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긴 글이 될 것 같다. 그래. 난 그래도 너희들에게 할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아니, 그래도 이젠 니들이 내 선배지. 먼저 간 사람이 선배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냥 나이터울 없이 허심탄회하게 내 이야기를 좀 써보려 한다.
나라는 사람은 꽤 열등감이 강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사정과 함께 집안에 몰아닥친 두번의 재난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뒤로 벌어진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인 사건에 애써 눈을 돌려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해보려 방황했었다.
웃기는건. 그렇게 파고들어가다보니 결국 통찰이라는게 생겨버렸고. 나는 결국 너희들이 이런 큰 사고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방조한 사람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수 없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 긴 글을 어렵게 써본다.
난 그런 상황에서 방황했다. 처음에는 내 작은 공간을 마련해준다던 c세상에서 나의 이야기를 넋두리 삼아 사람들과 교류하길 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넋두리로 남기고 싶어했고. 결국 우리는 좁은 공간 안에서 물방울 하나에 담긴 산소를 흡입하며 연명하는 초라한 한 개인이라는 것을 자각해버렸지. 이후 누구나 동일한 위치에서 누구에게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공간이라 여겼던. 그 몇 안되는 갤러리에서 시작했던 작은 공간이 커지고 사람들이 유입되며 모두가 '동일'하며 '같은 시선'으로 서로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믿은 '착각'속에서 그곳의 변화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이야기들에 지쳐 점차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해가야만 했다.
결국, 이때까지 난 내 갈길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자신이 아는 것만을 이용해 어줍잖은 어른의 행세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후, 촛불을 들기 직전까지만 해도 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지조차 모른채 5월 31일 저녁 11시에 아고라를 통해 세상이 이상하다 여기는 사람들과 초기 그들이 보여줬었던 상호존중의 매력에 내 생각을 점차 풀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나의 생각, 나의 통찰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얻었는지 알게 되었고. 적어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이 맞는것 아니냐 라는 생각에 김밥이나마 싸들고 늦봄의 새벽에 물대포를 맞고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먹였었지. 적어도 난 그 부분에 있어서 너희들에게 일말이나마 변명을 할 수 있는 위치라 자위한 것이 아닐까... 지금와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촛불은 결과적으로 시간을 번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결하질 못했고, 난 이후 그놈의 발언권이라는 것에 광신적으로 미쳐버린 자들에게 횡령범마냥 매도당했다. 물론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히고자 했지만, 결국 유야무야 되버린 감이 있었고. 여론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이를 기억하게 되어버렸지. 그리고 상호 존중의 공간은 집단 광기와 프로파간다의 전투장으로 돌변해버렸고... 나는 다시 방황을 시작했어.
내 자신조차 구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구제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만이 몰아쳤고, 내 개인적인 생의 혹한이 몰아닥치자, 난 결국 타인과의 연결점을 내 스스로 포기하고, 자유의 의미를 알고 있음에도 이를 추구하지 못했던거야.
난 그걸 그제서야 알았고. 08년 그때의 늦봄에 나오지 못한 자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아무것도 변혁하지 못한채 세월을 흘려보내게 된거지. 그리고 이곳에 와서 나의 상처나 나의 고민을 더는 도구로서 이곳을 이용한것에 불과했었다.
너희가 물 속에서 가버린 그날. 난 내 외종사촌을 포항의 불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너희나 내 사촌이나. 가버린 이유는 똑같았어. 결국 너희가 우리대신 룰렛에 당첨되어버린 것 마냥 아까운 삶을 잃어야만 했던거야. 그렇기에 산 사람은 그 룰렛을 멈추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얻은 것이지만. 왜 이리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걸까?
난 지금껏 살면서, 4.19, 5.18 6.27로 인해 삶을 잃거나 생을 살아감에 있어 큰 장애를 얻은 분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짐을 우리가 나눠 들어야만 했던 거라 생각했지. 그런 생각은 08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이제, 다시 난 이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헤매고 있어. 내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위해라는 말을 되뇌이며 잔뜩 겁먹은 나를 다그치고 있었던 08년 초여름의 그때와 지금은 크게 다르진 않을거야.
다만. 이제 난 너희들의 짐을 나눠들고자 한다. 그게 내 속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너희에겐 약간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국가의 존재는 결국 그 구성원인 시민을 지킴으로서 존재의의를 다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렇기에 봉건제의 왕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영주들을 지켰고. 자신을 비호하는 귀족과 명분을 제공하는 성직자들을 보호했지. 이말은 곧 현대 민주국가에선 세금을 내는 모든 시민들에 대해 국가는 그 시민이 엄청난 위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보호해 줘야만 했었다. 보호해줘야만 했었다! 이게 내가 분노하는 첫번째 이유가 될거야.
그리고 그 의미는 넓은 의미로서 '최소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사람답게 사고하고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만 한단다. 물론 너희는 야자도 있고, 공부하기 참 지루하고 짜증났을수도 있지만. 그 과정 역시 이 넓은 의미에 포함되었던거야.
너희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우리나라의 민의를 반영했다 주장한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난에 빠뜨리거나 죽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려 했단다. 한 시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체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기에 구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체제를 영도하는 지도자는 당연히 시민에게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이었어.
어른들이 못한거.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줘야지. 나야 어른 같지도 않은 얼치기지만. 적어도 나보다 더 어른인 인간들에게 난 이제 별볼일 없는 이 머릿속에 있는 궁금증을 말하고 싶어. " 왜 이 사람들을 구해지 못했는가? " / " 그때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 " 왜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가? " / " 왜 제대로된 절차를 거치지 않는것인가? "
수많은 질문들을 해나가겠지. 그리고 그러다보면. 너희들에게 최소한 면목은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난 저번주에 내가 겪었던 외로움에 쌓여 떨고 있던 너희 부모님들과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향해 가려했지만. 08년 내가 그렇게 겪었던 것보다 더, 이젠 그 어디에서도 그 현장을 검색할수 없는 상태가 되었더라. 결국 난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시간을 번 대신 나 말고 너희들을 죽인것과 다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는 죄책감에 이제 다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