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역 대합실 입구. 무릎까지 오는 빨간 점퍼를 입은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자가 핸드벨을 울렸다. 기부를 하는 사람이 냄비에 기부금을 넣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한 커플이 냄비에 기부금을 넣고 나서 자원봉사자에게 "저 옆 사람은 뭐예요?" 물었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에도 빨간 점퍼를 입고 핸드벨을 흔드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 앞에도 빨간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한 손에 든 종을 끊임없이 울리는 것도 구세군과 똑같았다. 모금함 색깔도 빨간색이었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모금함은 냄비가 아니라 플라스틱 상자였고 구세군이 아닌 다른 단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플라스틱 모금함 옆 스피커에선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하는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세군 자선냄비에서 15m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이 70대 남자는 "빨간색이 눈에도 잘 띄고 불우 이웃 성금 모을 때는 원래 빨간색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역 모금 봉사를 한 구세군 자원봉사자 김경호(43)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 옆에 모금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묻는다"며 "바로 옆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핸드벨을 울리며 모금을 하고 있어도 우리가 못 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은 지난해 구세군 모금액 전국 2위를 기록한 곳이다.
연말 불우 이웃 돕기 상징인 구세군이 '구세군 따라 하기 모금'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구세군 측은 "전국에서 자선냄비와 비슷한 모금함이 발견됐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온다"며 "유사한 모금 형태뿐만 아니라 서울역같이 구세군 냄비 바로 옆에서 모금하는 경우도 발견된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한두 건 정도 발견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하루에도 10여 건씩 '짝퉁 구세군' 민원이 접수된다고 한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가짜 구세군 구별법'까지 올라오고 있다. ①냄비 모양이 다르고 ②팻말이나 점퍼에 구세군의 방패 모양 표식이 없고 ③자원봉사자 교대가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세군은 주방용품 전문 기업 휘슬러코리아에서 기증받은 냄비만 사용한다. 냄비에는 양쪽 손잡이가 달려 있고 뚜껑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기부금 넣는 입구에 휘슬러(Fissler)라는 흰색 로고가 그려져 있다. 냄비가 걸려 있는 삼각대 맨 위에 빨간색 방패 모양 표식이 있고 한글로 '구세군'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확인해야 한다. 핸드벨을 든 모금원이 정장풍 검정 옷을 입고 검정 모자를 썼다면 구세군 직원이라 교대를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빨간 점퍼를 입었다면 자원봉사자로 2~4시간에 한 번씩 교대하는 게 일반적이다.
구세군이 '짝퉁 구세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시피 하다. 구세군이 빨간 점퍼와 빨간 모금함에 법적 권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모금함은 행정안전부 허가를 받으면 누구나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냄비의 존재를 알리면 기부 문화가 더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구세군 임효민 홍보부장은 "가짜 자선냄비를 주의해 달라고 이야기하면 시민들이 진짜 자선냄비마저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와 관련된 인식이 좋지 않은 마당에 '짝퉁 구세군' 때문에 기부 문화가 더 위축될까 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1223030311913?rcmd=r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