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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살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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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화류씨
추천 : 69
조회수 : 8369회
댓글수 : 46개
등록시간 : 2019/05/29 07: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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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의 공포

 

1

 

 93년의 봄,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랐기 때문에 사십여 명이 되는 교실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온갖 개성을 가진 녀석들이 떠들어 대는데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담임선생님이라고 들어 온 여자는 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학부모가 자리를 떠나자 기선제압이 시작됐다. 교탁을 회초리로 세게 치며, 자신에게 주목하라고 했다. 앞으로 말을 듣지 않는다면 뜨거운 맛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후에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거나, 떠들어대면 가차 없이 싸대기를 날렸다. 웃긴 것은 그것이 사랑의 매라며 포장이 된 것인데, 사랑이 조금이라도 첨가 되었는지 의문이다.

 

 입학을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짝꿍 선정이다. 실제로는 관심이 없는 척 하지만 누구와 될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사내 녀석들은 저마다 지혜라는 아이와 짝이 되고 싶어 했다. 나 역시 이하동문이었다. 지혜로 말할 것 같으면,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인형처럼 예쁜 아이였다. 우리시대의 남자라면 다 안다. 지혜는 헬로강시에 나오는 여주인공 염염을 닮았었다. 반면에 꺼려하는 아이도 있었다. 진숙이었다. 진숙이는 색이 다 빠진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였다. 얼굴도 까맣게 타서 촌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떤 녀석이 침 냄새가 난다며 놀린 탓에 마치 병균이라도 있는 것처럼 꺼렸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다. 누가 지혜와 짝이 될 것인가? 또는 누가 진숙이와 짝이 될 것인가? 드디어 나의 차례였다. 상자에 손을 넣어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마음속으로 지혜의 이름만 백번은 외친 것 같다. 담임은 머뭇거리는 내 손을 하고 치며, 쪽지를 뺏어 읽었다.

 

 “한성윤, 곽진숙이랑 짝이네? 어서 저리 가서 앉아!”

 

 담임 입에서 진숙이 이름이 나올 때, 모든 것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풀이 죽은 채로 자리에 앉았다. 녀석들은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놀려댔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내 모습에 눈치를 보며 진숙이가 조심스레 앉았다. 나는 고개를 팍 숙였다.

 

 우리 반에는 짝이 되고 싶지 않은 세 명이 있었다. 침 냄새 진숙이, 울보 도영이, 성격 더러운 원일이었다. 나도 나지만, 두 녀석과 짝이 된 여자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동병상련이란 감정을 아주 이상한 상황에서 느낀 것이 부끄럽다.

 

2

 

 첫 입학이란 굉장히 힘든 것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한 숨이 나왔다. 그런데 교실 뒷문에서 한 할머니가 고개를 쑥하고 내밀었다. 절에서 스님들이 입는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할머니는 진숙이를 보며 웃으며 다가왔다.

 

 “진숙아... 학교 어떻드노? 별일 없었나?”

 

 진숙이는 아무 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니가 진숙이 짝이가? 아따 마... 눈이 맑은 것이 참말로 선하다. 인상이 좋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진숙이 잘 부탁한다이? 혹시라도 애들이 괴롭히면 니가 꼭 지켜줘야 한데이...”

 

 어른의 일방적인 부탁에 고개만 끄덕이고 나와 버렸다.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교문 밖에서 엄마가 기다렸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 가기가 싫어졌다. 그날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누워있던 기억만 난다. 다음 날, 학교 가기 싫어서 생떼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매 앞에 장사 없다고 그렇게 학교에 등교했다.

 

 여전히 짓궂은 녀석들이 놀려댔다. 진숙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는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싸움을 더럽게 못하거든? 녀석 중에 허보라는 놈이 진숙이랑 같은 동네를 사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진숙이를 무당이라고 놀려댔다. 당시에 무당이 뭐하는지 잘 몰랐기에 처음에는 놀리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내 무당의 뜻을 알게 되자,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반이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 각자가 확대해석과 쓸데없는 상상력으로 인해 진숙이를 귀신 취급했다.

 

 “침 냄새 우리 동네 살아서 잘 안다. 즈그 할매 무당인데, 매일 귀신한테 기도한다 아이가? 침 냄새, 말해 봐라. 귀신쟁이야.”

 

 그날 진숙이의 별명은 침 냄새에서 귀신쟁이로 바뀌었다. 진숙이는 울먹였지만 울지 않았다. 철이 없었다. 왠지 아이들의 놀림에 동참하지 않으면, 비아냥거림이 나에게 확산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진숙이에게 손가락질 하며 같이 놀려댔다. 이윽고 진숙이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당황했지만 놀림감으로부터 제외되었단 사실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허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악!”

 

 우리 반에서 가장 성질머리 고약한 원일이가 주먹으로 허보의 얼굴을 내려 친 것이었다. 또래 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허보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반 아이들 전체가 주목했다. 원일이는 뭘 보냐며 고함을 질렀다. 아무도 녀석의 날카로운 눈빛에 대꾸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원일이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행여나 녀석한테 맞을까봐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다. 원일이가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자, 허보의 울음소리가 그제야 크게 들렸다. 어찌나 서글프게 울어대는지, 마귀 같은 담임이 금세 뛰쳐나왔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진숙이를 놀린 허보새끼는 담임에게 야단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허보 엄마가 담임한테 봉투 좀 찔러 줬거든?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결국 원일이만 싸대기 두 대를 맞고 벌을 서야 했다. 원일이는 울지 않았다. 더욱 더 담임을 노려봤다. 원일이의 눈빛에 담임도 부담이 되었는지, 밖에 나가서 손이나 들고 있으라고 했다.

 

 뒤에 있는 녀석에게 들었다. 놀이터에서 서너 살 많은 형들이 원일이의 할아버지가 경비라며 놀렸는데, 그 자리에서 형들을 때려 눕혔단다. 그 사실을 알고 원일이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교 길에 누구보다 빠르게 집에 가려고 하는데, 원일이가 길을 막아섰다. 무서웠다. 뒷걸음질이 절로 쳐졌다.

 

 “진숙이한테 잘해줘라. 치사한 새끼야!”

 

 이 말만 남기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 원일이가 무서웠다. 이젠 사방이 적이라고 생각하니, 학교에 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얌전히 학교만 잘 다니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이 문제라고 판단하는 어른들의 시각이 미웠다.

 

3

 

 난리가 났다. 며칠 시달리다보니 정신이 없었다. 준비물을 전혀 챙겨오지 못했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스케치북도 없었고 크레파스도 없었다. 당황했다. 진숙이가 친절하게 스케치북 한 장을 찢어 줬지만 무시했다. 다시 아이들의 비아냥거림이 내게 올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담임이 알게 된다는 것도 무서웠다. 온 몸이 화끈거릴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바로 그때, 원일이가 눈앞으로 뭔가를 툭 던졌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갔다. 녀석은 항상 뾰로통해서 고맙다는 말도 붙이기 힘들었다. 다행이 담임에게 혼나지 않았지만, 원일이가 대신 혼이 났다. 단지 야단정도였지만 말이다. 다른 녀석들은 뺨을 맞았고, 허벅지를 꼬집혔다. 담임이 원일이의 눈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신기했다.

 

 쉬는 시간에 원일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녀석은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고 화장실로 가버렸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원일이는 나쁜 녀석이 아니구나? 그 뒤로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말은 가라고 했지만, 오다리를 나누어주었고, 짭짤한 옥수수과자도 손에 쥐어줬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본 허보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교 길, 허보 일당에게 잡혀 버렸다. 녀석들은 나를 언덕 위 공터로 끌고 갔다. 얼굴 몇 대를 맞고, 복부도 몇 대 맞았다. 엄청 아팠다. 울어버렸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녀석들은 나를 때리면서 웃고 있었다. 원일이와 붙어먹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나를 어디론가 데려 갔다. 달동네로 불리는 곳이었다. 재개발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귀신이 나온다는 집도 몇 채 있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이름 모를 집에 나를 넣어버렸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갔다. 무서운 마음에 문을 마구 두드렸지만 열어주지 않았다.

 

엄마가 말하기를 달동네의 재개발 지역만큼은 가지마라고 했다. 화장터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흉흉한 소문이 많이 나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이 근처에서 귀신을 봤다며 난리를 친 적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서 엄마아빠랑 같이 잔 기억이 있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조용함이 무서웠다. 보통,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는 소리라도 들리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저기 멀리서, 귀신에게 잡혀가라며 녀석들이 악담을 퍼붓는 소리만 들렸다. 나쁜 새끼들...

 

 그 뒤로 아무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그날따라 왜 날씨는 또 흐린지,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 집을 탈출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잠긴 문이 아닌 약간 높은 벽을 뛰어 넘으려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서 의자 같은 것이 없는지 찾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 된 단층 주택이었다. 파란색 슬레이트집 집으로 거실에는 온갖 생활용품들이 쏟아져 불규칙적으로 나돌아 다녔다. 벽에는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사진들이 엄청 붙어 있었다. 얼굴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배나온 중년 아저씨였는데, 뭔가 인상이 무서워보였다. 한참 사진을 보다가, ‘아차싶어서 의자를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현기증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귀에서 이명이 지이잉하고 나더니 어지러웠다. 한시라도 빨리 의자를 찾기 위해 다음 방문을 열었다.

 

 “으아악!”

 

 까무러치고 말았다. 사진 속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본 아저씨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가왔다. 너무 놀라서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다. 도망은 가야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힘이 풀린 다리로 대문까지 걸어 나왔다. 아저씨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주륵하고 나왔다. 흡사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처럼 느껴졌다. 더욱 무서운 것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가야, 뭐 좀 찾아줄래? 제발 좀 찾아줘...”

 

 “?”

 

 나와 아저씨의 거리가 1미터 정도 되었을 때였다. 대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누군가가 내 책가방을 잡아 당겼다. 영문을 몰랐지만, 당장 뛰쳐나갔다. 한참을 달릴 때 즘, 앞에 진숙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숙이는 달리기가 참 빨랐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그저 살기위해 진숙이만 쫓아갔다. 불빛이 보이고 학교 앞 사거리가 보일 때 즘 진숙이가 멈췄다. 그제야 안전하다며, 숨을 고르는 진숙이였다.

 

 “, 한성윤... 니 진짜 위험할 뻔 했디... 거기 들어가서 왜 빨리 안 나왔는데?”

 

 억울했다. 빨리 안 나온 것이 아니라, 허보새끼가 문을 잠갔다고 했다. 하지만 진숙이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가? 밖에서 잠그는 문이 어디 있는데? 니는 느그집 대문을 밖에서 잠그나?”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진숙이에게 바보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빴다.

 

 “이게 돌았나? 침 냄새 니는 조용히 해라!”

 

 진숙이는 내가 허보일당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뒤를 밟았다고 했다. 하필 할머니가 가지 말라는 곳을 가기에 걱정이 된 것이었다. 허보일당은 나를 그 집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나올 줄 알고 문 앞에서 기다린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된 것이었다.

 

 “니 도대체 왜 아는 척 했는데? 귀신한테 아는 척 하면 큰일 난다!”

 

 진숙이 말로는 아저씨가 귀신이란다. 오싹했지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진숙이는 못 믿겠으면 자신의 할머니와 그곳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무서웠다. 다시는 그런 공포를 겪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부끄럽고 화가 났다. 정작 구해준 진숙이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4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는 화장실에 끌려가 허보에게 또 괴롭힘을 당했다. 다행히 원일이가 화장실에 들어오자, 모르는 척하며 악당들이 교실로 들어갔다. 원일이가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어제 학교근처에서 어떤 아줌마가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봤다며 미친 여자처럼 비명을 지른 일이 있었단다. 학교에 소문이 쫙 퍼졌다. 귀신이란 진정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허보의 졸개 중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고 남으라는 것이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복잡한 심경을 처음 경험했다. 말할 기운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제발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일이에게 말해도 볼까 했지만, 우리 반 최대 약골 도영이와 재빨리 어디론가 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또 끌려갔다.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다며 주먹으로 복부를 때렸다. 너무 아팠다. 양 팔을 잡히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녀석들은 또 다시 달동네로 나를 끌고 갔다. 그런데 진숙이가 앞길을 막아섰다.

 

 “느그들 또 한성윤 괴롭히나? 빨리 놔줘라!”

 

 그걸 본 허보가 가만히 둘 리가 없다. 둘이 애인이라는 둥 사랑하는 사이라는 둥 비꼬기 시작했다. 유치하기 짝이 없게도 얼레리꼴레리 노랫소리가 들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부끄러워서 내가 진숙이에게 비키라고 했다. 하지만 진숙이는 물러나지 않았다.

 

 허보가 억지로 진숙이를 밀쳤다. 진숙이가 버티며, 허보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뭐라고? 화가 난 허보새끼가 주먹으로 진숙이의 머리를 강하게 몇 대 내려쳤다. 진숙이는 끈질겼다. 그걸 본 졸개들이 강제로 진숙이를 잡고 때어냈다. 화가 머리까지 난 허보가 진숙이의 뺨을 세게 때렸다.

 

 “부모도 없는 게... 어디서 지랄하노?”

 

 나는 또 왜 그랬을까? 그걸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 나가 이마로 허보의 코를 찍었다. 허보의 코에서 쌍코피가 주르륵하고 흘렀다. 이번에는 내가 진숙이의 팔을 잡고 뛰었다.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허보의 울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속이 시원했다. 반면에 내일이 또 무서웠다.

 

 졸개 중 두 명이 우리를 쫓아왔다. 꽤 충성도 높은 녀석이라 그런지 끝까지 쫓았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게 달동네까지 도망쳤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갔다. 녀석들도 동네가 무서운지 재빨리 떠났다. 한숨 돌린 것이다.

 

 진숙이가 고맙다고 했다. 왜 그렇게 쑥스러웠을까?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진심이 부끄러움을 뚫고 나와 버렸다.

 

 “... 저번에 고맙다...”

 

 한 동안 우린 말이 없었다. 한참을 서로 쳐다보다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릴 적 처음으로 느껴본 묘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진숙이가 떨리는 손으로 팔을 툭툭 쳤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듯 동공이 매우 커져 있었다. 빨리 나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도대체 왜 그러냐며 말하려고 하는 순간, 또 다시 이명이 지이잉 하고 들렸다. 눈을 의심했다. 그 집에서 셀 수 없는 많은 귀신들이 우리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하나 같이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괴기했다. 대낮에 귀신을 본 적이 있는가? 선명한 모습때문인지 더 무섭다. 겁이 나서 그 자리에서 온 몸이 굳어 버렸다. 진숙이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바로 그때, 집 주인으로 보이는 팬티만 입은 아저씨가 문을 벌컥 열고 튀어나왔다.

 

 “아아아악! 아아아악! 찾아내, 어서 찾아내!!!”

 

 요란한 고함을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집 안에 있던 새하얀 귀신들이 우릴 쫓아왔다. 진숙이가 내 손을 잡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평 소 저질 체력이던 나는 금세 지쳐버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한성윤, 좀 뛰어라!”

 

 뒤를 돌아보니 새하얀 귀신들 무리가 우리를 쫓아왔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웅얼웅얼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희한했다.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듣는 소리였다. 새하얀 귀신들이 시커먼 입을 벌리며 빠르게 뛰어오는데, 당장 그들에게 잡히면 죽을 것 같았다. 자신 없었다. 그래서 진숙이에게 너만이라도 도망치라고 했다. 하지만 진숙이는 오히려 내 앞을 막아섰다. 바로 그때였다.

 

 요란한 방울소리가 마구 들렸다. 새하얀 귀신들이 귀를 막았다. 뒤를 돌아보니, 진숙이 할머니가 인상을 팍 쓰며 방울을 흔들어댔다. 귀신들이 할머니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그 집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귀신들이 모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할머니가 우리 둘을 노려봤다. 나는 겁을 먹고 어깨가 굳어버렸다.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숙아 어떻게 된 기고? 여기는 오지 말라 안했나?”

 

 진숙이는 허보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내가 구해줬다고 했다. 녀석들로부터 도망치다보니 이곳까지 왔다고 조곤조곤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썩 옳다고도 못하겠다. 그것이 나의 본심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의 결정은 똑같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연거푸 고맙다고 했다. 부모를 일찍 여읜 진숙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고, 자신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신경을 많이 못 썼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런 진숙이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안아주셨다. 이런 분위기에 어떻게 대할 줄 몰라서 쭈뼛쭈뼛 서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뜬금없는 말에 다시 소름이 돋아버렸다.

 

 “그런데... 짝궁아, 니 눈에도 귀신 보이제?”

 그러고 보니, 그 집에 들어간 이후로 두 번째였다. 진숙이야 혈통이 무당인지라 귀신을 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천주교인 내가 잡귀를 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귀신을 보기 전에 이명이 들리면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하니, 영안(靈眼)이 열리는 것이라며 걱정하셨다.

 

 진숙이네 할머니는 어린 나이부터 귀신을 보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다. 자칫 무당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영안을 닫기 위해서 진숙이네 할머니가 잘 아는 노인을 만나러 갔다. 학교 근처 아파트에서 경비를 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여덟살의 공포



여러분 덕분에 저의 책이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같은 온라인매장에서 판매되게 되었습니다.

저의 책은 <오늘의 유머 공게>에서 독자께서 좋아해주신 작품으로 선별했으며,

미공개 작품 다섯개가 첨부 되어 있습니다.

<문화류씨공포괴담집:저승에서 돌아온 남자>,<문화류씨공포괴담집:무조건 모르는 척 하세요>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옛날귀신 편>과 <현대귀신 편>으로 테마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매우 떨리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 

한 가지 죄송한 점을 전하자면, 지금까지 쓴 이야기 중 책에 들어간 글들은 내렸습니다.

기회를 준 출판사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해하여 주셔요.

하지만 차마 여러분들이 써준 응원과 격려는 삭제하고 싶지 않아서 내용 자체를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진짜 작가로 만들어 주신 많은 독자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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