 자신의 몸에 밀착되는 물통입니다. 중동에서 작전하는 미군은 모두 이것을 지니고 다닙니다. 그런데 우리군은 아직도 한국전쟁에 사용하는 수통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무관심합니다. 저도 훈련소에서 제 나이보다 많은 물통을 만나 치약 한통으로 닦아도 닦아도 나오는 찌꺼기에 결국 물먹기를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오히려 의학적으로 여름에 물을 먹지 않았을 때 더 위험한 것은 중동보다 한국입니다. 최소한 중동의 더위는 습한 더위는 아니거든요.
이제 군에 오지 않았어도 걸렸을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암이나 심장질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군에 오지 않았어도 걸려서 죽을 병이면 왜 신경을 써야하는지 많은 분들이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한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군에서 있어보니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의 초기 증상은 감기나 체한 것과 같은 매우 경한 질환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순히 복통이 좀 있거나, 소화가 좀 안되거나 하는 비특이적인 증상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군장병의 질병 특성은 이런 초기 진단기회를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장병은 군생활 중 몇 번씩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납니다. 그런데 장병은 20대 젊은 남자라 조금만 지켜보면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환자를 진료하는 군의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매일 똑같은 열, 복통을 호소하는 수십 명의 장병이 군의관을 방문합니다. 군의관 그 중 혹시 숨어있을 낮은 확률에 대한 고민을 하고 병사를 군병원으로 후송하여 검사를합니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나날이 몇 년 지속되다보면 결국 놓치게 되는 몇 건의 환자가 발생합니다. 20대 건강한 남자가 중한 질병에 걸릴리 없다는 사고 편향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군의관이 근무에 태만했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이라는 특성이 환자와 군의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5. 병사들은 어떻게 치료받는가?
군은 의외로 의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현재 군에는 2천명이 넘는 의사가 복무하고 있으며, 장병 1,000명당 약 3명의 의사가 있는 셈이니, 우리나라 평균인 인구 1,000명당 2.2명보다는 꽤 높은 수의 의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대급 부대의 군의관은 장병의 생활관과 같은 건물에서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간상으로도 의사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육군은 대대급에 군의관 1명이 상주하는 대대의무실, 사단급에 각과 전문의 5~6명이 상주하는 사단의무대, 군단별로 몇 백 병상급의 군병원, 군의 최상위의료기관인 국군수도병원을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훌륭한 단계별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고, 과거와 비교했을 때 매우 많이 발전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장병은 아플 때 진료가기 어렵다. 군병원을 믿을 수 없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군 의료는 발전하였으나 충분한 속도로 발전한 것은 아닙니다.
군병원과 사단의무대는 양적으로는 성장했습니다. CT, MRI도 보급되어있고, 과거에 비해 물자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민간의료의 눈부신 성장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병원은 서울대학교병원과 국군수도통합병원이었습니다. 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의료기관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민간병원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미 경험한 장병이 다시 군병원을 이용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방문한 병원의 병실은 아무리 욕해도 6인실이 었는데, 사단의무대와 군병원에 입원해보니 웬걸 20인실, 30인실이 허다합니다. 바닥은 흙이 묻어있고, 화장실은 부대와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건물은 20~30년 넘은 것들입니다. 단순히 수치상으로 보여지는 군의료의 발전과 실제 장병이 느끼는 군의료의 발전은 괴리가 심할 것입니다.
두 번째 의무복무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이 군의료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병역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조차도 병역의 공정함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국민들은 이미 많은 비리를 보아왔고, 내 친구, 동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근무지를 옮기거나, 편한 보직으로 이동하는 것을 수 없이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장교로 근무한 저조차 인식이 이러한데, 병사들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전방부대에 근무하는 장병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편한 부대에 근무하는 장병에 비해 상당히 낮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환자들이 그러했고, 그들이 느끼는 바가 그렇습니다. 군 복무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군 복무에 대한 의욕은 당연히 낮을 것입니다. 많은 가족과 친구들은 병사에게 군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 다치지 않고 전역할 것을 바랄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 다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병사를 진료해본 모든 군의관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프지 않은데,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진짜 아픈사람이 손해본다.’ 이것이 꾀병을 부리는 장병의 개인적인 일탈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0명 중 1명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일탈이지만, 100명 중 10명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사회적 병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꾀병의 기저에는 공정한 병역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세 번째 실제로 아직까지 병사는 완전한 기본권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장병은 독립적인 인격체로써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국가가 장병을 완전히 성장한 성인이나 시민으로 보고 권리를 보장한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첫 번째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이 있어야합니다.
병사들은 24시간 대기하며, 출입조차 자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는데,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의식주를 해결해주니, 나머지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 사회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외부와의 연락수단이 있어야합니다.
최근 병역을 마치신 분들은 옆의 동료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또 분대장, 부사관 들이 하루 종일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것도 흔히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왜 병사만 핸드폰을 사용하면 안되는건지 의문스럽습니다. 군사 보안을 해치는 것은 해킹은 하는 족족 다 당하면서 댓글만 다는 사이버사령부이고, 합참 작전계획 스크린 옆에서 인증샷을 찍는 간부이지, 병사들이 아닙니다. 이미 인터넷만 검색해도 나오는 부대 위치, 부대 사진 찍는다고 안보에 위협이 되는 건 아닙니다.
세 번째 군에서 안전을 보장받아야합니다.
군에서 무슨 안전이냐 말할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안전은 전시의 안전이 아닙니다. 최소한 나라를 지키라고 모아둔 군대에서 전쟁도 나기 전 선임들에게 구타당해 숨지는 일은 없어야 않겠습니까?
위에서 말씀드린 것들이 장병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위한 기본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은 어느 하나 지켜주는 것이 없습니다.
6. 병사의 권리는 왜 보장받지 못하나?
모든 국민의 인권은 보장받아야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에서 인권을 말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군장병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군인복무기본법안’을 제시한 것이 2006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 법안이 현실화된 것은 꼭 10년이 지난 2015년이었습니다. 2015년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안’이 통과된 것도 그해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국민적 공분이 가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 몇몇 정치인은 군 기강 해이 등을 이유로 군인권법을 반대하였습니다. 군 장병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고 진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불과 2년 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병사의 권리에 이토록 국가가 소홀히 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병사는 20대 초반 남자로 사회경제적으로 약소한 집단입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온 장병은 그 자체로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합니다. 또한 장병은 사회와 단절되어있습니다. 단체활동도 불가능합니다. 즉 군 장병 자체가 현재 자신의 권리를 위해 나설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 국가와 사회가 젊은이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사내자식이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되지’, ‘남들 다가는 군대 왜 못가니’ 이렇게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20대 장병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자,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을 국가가 필요에 의해 빌려가면서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하겠습니까?, 어른들은 자신들이 희생했기에 젊은이들도 희생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은 내 가족, 내 사회가 더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세 번째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주변 나라를 둘러보면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는 병역을 시행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 찾아보기 불가능하고,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민주국가에서도 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충분한 여력이 됩니다. 그리고 여력이 없어도 해주어야합니다.
7. 병사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때까지 글을 읽어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아직도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알아주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을 수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인생의 큰 부분을 희생했고, 심지어 사회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매년 수백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고, 기억해야합니다.
두 번째 이해해 주십시오. 병사들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국가가 시행할 장병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 특히 군의관으로 근무하시 될 후배님들은 단순히 환자의 겉으로 보이는 증상과 검사결과보다 그 환자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요소에 대해 이해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작은 행동을 부탁드립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긴 글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포털사이트 뉴스기사의 작은 댓글하나, 술자리에서 맞장구한번, 끄덕거림 한번이 모아진다면 큰 힘이 되는 것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