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그 폭을 놓고 의견이 팽팽하다. 정부는 현재 9%인 보험료를 두 배나 올려야 가능하다고 하고, 야당은 1%포인트만 올려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과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따져보자.
2014년 말 기준 연금 적립금 469조원
재정 추계 상 2060년에는 기금 모두 소진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적립해서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사회보험제도다. 내가 만약 현재 30~40대 직장인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라면 매달 월급의 9%를 보험료로 낸다. 단, 나는 4.5%, 내가 다니는 회사가 4.5%, 즉 반반씩 부담해서 낸다. 결국, 직장가입자 본인이 내는 보험료는 4.5%다.(지역가입자는 9%를 모두 본인이 낸다.) 현 30~40대 가입자는 20~30년 뒤 65세부터 수급자로 신분이 바뀌어 연금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낸 보험료, 그 보험료를 주식 등에 투자해서 얻은 수익 등을 다 합친 국민연금기금적립금은 2014년 말 현재 469조8229억 원이 쌓여 있다. 이렇게 쌓인 돈으로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연금을 모두 지급하고도 적립금이 남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연금기금은 2060년이면 모두 소진된다는 계산이 나와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수급자는 계속 늘어나는 반면,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가능인구는 정체하거나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인해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70% -> 60% -> 50%로 낮춰왔다. 현재는 2028년까지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40%까지 떨어지도록 돼 있다. 이것 뿐만 아니다. 인구나 경제성장 추세 등을 고려해 2003년부터는 5년마다 연금 재정의 향후 전망을 새로 계산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향후 재정 전망을 계산해 필요 보험료 등을 조정해 연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가장 최근의 계산은 2013년 것인데, 현재 보험료 9%와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경우 2060년이면 연금기금이 소진된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기금 고갈론 때문에 현재 젊은 가입자들 사이에서는 "30~40년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결국 내가 받을 때가 되면 못 받는 것 아니냐"는 '국민연금 불신론'이 퍼져 있다.
기금이 고갈되면 수급자들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 필요한 돈은 당해 년도 가입자들이 낸 돈으로 지급하게 된다. 이렇게 기금을 적립해 놓지 않고 그해 걷어서 그해 지급하는 방식을 '부과방식'이라고 한다. 독일 등이 이런 연금체계를 갖고 있다.
정부, 보험료 두 배 올려야! 공포 마케팅?
이번에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하면서 '공적연금 강화' 논의가 함께 진행됐다. 야당은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실무기구에서 국민연금기금 고갈 시점(2060년)을 변경하지 않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때 필요한 보험료를 정부측에 물었다. 정부는 10.1%라고 답했다.
즉, 보험료를 1.1%포인트만 올리면 기금 고갈 시점 변화 없이 소득대체율 50%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현행 9% 보험료 유지) 소득대체율만 50%로 올리면 국민연금기금 고갈 시점은 4년 앞당겨 진 2056년에 고갈된다. 정부 분석이다.
그러나 지난 2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적연금 강화 여야 합의안이 나오자마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두배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합의 직전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보험료를 두 배로 올릴 자신이 없으면 소득대체율에 손을 대선 안 된다'는 취지의 의견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장관의 보험료 두 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문 장관 발언 이후 정부가 4일 배포한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고, 보험료를 1%포인트만 올리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미루는 것'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해당 자료는 내년부터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 재정목표에 따라 15.10%에서 18.85%까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문 장관이 말한 보험료 두 배 수준이다. 그런데 보험료 18.85% 인상의 기준은 내년부터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2100년 이후에도 일정한 적립금을 쌓아두면서 기금이 고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보험료율이다.
야당 추천으로 공무원연금개혁 논의를 위한 실무기구에 참여했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이를 "황당한 뻥튀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일정한 적립배율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 보도 참고자료를 보면 적립배율이 2060년 이후 약 17배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는 2083년에 17년치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기금고갈시점을 2100년도 이후로 무한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이 바로 18.8%라는 얘기다"라고 지적했다.
즉, 18.8%의 보험료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데 필요한 보험료가 아니라,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필요한 보험료 + 기금고갈시점을 2060년에서 2100년 이후로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 + 2083년에 17배의 적립배율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료를 모두 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의 태도는 정부가 모든 국민의 적정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공적 연금 강화에 누구보다 나서야 할 주체임을 감안하면, "국민연금 공포 마케팅"으로 오히려 국민연금을 흔든다는 지적은 맞다.
보험료 1% 인상으로 소득대체율 50% 가능 야당 주장은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데 보험료를 1%만 올리면 된다는 야당 주장도 문제는 있다.
보험료 9%, 소득대체율 40% 조건에서 국민연금기금은 2060년에 고갈된다. 보험료 10.1%, 소득대체율 50% 조건에서도 국민연금기금은 2060년에 고갈된다. 2060년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된다는 전제에서는 야당 주장대로 보험료를 1.1%포인트만 올리면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보험료 9%,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다가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되면,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 정부 추계에 따르면, 보험료를 2060년에는 21.4%로 올려야 한다. 보험료 10.1%, 소득대체율 50% 조건인 경우에 보험료를 조금 더 올려야 하는데 2060년에 25.3%로 올려야 한다. 어느 경우도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9%->21.4%로, 10.1%->25.3%로 크게 늘어난다. 국민의 수용성 등을 감안하면 한번에 이렇게 큰 폭으로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현 세대와 미래세대 간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매 5년 단위로 국민연금의 향후 재정을 추계하는 것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급격하게 늘리는 것과 같은 충격을 막으면서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것이다.
보험료를 적게 내고 연금을 많이 받는 '저부담 고급여'는 인구고령화 등을 감안하면 연금 제도 유지 가능성이 낮아지고, 적게 내고 적게 받는 '저부담 저급여'는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 세대간 형평성도 고려하면서, 노후에 어느 정도 연금을 받아야 적정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논의하면서 보험료와 연금액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2100년의 목표치를 제시하면서 "보험료 두 배"라고 벌써부터 선을 긋는 정부도, 미래세대에 대한 고려가 빠진 "보험료 1% 인상, 소득대체율 50% 가능" 주장을 하는 야당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양쪽 다 극단적인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또 "이대로 있다가 2060년에 부과식으로 전환하면 그 전환의 정치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진다. 9% 보험료를 내다가 그때 가서 21%를 낸다고 하면 재정 경착륙 수준이다. 비행기가 땅에 내려오다 형체가 부서지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니냐. 재정 경착륙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과식 전환 이행 경로 모델을 제시하면서 주장하는 게 책임있는 자세다"라고 말했다.