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다 공정한 유머는 있을 수 없다...고도 하지만, 적어도 그러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하는 유머가 단발적인 웃음을 줄 수는 있지만 그런 류의 유머가 옳지 않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죠. 이를 지적하고 고치고 토론을 통해 수위를 정해가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오유에 토론은 안된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서로 자기 할말만 한다고 하는데, 토론의 주체를 개인 대 개인으로 보지마세요. 어차피 개인이 다른 개인을 납득시키고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토론이라는 건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서로 훈훈한 분위기에서 너도 옳다 나도 옳다 하는 그런 류 토론도 일어나기 엄청 힘든 법이구요. 오유에 토론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럼 저런 토론 문화를 다른 커뮤니티 어디에서 보고 오셔서 하는 말씀일까요? 오유도 똑같습니다. 다른 커뮤니티들 처럼 이런류의 훈훈한 토론은 거의 가뭄에 콩나듯 일어날까 말까 하고, 대부분은 그저 감정 소모성 키보드 배틀이나 벌어지는거죠.
다만 이런 토론을 거쳐 개인이 다른 개인을 설득시키고 뭐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겠으나,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느정도 가치판단이 생기게 됩니다. 저 사람 말을 들으니 맞는 것도 같네, 저 사람 말 들으니 저것도 또 맞는것 같네, 이런식의 흐름이 모여 커뮤니티 전체의 성격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 오유라고 해서 무슨 절대 불변의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게 아닙니다. 이용자들의 성향에 따라, 시간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죠. 같은 사안에 대해 어떤때는 이렇게 생각하다가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전혀 반대의 생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낮과 밤의 오유가 전혀 다른 성격을 띄기도 해요. 왜냐면 이용자층이 달라지니까요.
오유더러 이렇다 저렇다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오히려 오유를 어떤 고정된 한 개체 쯤으로 오해하시는게 아닌가 합니다. 오유 유저들이 커뮤니티에 대한 충성심이 지나치다 어쩐다 하면서 여시랑 비교하는데, 오유는 애초에 가입 절차에 있어서 그리 까다롭게 굴지 않아요. 누구건 쉽게 가입 가능합니다. 운영자가 딱히 가입에 제약을 두거나 유저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일도 없구요. 심지어 문제 유저 처벌도 운영자가 직접 나서서 하지 않습니다. 유저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하는 방식이고, 이게 문제점을 보이면 운영자가 시스템을 조금씩 손보는 형태로 운영될 뿐이에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접속중인 다수의 유저들에 의해 그때의 오유 성격이 결정되는 거지 무슨 오유 운영자가 유저들더러 이래라 저래라 요구해서 커뮤니티 성격을 정해놓는게 아니란 겁니다.
오유가 소위 말하는 '진지충'들의 진지병으로 타 커뮤니티 배척한다고 하는데, 유머에 대해 단순히 웃어넘기지 않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적하는 과정은 맨 처음 언급한 것 처럼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인터넷 용어중에 흔히 쓰이는 '병림픽'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이게 처음에는 패럴림픽으로 쓰이다가 사람들의 반발로 인해 바뀌게 된 단어라는 걸 알고 계신가요? 인터넷 상에서 키보드 배틀 벌어지는 것을 가지고 '병신들 싸움질'이라 비하하는 이 단어가, 처음에는 장애인들이 치열하게 자신과 싸워나가는 숭고한 스포츠 축제의 이름을 가져다 썼었다 이 말입니다. 이게 옳은 일이 아니라는 네티즌들의 반발과, 그저 유머일 뿐인데 진지 빠느냐는 이들 간에 한참을 난장판 싸움질이 벌어진 후에야 병림픽이란 단어로 대체가 되었죠. 유머라고 해서 뭐든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옳지 않은 유머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로 봐 줄 수 있는 유머 사이의 구분은 누가 그냥 딱 정의 내려주는게 아니라 이런 치열하고 박터지는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나올 수 있는 거란 거죠.
최근의 후방주의 게시물 관련 논란에서 저는 '겨우 비키니 가지고 뭘 그러냐, 법적으로 공개 게시판에 게시 가능한 수준이라면 문제 없다'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너무 야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 역시 필요한 존재라고는 생각합니다. 지금 오유 운영자가 내려둔 야한 수위 관련 공지 역시 유저들의 이러한 합의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니까요.
다만 문제는 이러한 '진지함'이나 '지적질' 그 자체가 아니라, 말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이런 유머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미는 있었지만 이런 유머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는 이들을 생각한다면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말과, '야해서 비추'라는 말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전혀 다른 느낌이니까요. 이 차이로 인해 토론이냐, 싸움판이냐가 갈라지는거라 봅니다.
지금 오유의 문제는 '유머글에 진지빠는 진지충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지적은 얼마든지 필요한 일이지만 서로간에 험한 말, 짧은 말로 감정싸움이 벌어지고 마는 점이라고 봅니다. 어쨌거나 오유라는 커뮤니티 전체로 본다면, 싸움이 일어나건 토론이 일어나건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싸움이건 토론이건 그로 인해 유저들의 생각의 흐름이 조금씩 영향을 받고, 그럼 그게 커뮤니티의 성격을 조금씩 바꿔 가는 거니까요. 다만 그 싸움에 참여한 당사자들이나, 지나가며 그걸 보게 되는 다른 이들에게 감정적 피로를 안길 뿐이죠.
최근 일련의 사건들(일베의 분탕질, 국정원의 오유 물고 늘어지기, 여시의 분탕질)을 거치며 오유 유저들 분위기가 까칠해지고 날카로워 진 점도 있고, 커뮤니티 크기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삭막해진(이건 막을 수 없는 노릇이죠. 이용자가 늘면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과정입니다) 감도 있습니다. 아마 이 때문에 더더욱 이런 '험한 말들'이 늘어나지 않았나 싶네요.
정리하자면 지금 오유의 문제는 자꾸 싸움이 벌어진다..는 점인데요, 이 원인을 '진지병'에서 찾으며 이걸 고치려면 '다들 진지빨지 마라!'라고 하는 말은 뭔가 포인트를 잘못 짚은 거라 봅니다. 이건 필요한 부분이고, 오히려 이게 안되는 커뮤니티라면 그 커뮤가 문제인겁니다. 일베가 왜 욕을 먹을까요? 지들은 재밌으니까 하는거랍니다. 유머고 재민데 뭐가 문제냐는 거죠. 그 '재미와 유머'를 위해 도덕성을 포기해버린 극단의 모습이 바로 일베입니다. 길가는 초등학생 뒷통수 때린거 인증하면서 낄낄대는 꼬락서니 말이죠. 흔히 말하는 '커뮤니티의 자정작용'은, 유저들의 싸움을 말리고 뭐 그런 상대적인 의미에서의 자정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길로 가지 않게끔 서로간에 단속시키는 걸 말하는거죠. 루리웹으로 말하면 복돌이 욕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고, 오유라면 유머 하나에도 도덕적 잣대 들이대며 꼬투리 잡는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이로 인해 맨날 싸움 일어나고, 위선이네 뭐네 하지만 그 '위선'이 있기에 인간 사회나 공동체가 굴러갈 수 있는거에요. 최소한 뒤로는 호박씨를 까더라도 앞에서는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는 서로간에 합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꾸 오유나 여시나..라고 하는데, 여시는 자기네들 내부 싸움질 단속만 시켰더랬죠. 운영진이 자기네와 다른 의견을 묵살+축출시켜 싸움을 막는 방식으로요. 그래놓고 정작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데엔 무관심했습니다. 그 결과가 내부에서 수많은 불법 자료 공유, 불법 성인 자료 게시 등으로 나타난거죠. 뭐가 잘못인건지 몰랐다는거에요, 기준이 없으니까. 오유나 평범한 커뮤에서는 불법 자료 공유글이 올라오면 대차게 욕먹고 쫓겨나죠. '그' 디씨에서조차 불법 자료 공유글은 공공연하게 나오지는 못하는걸로 압니다. 이런게 자정작용이라는 거에요. 오유가 자정작용 잘된다 어쩐다 하는 말은, 운영진이 나서기 전에 유저들 스스로 이런걸 차단시키니까 나오는 말이구요.
오유에서 싸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저들 스스로 좀 더 험한 말을 줄이고, 남의 의견에 반론을 펼치고 싶으면 한번 더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타인이 나에게 반론을 제기했다고 발끈하지 말고 심호흡 한번 하고 대화에 임하며, 댓글로 반론이나 비공이유 쓸때 좀 더 성의있게 자기 뜻을 잘 전달하려 노력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죠. 오유에가 무슨 몇몇사람 모여 만든 소규모 커뮤니티도 아니고, 하루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유저들 수만 해도 어마어마할텐데 이런식의 노력이 쉽게 결과로 나타나진 않을 겁니다. 다들 노력해도 한 두명의 어그로가 사람들 심기를 건드려 우르르 화나게 만들면 또 금방 무너지고.. 시간이 흐른뒤에야 다시 다들 화를 가라앉히고 노력하고.. 이런 반복이 계속되겠죠. 그래도 오유에서 콜로세움 줄이고 토론문화를 다시 꽃피우려면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유머에 대해 진지함을 버리라는 말은 잘못된 결론일 뿐이에요.(사실 오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며 쓰여진 이런 글들 보면 '디씨에서 왔는데 뭐 어쩌라고'식으로 반말에 험한말투로 오유의 진지함을 지적하더군요. 남의 단점을 지적한다면서 이런식의 말투를 쓰는 것이야말로 싸움을 유도할 수 있는 행동이란 점은 망각한채 '내 말이 옳은데 말투가 거슬린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다 진지충'이란 자세로 일관해 봐야 결국 싸움만 더 벌어지고 말 뿐이에요. 아니면 애초에 그걸 바라고 온 거라면야 성공한거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