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방중 일정을 동행 취재하던 한국 기자와 이들을 지원하던 청와대 공무원들이 중국'인(人)' 경호원들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여론 동향은 의아하다. '맞을 짓을 했겠지'라거나 '경호원이 제지하면 따랐어야지'라며 오히려 중국인 경호원들을 두둔하는 반응이 많다. 언론 자유 이슈에 둔감한 보수층이 아니라, 오히려 평소 진보 성향임을 자처하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서 더 그렇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중국인 경호원의 대응이 명백한 과잉이었음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 행사는 관심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청와대 출입기자 일부에 한해서만 동행 취재의 기회가 주어진다. 동행한 기자들 전원이 모든 행사장에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통상 행사장의 협소함과 경호 문제 등의 이유로 기자단 중 일부만 순번제로 따라가게 된다. 이를 '풀(POOL)' 취재라고 한다. 문제가 된 이번 행사의 경우에는, 통상 '펜 기자'라고 하는 글쓰는 기자 2명, 사진·동영상을 찍는 촬영기자 10명만 풀 기자단에 포함됐다. 당연히, 이들은 한국 청와대로부터 취재 허가를 받고 현장 통행증이라고 할 수 있는 '비표'도 발급받았다.
그런데 비표를 제시하며 행사장에 따라 들어가려는 기자를 중국인 경호원들이 막아서고, 항의하는 기자를 행사장 밖 복도로 끌고 가 집단 폭행한 것이다. 이를 말리려던 청와대 행정관도 밀쳐지거나 넘어지는 등 폭행 피해자가 됐다. 행사장 출입 자체를 막은 것은 한국 청와대가 허용한 취재를 (고용처가 중국 공안이든 코트라이든) 중국인 경호원이 부당하게 막은 것이고, 백 번 양보해 현장 상황이 급변해 갑자기 취재를 막는 게 정당한 상황이었다 한들 밀어내어 막는 것도 아니고 끌고 가 넘어뜨리고 구둣발로 걷어찬 것은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테러리스트나 무술 유단자도 아닌 기자 12명을 경호원 수십 명이 밀어내지 못해 주먹질과 발길질까지 동원해야 했다면, 경호원으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을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맞을 짓 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야말로, 청와대 공무원도 피해자가 됐고, 청와대의 취재 허용 조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분개해야 마땅하다. 대통령 방중 전체에 대한 성과 평가와는 별개로, 이번 일은 명백히 문 대통령 등 한국 방중단이 중국 정부를 몰아세우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이다. "경호원이 기자를 가장한 테러리스트인지 기자인지 어떻게 구분을 하겠느냐. 폭력을 써서라도 일단 막고 보는 게 경호원의 정당방위 아닐까"라는 반응이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에서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국내 여론이 이러니 중국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중국의 사실상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너희 나라 국내 여론도 기자가 잘못했다고 하지 않느냐. 우리나라 경호원들은 잘못한 것 없다'는 요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타국에 대한 결례를, 책 잡히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식이다. 사드 문제 등으로 최근 중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수세 국면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수행 방중단에 대한 명백한 무례가 발생했는데도 이렇게 손발이 안 맞는다. 이 상황에서 '기자가 잘못했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게 설사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그 역시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이번은 그런 상황조차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중국에 이용당한 꼴이다.
물론 이번 사태를 놓고 "향후 외교 일정을 중단해야 하는 사안"(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이라거나 "방중 일정을 즉각 중단하고 철수"(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해야 한다는 야당의 공세는 무리하다. 자신들이 대통령의 위치에 있었으면 외교 일정을 중단하거나 철수했을까? "정상회담과는 별개로 외교부 차원에서 중국 당국에 확실하게 책임을 요구하고 물어야 한다"(정동영 의원, 15일 CBPC 라디오)는 정도가 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때문에 "외교 일정 중단", "철수" 운운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중국 당국에 엄중 항의하고 폭행사건 수사를 촉구하면 될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요약하면 정부의 대응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지지층의 언행에는 문제가 많다. 청와대·여당과도 결을 달리하는 일부 문 대통령 지지층의 반응은 정치적으로는 '한중 정상회담 앞두고 분란을 만들지 말라', 정서적으로는 '언론의 왜곡 보도에 의해 문 대통령이 정치적 피해를 보고 있었는데 속시원하다'는 식으로 요약된다.
'기자 폭행 문제가 한중 정상 외교에 악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실리적으로 봐도 이는 중국 정부에나 악재이지, 한국 정부에 악재일 일이 아니다. 한국이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방중 성과에 흠집이 날까 두려워 사소한(?) 문제는 덮고 가자는 식의 주장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정부 비판 소재로 악용된다며 세월호 참사든 밀양 송전탑 강제집행이든 정부 고위관계자 성추행이든 무조건 '덮자'고 주장했던 박근혜 지지자들의 수준까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세월호 유족들이 피눈물을 흘리는데 '박근혜에게 뭐가 정치적으로 이득인가'만 생각했던 '박사모'와 당시 청와대 공무원들은 인간보다는 괴물의 모습에 가까웠다. 나 /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익이 가치 판단의 기준을 흐려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언론 보도의 피해자'라는 주장은 일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작년 말부터 사실상의 미래 권력이었다는 미묘한 사정을 일단 제외하고 보면, '야당 지도자 문재인'은 분명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피해자였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지지자들이 동일시를 기반으로 피해자 정서를 형성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비판자들에게 펴는 공세가 '약자의 항의'일까, 아니면 '강자의 갑질'일까? 어떻게 봐도 주류인 대통령이나 '대통령 지지자'들이 정치 담론의 장에서 피해자나 약자를 자칭하는 것은 난센스다. 만화 <슬램덩크>의 유명한 대사처럼, "너희들은 강하다."
과거에 약자였을 때 형성된 정체성 때문에, 현재를 직시하지 않고 여전히 피해자, 박해받는 자의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강자는 위험하다. 예컨대 언론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방중 행보를 세세히 보도하지 않은 것을 언론에 의한 '피해'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야당 지도자일 때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것 자체가 피해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입장이 다르다. 대통령이 신문 헤드라인에 날 일만 해서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원래 대통령 직무의 많은 부분은 언론이나 (지지자가 아닌) 보통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일이 많다. 비판을 본령으로 하는 언론의 속성상, 잘못한 일은 뉴스가 되고 잘한 일은 별다른 뉴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대통령 관련 뉴스를 헤드라인에 자주 걸지 않는다면 오히려 '대통령이 잘하고 있구나'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어 낸, 현재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 여전히 '피해자 정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여러 모로 문제다. 이들은 박근혜 지지자들이 '조실부모한 불쌍한 영애'의 환상에 수십 년간 사로잡혀 있었던 것처럼, 자신들이 지지와 애정을 보내는 대상이 여전히 '자본·권력·언론에 희생당한 정의로운 야당 소수파 지도자(또는 그 계승자)'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니 강자 중에서도 최강자인 대통령을 비판하고 견제하려는 것이, 약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처럼 착시된다. 그러니 분노가 샘솟는 것이다.
사실 강자이면서도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현상은 한국사회 도처에서 발견된다. 객관적인 현실 인식과 성찰이 결여된 태도다.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문화가 여전히 강력한 한국에서 남성은 어쩔 수 없이 강자다. 세전 월급이 350만 원이 넘으면 근로소득자 중 상위 약 20%에 해당한다. (2017.6. 통계청 자료) 아이 키우는 게 힘든 일인 건 알지만, 한국에서 이성애자 부부 가족이 정치적 소수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은 피해자라고만 한다. 위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자기가 강자인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 세상이 이상하게 보인다. 왜 자꾸 나한테 성찰을, 반성을 강요하느냐. 왜 나를 제약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려고만 하느냐. 나도 힘든데!
1980~9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은 자신이 사회 정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일신의 영달만 도모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고 있을 거라고들 생각한다. 피해 의식이다. 2010년대에 대학을 다닌 청년들은 사회 이슈에는 아예 관심을 끄고 자기 취업 준비만 해도 '86세대'보다 가난하다. 평생 동안 그렇다. 그러니 "책임감은 강하지만 절대 책임은 지지 않고 윤리의식은 강하지만 윤리적이지 않은, 90년대 끝물 운동권 선배 같은 그 특유의 짜증나는 태도"(박생강, 2017.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조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신보다 집도 부자고 월급도 많이 타는 친구가 '분유값 내느라 힘들다'거나 '자동차 할부금, 카드값 내면 돈 없어 죽겠다'는 불평을 한다면 고이 듣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콩나물 사면서 100원만 깎자고 한다면 마주오는 눈길은 험악할 것이다. '우리 집이 좀 부자지' 하면서 비싼 밥값은 좀더 내는 친구가 '알고 보면 나도 힘들다'며 '불행 올림픽'을 해보자고 덤비는 친구보다 예쁜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있고, '신사도'가 있다.
좋든 싫든, 아니 열렬히 바라던 대로 한국사회의 주류 집단이 됐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약자의 저항'이 아니라 '승자의 관용', '강자의 아량'이다. '적폐 청산'을 대강 하라는 게 아니다. 구조적 모순에는 단호하되,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에게 좀더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다. 품위도 생각하고, 비판에도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어떤 비판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처럼 '결집'만 계속 주장하겠다면, 제3자가 어쩔 수는 없는 문제다. 다만 그 길을 계속 간다면 지지받을 수도, 정의로울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