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남녀평등이란 계약적 관계 아래서 이루어 질 수 있다. 어느 한 성(姓)이 사회적으로 성의 차이에 의해 어떠한 역할을 분담받는다면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 보상을 해 주어야만 한다. 각 성의 역할에 따른 비교는 싸움을 부를 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예전의 일반적인 가정에서 여성은 살림을 하고, 남성은 돈을 벌었다. 이 둘의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여성은 나름대로 살림이 힘들었을 것이고 남성은 나름대로 돈벌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둘을 직접적으로 비교해서 어느것이 더 나으냐는 질문은 분쟁을 불러올 뿐이다. 남성은 여성의 역할의 고됨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공하고, 여성은 남성의 역할의 고됨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공할 때 성차별이란 개념은 사라질 수 있다. 예전의 성차별 의식은 남성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이 여성의 역할보다 우월하다는 직접비교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남성과 여성은 엄연히 성이 다르다. 그 차이에 따라 특기인 분야도 다르기 마련이다. (절대 여성이 살림에 특기란 말은 아님. 본인 남자임에도 살림에 특기..-.-;) 각 성이 하는 일을 직접 비교하기 보다는, 그 역할에 대해 진심으로 수긍하고 반대급부를 제공할 때,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들은 제외)
여기서 본론으로 들어가자. 대한민국의 남여평등 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성의 대표적인 특화된 역할로 출산이 있다. 생리휴가와 출산휴가가 생겼다. 비록 유명무실 하다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다. 여성부가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정착에 진력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법만 만들어 놓고, 법의 정착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다름아니다. 남성의 대표적인 특화된 역할로는 의무복무가 있다. 이들은 그나마 존재하던 반대급부마저 사라졌다. '군가산점'은 방법에 문제가 있어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반대급부'의 한 방법이었다. 그 뿐 아니라, 군인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마저 바닥을 기고 있다.
여성의 성적 역할에 대해 반대급부를 만들면서 남성의 성적 역할에 대해 당연시 한다면, 그것은 제2의 성차별을 낳을 뿐이다.
공무원 시험은 여성할당제가 있다. 시험은 성적순으로 처리된다. 남자라고 하루가 25시간인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하루가 23시간인 것도 아니다. 같은 시간 공부해서, 같은 시험을 치는데 여성은 합격의 최소 인원이 정해져 있다. 이는 남여평등으로 가는 길인가?
사회에서건, 가정에서건 힘든 일은 남자의 몫으로 정해져 있다. 심지어 못을 하나 박더라도, 그것은 남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로 볼 때, 이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성차별이 사라지려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존재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남자라고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저 '오빠 멋져요'라는 한마디에 넘어가 남성들은 오늘도 마당쇠를 자처한다. (설마 '오빠 멋져요'를 반대급부로 생각하는 사람은...)
예전의 대한민국은 성차별이 심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떨까?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하거나, 진출하려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여성에 대해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회적인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남성성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여성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남성은 적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여성들의 '남여평등'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고전적인 '여성성'에 대한 개념은 없는데 고전적인 '남성성'에 대한 역할만 강요받는다면 이는 당연히 '역차별'이란 화두를 만들어 낼 뿐이다. 만약, 여성의 박해에 대한 역사를 들어 남성을 핍박한다면 난 남성을 포기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